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4일 묵상 본문 : 마가복음 6장 14절 - 29절 - 진리를 알고 따름으로 땅의 욕심을 죽이고 주와 교제하는 영생의 소망으로 풍요하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어제보다 조금 더 추워진 날씨 가운데 하루를 시작합니다.
추운 겨울이 때로는 싫어서 따뜻한 날씨를 기대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추워야 해충도 죽게 되어 유익한 일이라고 합니다.
계절의 섭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생각하며 추운 겨울도 의미가 있습니다.
인생의 계절도 마찬가지로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신뢰하며 살아갈 때 내게 가장 유익한 것으로 채우시는 주의 은혜가 풍성하게 담겨 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오늘의 하루도 그 은혜를 깨닫고 누리게 해 주시고 감사와 찬양으로 사는 자 되게 하옵소서.
먼저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사랑으로 이끄시고 생명으로 살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14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
15 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16 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17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18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19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20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21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
22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23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24 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25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26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27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28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29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본문 해설
예수님의 놀라운 이적의 소식은 많은 사람에게 전파되었고 당시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던 헤롯 안티파스도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된다.
헤롯 안티파스는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을 죽이려던 헤롯 대왕의 둘째 아들로써 당시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으로 지내고 있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헤롯 안티파스는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여기며 그의 능력이 예수님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이 엘리야라고 말하기도 하고 옛 선지자 중에 하나와 같다고 이야기했지만 헤롯은 자기가 목을 벤 세례 요한이 살아났다고 확신하며 강하게 이야기를 한다.
이러한 반응은 안티파스가 세례 요한을 죽인 일에 대한 후회와 두려움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스스로의 잘못을 알지만 돌이키지 않고 여전히 죄악에 머물러 있는 모습도 보여준다.
헤롯 안티파스는 자신의 이복동생인 빌립의 아내였던 헤로디아가 빌립과 이혼하고 그녀와 재혼을 하게 되었는데 세례 요한은 이것을 지적하며 책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지적을 싫어했던 헤로이다는 안티파스를 통해 요한을 감옥에 가두도록 만든다.
헤로디아는 세례 요한을 원수로 여기며 죽이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안티파스는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했으며 또 요한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했지만 달갑게 들었기 때문에 죽이지 않고 감옥에만 가두어 두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헤로디아는 기회를 엿보다가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과 함께 잔치할 때 헤롯을 죽일 기회를 가지게 된다.
헤로디아는 빌립을 통해 얻은 딸이 그 잔치에서 춤을 추어 헤롯과 주변의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었고 이에 왕은 헤로디아의 딸에게 어떤 소원이든 말하면 들어줄 것을 이야기하게 된다.
안티파스는 소녀가 구하면 자신의 나라의 절반까지도 주겠다고 말하자 헤로디아의 딸은 헤로디아를 찾아가 무엇을 구할지 물었고 이에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도록 이야기한다.
이에 딸은 왕에게 가서 세례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얹어 자신에게 주기를 요청하게 된다.
안티파스는 심히 근심하면서 주저했지만 자기가 맹세한 것과 앉은 자들에게 왕의 권력에 대해 무시당할 수 없었기에 소녀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왕은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령하고 그 사람은 옥에 가서 요한의 목을 베어 머리를 소반(쟁반)에 얹어 소녀에게 주었고 소녀는 그것을 어머니에게 주었다.
그리고 요한이 죽자 요한의 제자들이 소식을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지내게 된다.
나의 묵상
예수님의 이름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면서 당시 갈릴리의 분봉왕이었던 헤롯 안티파스에게까지 소문이 퍼지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적과 사역의 소문을 들었던 안티파스는 마음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자신이 세례 요한을 죽인 죄책감과 심판받게 된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세례 요한은 자신에게 바른 말로 충고하는 사람이었으며 듣기에 거북한 말이라고 할지라도 진리의 말을 전하는 모습을 옳게 여겼기에 요한을 귀하게 여겼었다.
이는 세상의 권력도 하나님의 진리 앞에서는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진리를 따르지 않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은 사람이 진정으로 두려워할 대상은 세상의 주관자가 아닌 하나님임을 가르치셨다.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12:5)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참 지혜이며 세상을 담대하게 살아가는 비결이 된다.
그래서 성도가 진리를 알고 그 진리의 본체이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하며 교회의 구별됨은 진리를 알고 선포하는 모습에서 나타나게 됨을 고백하게 하신다.
반대로 진리에 대해 무지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은 갈 길을 알지 못하며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살아가는 자가 된다.
헤롯 안티파스는 진리를 몰랐기에 예수님을 죽은 세례 요한이 살아 돌아온 것으로 여겼으며 자신의 체면과 사람들로부터의 무시를 받지 않기 위해 진리를 말한 요한을 죽인다.
헤로디아의 지배를 받고 살았던 안티파스는 결국 그녀의 종이 되어 살아가는 자가 된 것이다.
바울은 사람이 죄의 종일 때는 의로움과는 상관없이 살아가면서 죽음으로 끝나지만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갈 때는 영생을 얻게 됨을 선포한다.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0~23)
그리스도에 대해 무지했던 헤롯 안티파스는 결국 죄의 종으로 살아가며 진리를 말하는 세례 요한을 죽이고 후회와 죽음의 두려움을 사는 자가 된다.
그러나 진리를 알고 그리스도를 알았던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며 육신으로는 죽음을 당했지만 그의 믿음과 그리스도를 향한 예비의 사역은 주님께 인정받는 일로 남게 되었다.
진리에 대한,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이해가 믿음의 행동을 가져오게 했으며 죽음 앞에서도 진리를 거부하지 않고 담대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했음을 보게 된다.
이는 땅의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늘에 마음을 두며 살아가는 모습이며 영원한 것을 얻고 누리는 모습임을 고백하게 하신다.
바울은 사람이 땅에서 받는 작은 환난은 크고 영원한 것을 얻고 이루는 것에 불과함을 제시하면서 보이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한 소망을 더욱 견고히 붙잡을 것을 권면한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4:17,18)
바울은 자신이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했다.(고전15:31)
이러한 바울의 고백은 세상을 향한 소망은 버리고 주의 나라와 영생에 대한 소망으로 살아가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담겨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복음에 연합됨이며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영생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것이 성도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임을 다시 한 번 고백하게 하신다.
여전히 땅의 생명으로 살아가려는 어리석음이 내 안에 있지만 다시 영생을 얻고 누리기 위해 죽음에 연합되는 삶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자 되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세례 요한의 죽음을 바라보며 성도가 맞는 죽음을 생각해 봅니다.
성도의 죽음은 땅에 대한 소망을 죽이는 것이며 부활은 하늘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늘의 소망은 주님과 온전히 교제하는 삶을 말하며 주를 깊이 아는 영생의 삶을 의미합니다.
육신의 죽음 앞에 담대한 자로 살아가게 하시고 주를 아는 영생으로 풍요한 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친히 인도하시고 붙들어 주옵소서.
인간의 의지로 세상의 욕심으로부터 죽음을 선포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와 연합되었을 때, 주의 복음을 통해 베푸시는 생명의 은혜를 누리게 될 때 세상을 향해 죽음을 선포하고 하늘의 생명으로 풍요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날마다 죽기를 기뻐하며 이를 위해 힘썼던 바울의 모습을 오늘 저의 삶에서도 이루도록 도와주시고 거룩한 백성의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의 지체들도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게 하시고 영생의 풍요함을 누리게 하옵소서.
함께 해 주시고 은혜와 진리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