강아지풀과 망초꽃
리울추천 0조회 423.05.31 14:34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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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풀과 망초꽃
---시 / 리울 김형태
애인보다 친구가
더 그리울 때가 있는 것처럼
나이테 하나 둘 진한 동그라미 그려갈수록
장미나 백합보다
그림자처럼 피고 지는 들꽃에
더 정이 갈 때가 있다.
오늘도 꼬리 흔들며 나를 졸졸 따라오는
강아지풀 하나 꺾어 입에 물었더니
시키지도 않은 휘파람에, 콧노래까지
언덕배기 묵정밭에 오르니
한 우듬지의 망초꽃은
푼수같이 깔깔깔 웃어대다가
내 곁가지를 읽었다는 듯
소쩍새처럼 훌쩍거린다.
지천이 온통 하얀 소금빛이라고
풀꽃 앞에서는
잔뜩 긴장한 현악기처럼
옷깃을 여미지 않아도 되고
넥타이와 허리띠를 약간 풀어놓아도
흉이 되지 않는다
괜스레 초라하게 움츠러들 필요도 없고
맥없이 고개 숙이지 않아도 된다
허물없이 농담도 주고받아도 되고
속을 다 열어 보여도 걱정이 되지 않는다.
까짓것 가슴 뛰지 않으면 어떠리
그냥 곁에만 있어도 이렇게 편안한 걸
나, 오늘 강아지풀처럼 네 등에 힘껏 기댈 테니
너, 망초꽃처럼 내 어깨를 맘껏 빌려가련
--- 시집 <아버지의 빈 지게> 중에서 ---
* 시인의 말 : 장미나 백합처럼 멋있고 예뻐지려는 노력보다는,
강아지풀과 망초꽃럼 편안함을 선사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