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출신 작가를 기다리며 / 조해진
올림픽의 계절이 지나갔다. 평소 스포츠 채널을 즐겨 보지 않고 각종 경기 규칙에 무지한 나 같은 사람도 승부를 겨루는 순간이면 긴장감이 차오르곤 했다. 1점이라도 더 따내기 위해, 혹은 0.1초나 0.01초처럼 인간의 인지 범위 밖의 시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온몸을 내던지는 선수들의 열정 앞에서는 그야말로 겸허한 마음이 일기도 했다.
올림픽 기간 중의 어느 날에는 한국인 어머니와 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러니까 일종의 다문화 가정의 자녀가 한국 국적으로 럭비 경기에 임했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반가웠다. 그 선수의 이름은 김진, 미국 이름은 안드레 진 코퀴야드이다. 김진은 1991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과 캐나다, 미국 등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다가 2017년 귀화한 경우이다. 유도에서 동메달을 딴 재일조선인 안창림 선수도 눈에 띄었다. 보통의 한국인들은 ‘재일조선인’이라는 표현에 낯선 거부감을 가질 수 있겠지만, 같은 재일조선인으로서 일본에 거주하며 ‘디아스포라’의 눈으로 여러 저서를 쓴 서경식 선생은 한국과 북한이 분단되지 않은 시절부터 재일조선인은 존재했으므로 ‘재일한국인’보다는 ‘재일조선인’이 그 역사적인 기원에 맞는다고 쓴 바 있다(<디아스포라 기행>, 돌베개).
김진과 안창림 선수는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의 자녀들을 떠올리게도 했다. 2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그들은 신분증이 없기에 미등록, 혹은 비국민으로 분류된다.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어린 시절부터 한국에서 살기 시작했고 한국어로 교육받은 그들이지만, 의무교육이 끝나고 성인이 되면 언제라도 국경 밖으로 추방될 수 있는 불안한 현실이 그들의 삶을 규정하는 기본값이다. 우리 사회가 미등록의 그들을 품어준다면 그들 중 누군가는 김진과 안창림 선수처럼 한국을 대표해서 스포츠 무대에 서게 되지 않을까, 나는 종종 그런 생각에 잠기곤 했다. 스포츠만이 아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민자나 난민 출신의 작가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세상에 없는 나의 집>(창비) 등을 쓴 재중동포 소설가 금희를 제외하면 외부에서 온 작가가 전무하다시피 하다. 일본만 해도 재일조선인 작가들이 꾸준히 활동해왔고 이양지, 유미리 등은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작년 ‘서울국제작가축제’에는 베트남 보트피플 출신의 캐나다 소설가 킴 투이와 나이지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치고지에 오비오마가 참여했는데, 그들은 캐나다와 미국 문단에서 호평받으며 큰 활약을 하는 중이다. 이민자로서 정착한 나라의 현실뿐 아니라 고국의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작품에 담았다는 점에서 그들의 소설은 다양성 측면에서 환대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미등록과 난민, 그리고 합법적인 절차를 밟은 이민자나 국외에 거주하는 동포는 각각 층위가 다르기에 전자의 카테고리에 대해 더 부정적인 인식을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진정 중요한 건 한국 사회가 ‘외부’에서 온 그 모든 디아스포라에게 좀처럼 자리를 내주지 않는 각박한 현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최근 미등록 아동과 한 인터뷰를 엮은 <있지만 없는 아이들>(은유, 창비)을 읽은 덕분에 나는 한국어로 시를 쓰는 우즈베키스탄 태생의 ‘달리아’를 알게 됐다. 달리아는 시인을 꿈꾸지만 현재의 삶에서는 주민등록번호가 없어서 대학에 갈 수 없고 단기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다. 우리는 그런 달리아에게 언제쯤 작가의 자리를 내어줄 수 있을까. 가까운 미래에는 출판계와 독자들이 달리아를 시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 사회를 날카롭게 묘파하는 소설과 시는 어쩌면 달리아 같은 미등록 출신에게서 출현할지 모른다. 나는 이민자, 난민, 미등록 출신의 작가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으며 그 기다림이 품위 있는 공동체의 조건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조해진 소설가
등록 : 2021-08-08 20:30 수정 : 2021-08-09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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