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에서 잠깐 멈추다/양애경
우리가 사랑하면
같은 길을 가는 거라고 믿었지
한 차에 타고 나란히
같은 전경을 바라보는 거라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봐
너는 네 길을 따라 흐르고
나는 내 길을 따라 흐르다
우연히 한 교차로에 멈춰 서면
서로 차장을 내리고
―안녕, 싶었어
라고 말하는 것도 사랑인가 봐
사랑은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계속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렇게 쉬지 끊어지는 끈도 아니고
이걸 알게 되기까지
왜 그리 오래 걸렸을까
오래 고통스러웠지
아, 신호가 바뀌었군
다음 만날 지점까지 이 생이 아닐지라도
잘 가, 내 사랑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지내
<시 읽기> 교차로에서 잠깐 멈추다/양애경
1분이면 충분하다
‘행위 예술계의 대모’로 칭송받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1976년, 그녀 나이 서른에 독일 출신 행위예술가 울라이를 만났다. 당시 둘은 예술계의 파워 셀럽 커플이었다. 둘은 12년 동안 연인이자 가장 가까운 작업 동료로서 여러 작업을 함께했다. 그리고 1988년, 둘은 <연인: 만리장성 걷기>라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마리나와 울라이는 고비사막에서 출발해 무려2,500킬로미터를 걸은 것이다. 두 사람은 만리장성 중간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한 다음, “good-by”라는 짧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것은 퍼포먼스이면서 진짜 이별이었다. 그들은 예술가답게 이별 또한 행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것이다(이 행위 예술의 제목은 <Lovers>이다).
그로부터 22년의 시간이 흐른 2010년, 마리나는 데뷔 30주년 회고전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한다. <예술가가 여기 있다>라는 이 퍼포먼스는 무려 736시간 30분간 진행되었는데, 내용은 이러했다 마리나는 마치 조각상처럼 의자에 덩그러니 앉아 있다. 테이블 너머 맞은편 의자에 관람객이 앉는다. 두 사람은 각자의 의자에 앉아서 눈빛만 주고받는다. 1분이 지나면 다음 사람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마니라는 눈을 감고 있다가 다시 1분간 눈빛을 주고받는다. 물론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마리나는 이 퍼포먼스를 무려 736시간 30분 동안 한 것이다.
마리나와 눈빛을 교환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었다. 상대의 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부터 자신의 속얘기를 털어놓는 사람.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 하지만 마리나의 표정과 눈빛은 한결같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품고 있는 듯한 차분하고 고요한 표정과 눈빛으로 모든 사람을 똑같이 바라볼 뿐이다.
그런데 한순간에 그녀의 이 변함없는 표정과 눈빛이 흔들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22년 전, 헤어진 연인이자 동료 울라이가 이젠 백발이 성성한 모습이 되어 맞은편 의자에 앉은 것이다. 두 사람은 시선을 교환하며 고개를 흔들거나 끄덕거렸다. 마리나는 억제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혀 결국 눈물을 흘렸고, 울라이에게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았다. 울라이는 그런 마리나를 애틋하게 바라보았고, 1분 후 의자에서 일어났다. 겨우 1분이었다. 그 1분 후 의자에서 일어났다. 겨우 1분이었다. 그 1분으로 22년의 공백이 순식간에 채워지는 마법이 일어난 것이다. 1분이면 충분하다.
―김경민,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 포르체,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