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51]아름다운 사람(7)- ‘폭포 명창’ 소리꾼 배일동
지난해 6월 17일 배일동 명창의 로드매니저 친구가 공연포스터를 카톡으로 보내왔다. “아, 소리꾼 배일동”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 소식을 듣고 어찌 앉아만 있으랴. 순천행 무궁화호를 타고 오천광장으로 달려가, 오랜만에 그의 ‘폭포 목청’ 심청가와 춘향가 한 대목을 들었다. 황홀했다. 게다가 수 년만에 그와 허그도 하며 반가운 시간을 가졌으니. 서울에 살면서 배일동 명창의 『독공』 출판기념회 등 몇 차례 만남 그리고 사적인 술자리가 있었다. 그의 판소리교실(외국인 제자가 많았음)을 방문, <뿌리깊은 나무>에서 출판한 『판소리전집』을 기쁜 마음으로 선물했던 인연이 다시 이어진 셈이다. 그 결과, 지난해 8월 5일 내 고향 오수 의견비 앞에서 역사적인 창작 판소리 <오수개판가>까지 불러제켰으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지난달 2월 27일에는 서울 인사동 한 식당(오수별채)에서 가진 소생의 출판기념회에서 <심청가> 한 대목을 재능기부해주었으니 나로선 오직 영광이었다. 최소한의 거마비도 거부했으니.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별곡 68] 유튜브로 되새기는 그날의 감흥感興 - Daum 카페
그를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부르는 까닭은 차고 넘친다. 전남 순천산. 65년생. 백성들의 입을 대변하려는가, 구민口民, 호도 독특하다. 외항선원 생활을 하다, 어릴 적부터 노래부르기를 좋아하던 그는 소리꾼으로는 완전 늦깎이인 26세에 소리 세계에 입문했다. 89년부터 3년간 성우향의 <춘향가> <심청가>를 사사했고, 93-94년 강도근의 <흥부가> <수궁가>를 사사받았다. 30대인 95년부터 조계산 계곡에서 2년, 지리산 달궁계곡에서 5년, 홀로 소리공부를 한 끝에 마침내 득음得音을 했다. 폭포 밑에서 공부한 까닭에 성량이 어마무시하게 풍부해 완벽한 ‘폭포 목청’으로 불린다. 기차 화통을 삶아먹은 듯, 그의 소리를 들으면 정신이 번쩍 난다. 심학규가 눈을 번쩍 뜨는 장면을 보라. 세상일이, 우리 정치가 그렇게 속시원하게 뚫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독공과 득음을 하는 가운데, 그는 음악이론가가 되고 소리의 이론을 정립했다. 소리꾼을 넘어 인문학 특강 강사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는 까닭이다.
혹시 다큐영화 <땡규, 마스터 킴>을 보신 적이 있는가? 호주의 드러머 사이먼 바커, 사물놀이 명인 김동원 고수와 함께 우리나라의 예술정신과 문화적 우수성을 유감없이 담아내는 주인공이 됨으로써 이후 50여회도 넘는 해외공연을 했다. 또한 판소리에 서커스나 재즈, 전시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접목시키며, 우리 판소리를 세계에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외국인 제자들이 많은 까닭이다. 자막도 없이 펼쳐지는 광대무변한 소리를 듣고 푸른 눈의 외국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음악의 힘이자 그의 내공의 힘이다. 그의 탁월한 저서 두 권을 독파하며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가 독학자습하며, 마침내 소리의 이치와 원리를 깨쳐 궁극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독공獨功』(2016년 세종서적 펴냄, 366쪽)을 읽다보면 음악과 소리가 무엇인지 쉽게 깨치게 된다. 『득음得音』(2020년 시대의 창 펴냄, 552쪽)은 아예 사상서적과 다름없어 일반인들은 읽기조차 힘든다.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별곡 62]명창 배일동의 “독공獨功”이라는 책 - Daum 카페
그가 홀로 처절하게 공부를 한 까닭은 “우리 민족의 소리는 실체가 분명한 데도 이치가 모호하고 정연한 이론체계가 서있지 않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탁월한 역저力著, 이 두 책은 '훈민정음의 원리'와 '음양오행' 등 민족정신과 동양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을 바탕으로, 장단이 무엇이고, 호흡은 어떻게 이뤄지고, 발성은 어떻게 하는 등의 이론체계를 세운, 최초의 소리 개론서이다. 어디 격물치지格物致知가 쉬운 일이었을까? 동양고전의 조예가 책 갈피갈피마다 묻어나온다. 특유의 뚝심으로 실기와 이론을 갖춤으로써 물리적 이치를 확연히 깨친 그는 몇 안되는 진정한 소리꾼의 풍모를 절로 느끼게 한다.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그는 겸손하기까지 하다. 재덕겸비才德兼備. 바람이 한번 훅 불면 사라지는 게 아닌, 진정한 K-뮤직(음악)의 저력을 느끼게 된다. 우리 음악의 미래, 세계화가 밝은 까닭이다. 그의 이론을 궁금해 하거나 그의 소리를 듣고 싶어자는 마당(부름)이 있기만 하면, 그는 언제나 달려가 성심성의껏 시원스레 응답을 해주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졌다. 그거,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음악계를 넘어 우리 문화계에 참으로 소중한 알토란같은 사람이다. 귀 있는 자, 그의 소리를 들으라. 눈 밝은 자, 그의 인문학적 지식을 흡수하라.
그는 또한 프로 사진작가 못지 않은 '찍사'로 울림이 큰 사진들을 수시로 페이스북에 남긴다. 긴 여운, 깊은 감동을 주는 사진들. 개인사진전을 하루빨리 해야 할 판인 '선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