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O순 여사】
"어머니이임~
지난 제사 때는 섭섭하셨죠. 죄송해요,
제가 워낙 바쁘잖아요.
어머님께서 이해해 주세요.
그리고요, 아범이랑 다음 주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간 일본에 다녀와야 해요.
그래서 금요일 저녁부터 화요일까지 시윤이 좀 봐주세요,
유치원 등하교도 시키고요
저녁에 시윤이 데리고 찾아뵐게요"
어울리지 않는 코맹맹이 소리.
막내며느리 전화다.
"야야,
뭔 일이고,
근데 우야노, 내가 요새 스케줄이 꽉 차서 그리 몬한다.
너희가 시윤이 데리고 함께 가던지
안 그라몬 너희 친정에 맡기던지"
이틀간 출장이라는데 5일 동안 손자를 봐달라는 읍소다.
이것들 봐라!
딱 그림이 그려지는데 무슨 출장은.
어디 시애미를 부려먹을라카노
조금 있으니 아들이 득달같이 전화를 했다.
"엄니, 삐졌능교.
와 그라시는데요.
집에서만 지내시는 엄니가 무슨 일이 있다고
일주일 내내 스케줄이 꽉 찼다는게 말이 됩니까.
시윤이 어미한테 무슨 섭섭한 일이 있습니까.
마음 상했으면 말씀을 해보세요"
"야가, 무슨 말을 이리 하노
마음 상할일이 뭐 있니.
내가 요새 몸을 빼지 못할 만큼 많이 바쁘다.
월요일에는 걷기 방
화요일은 미술 그림방
수요일은 산행방
목요일은 영화방
금요일은 번개모임
토요일은 팝송방
일요일엔 이효석 봉평축제에 가야 한다.
이런 스케줄이 한 달 내내 이미 꽉 찼다"
몬땐 놈,
늙은 어미를 지 마누라 시다바리처럼 부려 묵을라 카네.
내가 지를 우찌 키웠는데
지 마누라 지 새끼밖에 모르는 몬땐 놈,
지난 팝송방 모임에 갔는데 심기가 아주 불편했다.
영어는 그래도 눈치껏 아는 척 하기는 했지만
불어인지 이태리 말인지 코맹맹이 발음으로 그것도 노래라고 쥐어짜는데
듣고 있자니 얼마나 불편하던지
서툰 발음이 너무 어색하고 오글거려서 자칫했으면 토나올 뻔했다.
눈꼴 시러버서 전신에 소름도 돋았다.
"더 영 원즈 ~ ♬
달링 위어 더 영 원즈 ~♩~ ♪
앤 더 영 원즈 슈든 비 어프레이드 ~♩ ♫~
투 리브 러브♩~♬
와일 더 플레임 이즈 스트 ~ ♫ ♬
커즈 위 메이 낫 비 더 영 원즈 베리 롱~ ♬"
어프레이드의 F 발음이 잘 안 되는 李여사
리브 러브의 L 발음과 롤링의 R 발음을 구분 짓느라
입술을 오므리고 벌리고
오늘 목 터져라 고함지르며 클리프 리처드의 '더 영 원즈'를 연습했다.
다음 토요일에는 눈꼴시러운 팝송방 여편네들에게 본때를 한번 보여주리라
내가 이래 봐도 再修해서 부산에 있는 이 년제 전문학교를 들어간 사람인데
어디 나를 우습게 봐.
아래 윗집에서 신고할지 모르겠다.
저 할매가 야밤에 노래도 아니고 왜 저리 고래고래 괴성을 내지를까, 미쳤나?
【金 O동 영감】
한 시간 정도 기다린 끝에 겨우 식권을 받았다.
하늘궁인가에서 나왔다는데 500원 동전도 주길래 고맙다고 했다.
식권으로 점심 먹고 오늘은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겠다.
그런데 며칠째
한치 어김없이 시간 맞추어 나오는 낡은 벙거지 朴 씨 영감이 오늘도 안 보인다.
달포 전부터 심상치 않게 콜록콜록거렸다.
이마에 송골송골 진땀이 맺혔길래 손을 잡아보았더니 끈적거릴 만큼의 땀이라 병원 한번 가보라고 했었다.
분명 더운 날씨 탓만은 아닌듯했는데 아무래도 병이 났나 보다.
오래전에 구식 휴대폰이 고장 났다고 했으니 어차피 연락이 되지 않을 테지만 마음이 쓰인다,
언젠가 벙거지 朴 씨는 박카스 할머니와 인근 여관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평소에도 말이 없는 朴 씨였지만 그 이후로 朴 씨는 더 말이 없어졌다.
무슨 이유인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짐작건대 박카스 할머니로부터 수모를 당한 듯했다.
구차한 그런 모습에 얼마나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홧김에 朴 씨 손을 잡아채고는 성남 모란시장 뒷골목으로 데리고 가서 술과 음식을 샀다.
모란시장 토박이인 주인 아지매가 사람이 괜찮아서 시중 만팔천 원짜리 흑염소탕을 식당 끝무렵에는 떨이로 만원에 판다.
朴 씨 영감 보고 그랬다.
이 사람아, 무엇이던 먹어야 힘을 쓰지
자네 통장의 몇 푼, 장례비로 안 남겨 두어도 괜찮아, 당신이 죽으면 시에서 무연고자로 장례 치러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날 朴 씨 영감은 오랜만에 흑염소탕에 취할 정도로 소주를 마셨다.
이래저래 오늘은 찌뿌둥해서 원각사에서 주는 식권 받으러 가는 일은 그만두고
온양 오일장에 다녀와야겠다.
전철이 온양온천역까지 운행되니 교통비는 걱정 없다.
오일장에서 수삼 몇 뿌리 싸게 사서 으슬으슬 몸살끼가 있으니 수삼이 흐물거릴 만큼 푹 고아서 숭늉 마시듯 마셔야겠다.
저 위의 李여사는
일주일 내 스캐쥴이 빼곡히 차 있단다.
李여사, 노후가 편안해 보인다.
나는 再修는 안했다.
그런데 아이엠에프 때 사업체가 거들 났고
이후로 하는 일마다 틀어져서 종래에는 마누라 하고는 남남이 된 지가 삼십여 년이 되어간다,
자식 놈들 하고도 연락 안 한 지가 오래되어 그놈들이 내 전화번호를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도 한 달 스케줄이 빼꼭하다,
달력에 일자마다 무료급식권 배급처와 시간을 빼꼭히 적어두었다.
李여사처럼 카페에 가입해서 모임에 참석하고 싶지만
식권 받으러 다니는 나를 어느 이가 반길까.
그렇지만 나 이래 봐도 컴퓨터는 삼십여 년 전에 사용해 보아서 다룰 줄 안다.
카페에 가입해서 이방 저방 다니며
아는 체도 하고 잘난 체도 해보고 싶다. 거들먹 거리기도 하고
나도 하고 싶지.
그런데…… 식권이 걸려서.
첫댓글
정답, 오답?
본인? 아는 분?
꽁뜨입니다. 픽션이지요.
고마운 댓글이예요, 다음에는 해석이 필요없는 댓글을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단문 댓글이라 내용이 어려워요 ^^
@둘째 네. 그리 할게요.
대화는 다들 이여사처럼 해야 한다 하고 실제는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세대공감,
긴 그림자를 끌고
노년의 강을 건너가는
모습들에 동병상련
이심전심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네요.
저물녁, 아름다운 마무리
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으니 주어진 시간
최선을 다하되 뜻은 하늘에
매였기에 바라옵건데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
다만 구하옵소서~~!
단편 드라마인듯
생생한 장면이 연상
되는 글 잘 보았어요.^^
이심전심?
동병상련?
아니예요,
지는 해님은 李도 金도 아닌
도도하고 지적이어서 접근하기 쉽지 않은 자신감 넘쳐 거만한 듯 당당한 그런 느낌이지요, 아닌가?
또 있어요, 불심깊은 자애로운 여인 ^^ 또 있어요 한 성깔하는 여사님^^
@둘째
어익후~
칭찬이 한짐 이라서
지고가나 이고가나
갈등생김니다요 헤헤~
아무튼,
기분은 두둥실~
띄워 주셔서 고맙습니다.^^
글허나,
제생각에는
지적이고 새초롬한
천생여자는 둘째님이셔요.
저는 날라리꽈 랍니다 ㅎㅎ
나름 얼심히들 사시네요.
새로운 거 배울 일 없이
지금 하는 일, 오래오래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어요. ㅎ
맞아요.
눈길 들어 자세히 살피면 누구나 제 자리에서 열심히 살고 있더군요.
언제나 안전운행 되시길 바랍니다.
이시대 몇프로에 해당되는
노인들의 자화상입니다
그나마 어디라도 다니고
어울리는 분들은 다행여요
외고집에 방구들 뒷방노인
거기다 지병까지 끌어안고
처참한 노후입니다
나도 점점 나이들어 노인되니
남의일 같지 않네요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읽는호강에 고맙습니다
아닌거는 그냥 지나쳐
넘겨버리셔요
안맞는곳 절필 하실까봐 염려했거든요 ㅋ
저도 이 글 쓰느라 키보드 만지면서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아직은 제몸 다스릴 수 있으니 감사할 일이예요,
나긋나긋하지 못해서 미움을 많이 받는 편인데 강마을님의 관심있는 응원 고맙습니다.
재밌기도 또 씁쓸하기도 하는
늙어가는 우리들의 자화상들
둘째님의 꽁트
글 솜씨가 참 좋습니다
고마운 댓글은 하루를 즐겁게 하지요.
고맙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재밌게 웃으며 읽었습니다만
노년생활이 남여가 확연히 다름을 확 깨달게 합니다
주변에 보면
여자분들은 갈수록 모임이 많아지고
남자분들은 갈수록 말이 없어지고 모임도 없어지고
저도 점점 힘이 없어지는데
모란시장이나 가봐야겠어요
그런데
모란장날 지금까지 한번 가봤는데 ㅎㅎ
맞아요, 남여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지요.
4일이 모란장이랍니다.
복잡한 곳이라 부대끼며 생생한 기운을 느낄수 있다고 하네요. 웃으셨다니 감사합니다^^ 힌 두사람 마뜩지 않아 보이는 시선은 모르는 척 넘어 갑니다.ㅎ
너무나 활발하게 사는 이여사... 뒷방 노인처럼 밥만 축내는 김영감 .. 요새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혼자사는 81세인 우리누이는 전국을 누빕니다. 30년전 매형이 별세했지요.. 누이는 파크골프치러 실버아파트 주민들과 베트남도 다녀옵니다. 나트랑. 푸꾸옥..등등
71세인 집사람역시 식탁옆 탁상용달력은 늘 새카맣게 써있습니다. 매일 아침 6세에 올림픽공원을 아파트주민들 10여명과 저랑 같이 걷는것 외에 매일 스크린골프하고 일주일에 한번은 친구들과 엮어 골프장행차.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특수학교 수업... 바쁘게 사는게 좋기는 하죠.. 이에 비하면 오갈때 없이 세월보내는 불쌍한 할배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군요. 누님이나 부인께서 예가 될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남성보다 활발하게 사회생횔을 하는것 같아요. 비록 홀로 되었더라도.
홀로된 경우에 남성들은 주변에서 보면 급속히게 노화가 진행되는것 같아요.
현재의 노인 풍속도를
콕 집어 내셨습니다.
몸 성하면 뭐든 배울 수 있어요.
저는 게을러서 그런 혜택을
못 봅니다.
참 좋은 나라입니다.
노인 복지 천국입니다.
김영감께도 나라에서 꽤 많은
돈을 줄겁니다.
신문에서 언뜻 보고말아
자세히는 몰라요.
꽁트가 재미있습니다.소설도
쓰실 분이십니다.
이미 쓰셨는지 모르겠지만요.
잘 읽었습니다.
저도
쨍하니 빛나는 님의 글,
기다리는 사람 중의 일인입니다.
꽁트 올리는 곳이 아닌데 이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조신하게 다듬어서 지언님 마음에 쏙 드는 글이 되도록 노력할께요.
한국생활 6년 입니다.
노인의 생활에서도 역시나 한국생활이
편리하고 활용적인것 같습니다.
잠시 교외 나들이 시니어팀에 참석하려면
최소 한달전 예약이 필요하기도 해서
혼자서 다녀야 하지요.
한국엔 카페라는 공간이 있어서 쉽게 어울리고
글처럼 매일 다른 스케줄로 바쁘게 생활이
가능 합니다.
픽션이라 하기엔 우리생활과 근접한 내용들
이어서 논픽션의 의미가 더 깊게 느껴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렇지요. 과장된 픽션이지만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수있는 비슷한 내용입니다.
자상하고 자세한 말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