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벧엘 사람
슥7:1-7
2025년2월21일(금)
기동찬
1.다리오 왕 제사년 아홉째 달 곧 기슬래월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2.그 때에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의 부하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3.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이르되 내가 여러 해 동안 행한 대로 오월 중에 울며 근신하리이까 하매
4.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5.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6.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
7.예루살렘과 사면 성읍에 백성이 평온히 거주하며 남방과 평원에 사람이 거주할 때에 여호와가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외친 말씀이 있지 않으냐 하시니라.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겸손한 벧엘 사람의 모습을 보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2.그 때에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의 부하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3.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이르되 내가 여러 해 동안 행한 대로 오월 중에 울며 근신하리이까 하매
하나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가 어떤 일을 행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질문하는 태도는 대단히 겸손한 태도라고 여겨집니다.
“벧엘 사람”(2절)은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업무가 바빠서인지, “그의 부하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3.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봤습니다. “그의 부하들을 보내어”(2절) 라고 하는 모습이 미심쩍기는 하지만 겸손의 무늬를 갖춘 태도인 줄 압니다.
겸손한 벧엘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기 원했습니다. 겸손하지 아니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기 생각, 자기 마음대로 그 어떤 것을 결정하고 진행합니다. 그러나 겸손한 벧엘 사람은 그 어떤 일을 실행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자신의 부하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3.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봤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묻지 않고, 무속인에게 찾아 가서 하늘의 뜻을 묻습니다. 이사하기 전에도, 결혼하기 전에도, 사업을 하기 전에도 하늘의 뜻을 무속인 에게 찾아가서 묻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은 신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는, 신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도록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이방인들이 하늘의 뜻을 알기 위하여 무속인을 찾아가는데, 무속인(巫俗人), ‘무’(巫)자는 하늘과 땅을 이어준다는 의미를 가진 ‘무’(巫)입니다. 하지만 하늘과 땅을 이어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을 이어 주시는 분으로서 왕의 직분, 선지자의 직분, 제사장의 직분 이렇게 3가지 직분을 가지신 메시야로서, 성부 하나님과 이 땅에 인간들을 하나님께로 연결 지어 주시는 유일하신 구원자, 오직 예수!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무속인에게 찾아 가서 하늘의 뜻을 묻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주님의 마지막 지상 명령을 준행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 전도하고 제자 삼는 셀 리더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 차라리 더 좋습니다.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가로막힌 담을 허물어 뜨려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옛날이나 지금이나 겸손한 사람은 그 어떤 일을 진행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께 묻고, 겸손한 벧엘 사람처럼 하나님의 사람에게 부하들을 보내서라도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이 살아내면서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이다 보니, 자기 자신이 자신의 삶에 하나님이 되어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의 삶은 곤란합니다.
이런 자들은 자신의 삶에 자신이 왕이기 때문에 누구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고집이 셉니다. 이런 자들은 강하고 센 것 같지만, 이런 자들은 자신 스스로 고행 길로 자신의 인생을 자신 스스로 밀어 넣고 있는 자로서, 이런 자의 영혼은 방황합니다. 하나님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이웃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육체의 사랑을 따라 결혼하게 되면, 처음에는 몰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부부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서로에게 거절 감정을 느낍니다. 싸웁니다. 별거합니다. 이혼합니다. 이런 것이 다 그냥 진행 되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다 영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또한 이런 가정의 자녀는 자녀 농사가 잘 되지 않습니다. 방탕, 주기적인 실패, 우환, 음란, 술집, 실패 대물림, 정신병 또는 사망 아니면 무속인의 길로 가기도 합니다. 경제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당합니다. 돈은 벌지만 학개서에 있는 말씀처럼 다 날아갑니다. 비참한 최후를 살다가 죽은 후 영원한 지옥에 들어갑니다(출20:4,5).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이런 과정 그 어딘가의 지점에 놓인 채로 자신의 인생, 자신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모습을 보고도 하나님의 심정이 가동되지 않는다면, 성령님께서 내게서 떠나신 것은 아닌가, 자신을 점검하고 검토해 봐야 할 것입니다.
겸손한 벧엘 사람처럼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이 하나님인양,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살아가는 이는 잘 난 것 같지만 잘 난 것 하나도 없는 인생입니다. 곤란한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모든 사람들은 그 어떤 일을 행하기 전에, 겸손한 벧엘 사람처럼 하나님의 뜻을 가장 먼저 구할 줄 아는 겸손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벧엘 사람이”(2절)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3절) 질문한 내용의 핵심은 “물어 이르되 내가 여러 해 동안 행한 대로 오월 중에 울며 근신하리이까”(3절)라고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하나님께로부터 스가랴에게 왔습니다.
4.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5.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라고 반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시고 계셨습니다. 이들의 마음 중심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저들이 하는 일들이 ‘자신들을 위한 것인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하나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백성들을 보실 때 늘 안타까운 모습이 있었습니다. 저들이 뭔가를 행할 때,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그 무엇인가를 행하지 않고, 안하면 안 될 것 같으니까,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말씀을 따라 말씀 중심으로 삶을 살아내지 않고, 이 백성들의 모습은 어느덧 종교인으로 전락하여 형식적으로 하나님께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이점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안타까우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동안 해 온 금식은 겸손히 엎드려 자신들의 모습을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보고, 잘 못된 것은 회개하고, 또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겸허히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금식 자체를 통해서, 사람들 앞에서 과시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는 교만으로 가득찬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차라리 그런 금식 보다는 선지자를 통하여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라고 촉구하시면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쳐 복종함으로 살아 냈을 때, 그 때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예루살렘 성읍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평강이 넘치지 아니하였느냐, 라고 하시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7.예루살렘과 사면 성읍에 백성이 평온히 거주하며 남방과 평원에 사람이 거주할 때에 여호와가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외친 말씀이 있지 않으냐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예루살렘과 사면 성읍에 백성이 평온히 거주하며 남방과 평원에 사람이 거주할 때”(7절) 그 때는 바로 “여호와가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외친 말씀이 있지 않으냐 하시니라.”(7절). 그 때는 “평온히 거주”할 그 때는 선지자들이 선포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할 때 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하나님께서는 형식은 필요하지만, 형식주의는 버리고 전심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사실, 벧엘 사람은 겸손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무늬만 그랬고 실제로는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무늬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스가랴 선지자가 전하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 벧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되는 복된 시간이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제가 0.0001%씩 성장해가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무속인에게 찾아 가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에게 찾아가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인 줄 믿습니다.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 그 때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야 할 때인 줄 압니다.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창20:7).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형식주의를 버려야 함을 선포합니다.
11.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16.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사1장).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이 구원받고, 형식주의는 버리고, 삶이 겸손한 삶으로 거듭나길 원하시고 계시는 분임을 선포합니다.
이 하루도 주님의 손에 올려 드리며
제 삶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Declaration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합니다.
Before doing anything, a humbble person first seeks God's will.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