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그리고 학림다방에서.....
2011.9.11.일
내일은 추석입니다.
한가위 추석 연휴에 고향을 찾아나선 전투적(^^)인 귀향행렬은
지금도 돌격적(^^)이라는 뉴스가 나옵니다.
부디 귀향하는 그분들의 안위와 즐겁고 풍성한 한가위 명절이 되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추석 전날...일요일, 오후나절....
컴퓨터가 잦은 에러가나고 느려져서 아들놈에게 손좀 보라고 했더니
(거르적거리니-말은 그리 안하지만 표정이) 나갔다 오면 그 사이에 해놓겠다고 합니다.
하여.....어슬렁, 시냇길로 버스를 타고 나오니 혜화동 대학로입니다.
대학로....그곳은 언제나 젊음이 활기찬 곳이기에 그냥 좋지요.
마로니에 공원을 돌아 거리공연하는 재밋거리도 보면서 걸었습니다.
오늘은 그간에 꼭 한번 들려보고자 했던 학림 다방엘 들렸습니다.
마땅히 품 같이 팔사람이 없어서 그냥 혼자 들렸습니다 .
혜화동 성당앞 길
일요일이면 헤화동성당과 동성고등학교 앞쪽 노상에 질펀한 장터가 들어섭니다.
‘작은 마닐라’ 할 정도로 왁자지껄한 타갈로그어(필리핀 공용어)가 가득 메운 이 곳은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市場)이자, 필리핀 뿐만 아니라 다국적 문화가 교차하는 만남의 광장(廣場)이기도 합니다.
어쩜 이곳은 이국에 와서 단절과 외로움에 사는 그네들만의 숨통이자 수다를 떨수 있는
사교의 장이며 고향의 향수를 맛보는 곳이기도 합니다.
필리핀에서 가져온 각종 과자류,장난감,스넥, 통조림, 생선등 그리고 한켠에선 음식을 판매하기도 하네요.
대학로 변 - 대학로 이모저모
씨알의소리 함석헌옹의 글과 김광균님의 詩가 있고
"동방의 등불" 詩가적힌 타고르의 아담한 동상이 있습니다.
동방의 등불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인도의 사상가이자 극작가겸 시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Rabindranath Tagore: 1861~1941)
한국과 인도는 자유와 존엄의 옹호자이기도 했던 위대한 시인 타고르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고자
2011.5.18일 오전 서울의 문화 중심지인 대학로에 타고르 청동 흉상을 설치하고 제막식을 개최했다합니다. 인도 조각가 구아탐 팔이 섬세하게 조각한 약 1.2m 크기의 금속 작품은 인도정부와 국민이 한국에 기증한 것이라합니다.
노상공연-역사와 전통이 있는 . ....(예전 TV에도 소개되기도한)
불특정 다수를 위한 막무가내 공연이지만 모두가 다같이 공감과 감흥속에 즐겁네요^^
이젠 대학로의 명물^^이 되어진 길거리 이벤트입니다.
언젠가 공연때는 ....우리는 직장이 없어 이것도 훌륭한 직장이라고 하였던가....
지붕없는 무대라서 다소 애틋하다지요. 이번 연휴엔 또 비가 나린다는 예보가....
즉석에서 게임을 - 다들 유쾌하게 쿡쿡대며 웃는다
끝나는 타임에 불우이웃을 위한 모금은 자발적입니다.
마로니에 공원
새삼스러워 티각~
애국가 4절까지.... 다 외워 부르지 못함을 부끄러운 마음에 .....
고산 윤선도 생가 터 표시 비석
샘터 파랑새 극장
마치 구직 신문광고를 보는 ...그렇게 보여짐은 내맘에 국한 되었으면.....
학 림 다 방
건너편길에 초록색 간판 - 영문으로 학림커피라 적혀있다.(약국 2층)
도대체...저기가...학림다방이란덴가? 라는 호기심과 홀림같은 그 무엇에 이끌려지네요.
헛허허허허
고립된 섬처럼 느껴질정도로....
그래도 우리에겐 지키고 반추해야 할것들이 있노라며
50여년을 그 자리에 "다방"으로 버티어 선 학림다방이다.
입구에 적혀진 학림의 이야기
학림의 역사는 그 자체가 한국 문학사이다 그렇다. 학림은 아직도, 여전히 60년대 언저리의 남루한 모더니즘 혹은 위악적인 낭만주의와
지사적 저항의 70년대쯤 어디에서간 서성거리고 있다 . 나는 어느 글에선가 학림에 대한 이러한 느낌을
"학림은 지금 매끄럽고 반들반들한 '현재'의 시간 위에 '과거'를 끊임없이 붙잡아매두려는 위태로운 게임을 하고 있다"라고 썼다.
이 게임은 아주 집요하고 완강해서 학림 안쪽의 공간을 대학로라는 첨단의 소비문화의 바다 위에 떠 있는 고립된 섬처럼
느끼게 할 정도이다 . 말하자면 하루다 다르게 욕망의 옷을 갈아입는 세속을 굽어보며 우리에겐 아직 지키고
반추해야 할 어떤 것이 있노라고 묵묵히 속삭이는 저홀로 고고한 섬 속의 왕국처럼... (입구에 적혀진 학림이야기에서....)
입구 - 낡아진 계단이지만 정겨웁다.
이곳에서 20여년을 학림을 지켜온 이충렬사장님의 뒤켠에 낡은 LP판이 세월의 묵어짐을 대신 말해준다.
그곳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 - '문리대 제25강의실'로 불리던 '文靑 사랑방' 이청준, 김지하, 전혜린, 김민기... 지금은 거목이 된 수많은 이들. 젊은날 철학과 문학, 인생을 이야기하던 곳. 세속을 굽어보는 고고한 섬처럼 45년간 명륜동 94-2번지를 지켜왔다. 한때 레스토랑으로 변모하자 변절자 취급받다
다시 본 모습으로. 종일 죽쳐도 눈치한번 안주고, 술취한 학생엔 설탕물까지. 문득 문청시절 가슴앓듯 옛모습이 떠오른다.
소설가 김승옥이 대학시절 '방학이 끝나고 서울역에 5시 반에 내리면 갈 데가 없어서 이불보따리,
책보따리를 들고 찾아와' 새벽잠을 자고, 오적 필화 사건으로 전국을 유랑하던 김지하가 자신의 임시 주소로 사용하던 곳. 자살로 생을 마감함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전혜린이 즐겨 찾고 '빠리의 택시운전사'였던 홍세화가
망명생활을 끝내고 99년 귀국하자마자 공항에서 바로 달려온 곳.
[경향신문 매거진 X] 2001.12.13.목(학림 홈피에서 발췌)
닳아서 반들거리는 나무 탁자가 편안하고
연로하신 분들이 옛추억을 기리고 반추 하는양 넉넉한 모습이시다.
숱한 애환과 질곡의 세월이 점철되어진 여기 이자리... 근대 민주화의 한 귀퉁이를 간직한체
오늘도 여전히 그곳에 자리하고 있네요.
(이층 좌석에서 앉아서 아래층 홀을 내려봄)
천정 낮은 2층 에 자리를 잡고서.....
어딘가 방금 앉았다간 다순 온기를 더듬는양......전혜린을 상기하여봅니다.
산다는 일은 그렇게도 / 끔찍하게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더 / 나는 생을 사랑한다. / 집착한다. ( 전혜린 )
그런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하루전 (1965년 1월 9일 토요일) 영하의 날씨에 이 학림다방의 난로가에서 진한 커피 한잔을 드리워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 켜지는 초저녁 안개낀 독일 슈바빙 거리를 관조하듯 떠올렸을지도 모릅니다.
전 혜 린
혼란스럽던 시대에 짧지만 화려하게 생을 불태우고 떠난 여인 전혜린.
한국 여성 최초의 독일유학생이었던 그녀는 '천재'로 불렸고, 먼 이국땅에서
인식과 실존을 집요하게 탐구하며 치열한 청춘을 살았다고 합니다.
번역서 몇권과 수필집만 남긴체 31세에 요절한 전혜린에 대한 단편적인 평가를 읽으면서 전체를 추이해봅니다. 한국의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난 보헤미안적 기질과 파격과 일탈, 그리고 광기와 방황으로 점철된 그녀의 인생은
'전혜린 신화'를 창조하기도 했지만 시대를 앞질러 간 천재 여성의 외로움 또한 찬란한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당대 여성상과 상반되는 독립적인 사고와 자유분방한 태도 '언니의 생은 자유로우려는 정신과 현실 세계가 대결해나가는 투쟁 과정이었다.' - 동생, 불문학자 전채린
젊은 청춘이 공감하고 투사할 수 있는 열띤 방황의 삶 '그녀는 특이하게도 자신의 생을 통해 이룬 '업적'이 아니라 절대 인식에의 끝없는 갈구와 열띤 방황이라는
삶의 '태도'만으로 사후 '전혜린 신화'를 창조해냈다.' - 문학평론가 장석주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부각된 굴곡 많은 인생 '그 여자는 짧은 생애를 가득한 긴장 속에서 살기 위하여 끊임없는 욕망을 불태웠다. 그리하여 그 여자는
그 누구보다 가난했다.' - 초대 문화부 장관, 문학평론가 이어령
그리고 끝으로
불꽃처럼 살고 갔으나 그가 사랑하던 우리들 속에 뿌려놓은 언어와 고독과 사랑의 씨는 우리속에 자라나서 숲을 이루고 그 숲은 우리와 함께 커갈 것이다. - 동생, 불문학자 전채린
물론 위 평가 외에도
천재로서의 자존심을 지키지못하고 사랑을 거머쥐지 못한체 보통의 나락으로 추락 되어지는 것을
스스로 용납을 못해 극심한 우울증으로 자살 했노라는 그런 평가 또한 있습니다.
제가 11살 되던때 생을 마감하였으니....그녀에 대한 신드롬이나 편력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학림다방은 뭔가 묘한 뉘앙스를 보일듯 말듯 하게 간지르는것 같습니다.
낮은 천정의 2층 테이블에서 달달한 모카커피 한모금 홀짝거리면서 어둑한 조명아래 몇자 적습니다.
2층은 흡연도 가능하다니 또한 늘어지는 마음에 한술 더하여 죽치게 되네요.
오후나절.....차 한잔의 작은 여정은 이곳 학림에 이르르고 한개피 사루어 이런 저런 낙서를 끌적거리어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흡족해하며 혼자서도 잘 놉니다. 헛허허허
낙 서 ....... 1, 2. 3, 4.....
전혜린.... 한국인 최초로 독일에 유학....수학을 0점 맞고도 서울대에 합격한 천재....
감히 견주어 비교가 안된다더라도 막연하게 루 살로메를 연상짓게 하네요....
니체, 릴케...프로이드에 이어진 그녀의 사랑은...아니 팜므파탈 같은 루 살로메....그 녀 또한 독일태생이지요.
에고,,,, 뭐, 그렇다는겝니다.
학림다방 문을 나서다
어느덧.....어둠이 깔리고 네온불이 명멸하네요.
이제,,,,챙겨서 나섭니다. 집에 가야지요....헛허허허
밤새워 있어도 모자랄 여운을 길다랗게 남기며.....
그랬습니다.
2011.9.11. 일. 까망가방입니다
카페 게시글
풍경소리.사랑방
대학로....학림다방에서 오후나절을.....
까망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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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31
11.09.12 16:48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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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랏? 고산이 서울 태생?! 하긴~
지난 시절의 프리마돈나를 그리면서,
슬쩍 본인의 옛날 헤어진 여인에 대한 비련을 빗대어 얘기하시는 듯~ ^^*
지난8월19일 남펀이 119에실려 원주기독병원 입원후 의사왈 저혈당으로 온증세니 집에가 안정을취하고 평소대로 보호를 잘하면 된다고하지만
요몇달 상태가안좋아 들어온김에 뇌찰영 위검사 MRA. CT검사후 위암판정 다행히 초기를 지난후라 위3분에2 절제수술후 하루하루다르게 평온을찾고 있어요 ?,,,
새벽두시에 남편이화장실 간다기에깨여 잠이안와 5층에서 1층으로내려와 잠안오는새벽을 까망님에 글로 새벽을 깨우고있습니다여 ㅎ
전혜린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저20대에 들은이야기 최초에 독일유학생 독일에서자살로 젊은나이에 생을마감하다 이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오늘 학림다방을 통해서 또다른 면모를 보고갑니다 ^^
왠일!이래요~~~~`?
뻐추기님도 저와같은 놀라움을 격으 셨군요~?
저도 .....
8월 19일날 저녁 같이 들길로 조깅 하고 돌아 온후 남편이 요도로 출혈!
김포 우리병원 응급실로 갔더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강남 세브란스에서 23일 방광암 초기 다행히 수술를 잘~끝내고 일주일 입원하고 퇴원했지요..
의사 왈~기적 이라구... 운동 안했으면 큰일 날뻔 했다고...
어쩜...뻐추기님과 같은 날에 참!...
저는....그때 너무 놀라 휴유증이 아직도.....
이제... 쉬암쉬엄 여행 많이 다니고 더욱 즐겁게 살아야 겠습니다~
뻐추기님!! 우리 힘 넵시다!! 홧팅!!
감사합니다! 아직도 3주는 병원에 더있어야 할꺼같애요 ?3년을기다렸던 서유럽여행 가는것도 뒤로미뤄 내년봄에 갈려고해요 ㅎ 하늬님도!!오늘도 힘내서 핫~팅^^
뻐추기님!하느님!얼마나 놀라셨어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시고..
늘 ..무엇보다도 본인도 중요합니다.
건강 잘 챙기셔요.
어제 지인의 결혼식에서 꼭 오셔야 할 몇분들이 안보이셔서 안부를 묻는중..
서너분이 유방암으로 투병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우울했었습니다.
감사합니다~정목님~~~~~~~~!
잘~지내지요``?
'그리고 마무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제목에 끌려 그녀의 책을 손에 넣고
읽고 또 읽고, 31세의 나이에 세상과 작별할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걸까..
격졍적으로 살아내고, 삶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녀의 글 속에 표현된 독일 슈바빙의 밤거리는 어떤 풍경일까?
이런 상상을 하며 읽었던 그녀의 글들을 다시 떠올리게하네요.
특히 학림다방이란 곳은 지난 시간을 묶어 놓은것처럼 많은 문인과 예인들의 안식처였다니..
그러한 공간이 분주하게 바뀌어져가는 주변 환경속에서도 꿋꿋하게 퇴색되지 않고 자리를 지켜
그 뜻까지 어루르고 버티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에 든든한 문화자산이 되고있군요.
자유롭게 살아 숨쉬는 것 같습니다. 해질녘에 가나골에 찾아 온 친구가 하는 말 칭구야 이만치 온다고 욕봤다 이제부터는 잠시라도 뒤돌아보면 가자 는 친구에 말이 지금도 귓전에 올립니다.
'칭구야 이만치 온다고 욕봤다 이제부터는 잠시라도 뒤돌아보면 가자'
까방님을 글을 읽는 동안 줄곧 김광석의 '서른즈음에'의 음율이 머리속에 뱅뱅 돕니다
대학로는 제가 연극했던 당시의 모습과 다른 서양의 어느 거리가 되었더군요. 바람이 있다면 우리의 전통적인 모습과 함께 어우러졌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글과 음악 사진 모두 추억을 떠올립니다.
저길을 걸어 본지도 아득한 아주아주 ~옛날이구나....
항상 젊음이 넘치는 거리~
언젠가...
거리공연에서 게임에 정답 맞쳐 연극티켓 두장 받은 기억이 납니다 ㅎㅎ!
예쁜 니들이 하셨네요~~~`까방님~~
젊은 시절 한 때 전혜린을 알고 그녀의 문학에 가슴 쓰리던 기억이 아직도 가슴에 방황과 열정을 불사르네요...
까방님이 같은 시대, 같은 느낌으로 더 정겹게 느껴집니다...
까방님의 혼자 즐기시는 법은
앞으로 노년의 외로움을 간단히 해결 하실 수 있겠습니다.
우리 모두 혼자 노는 법을 익혀야 하겠습니다.
고단하게 살아온 날 만큼
빈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갈 날이 아직 남아 있기에........
수원엔....나혜석 거리가 있어요......초입에 세워진 그녀의 일생을 한눈에 "스캔"하기 좋게 돌조각글 새겨놓았는데........사연을 읽다보면........가슴 먹먹하기도 하고......한편으론 불쌍하기도 하고.........또한편으론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복잡 미묘한(내생각엔) 인물이지요..........울나라 최초로 세계일주한 신여성 화가 .........일제강점기때 대단했던.....비련의 신여성 3걸 나혜석-윤심덕-일주스님(이름이 헷갈리넹~ 수덕사의 여승이란 노랫말의 주인공)..........그중의 한분이지요........언제한번 구경오세유~.............
아, 전혜린~~ 까방님의 깊고 깊은 가을 낭만, 아니 높고 높은 지붕~~ 그 위에 나, 하얀박꽃으로 잠시 피었다 가는~~ 이 아침 행복합니다
여전하신 까망님^^*
흐르는 음악에 옅은 감성이 까무라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