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앞 광장을 지날 때마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을 속으로 욕한다. 정확히 하자면 대통령 이명박이 아니라 서울시장 이명박을 말한다. 도대체 이(李)시장은 무슨 생각으로 시청 앞 교통체계를 엉망으로 만들면서까지 이런 쓸모 없는(?) 풀밭을 만들어놓은 것일까?
그는 진정 목청을 한껏 높이고자 하는 시위대(隊)가 마땅히 데모할 곳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이런 넓은 시위장소를 만든 것일까? 또는 시민들이 여흥을 즐길 장소가 없고 북소리·장구소리 드높일 밴드들이 공연할 곳이 없는 것을 개탄해 광장을 만든 것일까? 아니면 시민들이 모여 축제라는 이름 아래 먹고 마실 수 있는 시장터를 제공하기 위한 것일까?
그가 그런 의도로 서울광장을 만든 것이라면 그는 크게 칭송 받아 마땅하다. 금년 들어 지난 10월31일까지 300일 동안 시청앞 광장을 이용한 데모, 집회, 전시 건수는 허가 사용이 108건, 불법무단 사용이 23건 모두 131건이다. 이 중 상당건수가 하루로 끝난 것이 아니라 며칠씩 계속된 것도 있어 거의 이틀에 하루 꼴로 서울광장이 사용된 셈이고 참가자는 모두 550만명인 것으로 서울시 자료는 밝히고 있다. 서울시민의 절반이 서울광장을 이용했고 광장의 잔디는 거의 매일 몸살을 앓았지만 이 시장은 그런 것을 개의치 않은 셈이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시민들의 눈을 싱그럽게 하고, 여름이면 어린이들이 분수에 옷을 적시며 물놀이를 하고, 점심시간 직장인들이 잡담하며 휴식하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넓은 풀밭을 만든 것이라면 그의 의도는 참담하게 빗나간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대통령 취임 이후 보여준 그대로 퍽이나 이상주의적이거나 안이한 로맨티스트 또는 대단한 포퓰리스트일 가능성이 높다.
그가 복권한 청계천도 점차 퇴색해가고 있다. 청계천 광장도 그의 순수한 의도나 계획과는 달리 시민들의 단란한 휴식공간이 되기보다는 각종 집회와 상업적 용도로 변질되고 있고 청계천 그 자체도 본래의 모습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어 산책하며 물고기와 꽃나무 등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등돌리게 한다.
이명박씨의 뒤를 이어 서울시장을 맡은 오세훈 시장도 ‘이명박 신드롬’의 포로(?)가 돼가고 있는 것 같다. 그가 야심차게 만들고 있는 광화문광장도 어쩌면 데모의 또 다른 메카가 될 공산이 크다. 세종로의 차로를 줄이고 대신 그 가운데에 광장을 만든다는 기도(企圖) 자체를 나무랄 생각은 없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으로 미루어 머지않아 광화문광장이 완공되면 시청앞 광장과 쌍벽을 이루며 대한민국 시위 및 집회장소의 양대 산맥을 이룰 것이 틀림없다. 자칫 두 광장은 서로 대립되는 데모대의 시위장소로 나뉘어 때론 광화문 네거리에서 충동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참으로 볼 만한(?) 데모공화국의 극치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시장’이나 ‘오 시장’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시위에 굶주리고 데모에 올인하는 이 ‘불평불만 공화국’, ‘너 죽고 나 죽자는 막가파 사회’,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확성기 볼륨을 올려야 속시원한 ‘고성방가병(病)’이 문제라면 문제다.
경찰이 집계한 전국 집회·시위 발생 추이를 보면 2003년부터 2007년에 이르기까지 매년 1만건이 넘었다. 금년은 아마도 쇠고기 파동 때문인지 7월까지 이미 8000건에 달했다. 인구 100만명당 발생 건수가 우리는 250여건인 데 비해 일본은 75건이고 유럽국가로서는 데모가 비교적 많다는 프랑스가 23건인 것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데모를 많이 하는 나라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니 광장들이 쉴 날이 있겠는가.
혹자는 우리의 정치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너무 저질이고 불만투성이기에 데모가 많을 수밖에 없고 그런 상황에서 마땅히 의사표시를 할 장소가 없어 ‘빈 공간’을 이용하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고 말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정도의 문제다. 우리의 시위는 이제 ‘정권타도’에서 ‘골목길 한 개 넓히는 문제’까지, 사회문제에서 개인문제에 이르기까지, 안 걸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남용되는 경향이 있다.
그뿐 아니라 데모의 방식도 문제다.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에는 엄연히 확성기 소리의 크기, 집회장소의 범위, 집회의 도구 등에 대해 규제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시청앞 광장과 주변에서 그런 규정이 지켜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데모대의 확성기 소음으로 귀를 막아야 하고 교통이 막혀 먼 길을 돌아가야 하며 혹시나 봉변을 당할까 시청 앞을 피해 다녀야 하는 이 ‘비(非)데모 시민’은 과연 어디 가서 이 불만을 호소해야 하는가? ‘우리도 좀 조용히 살자’는 데모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데모에 시달리고 잔디를 갈아대느라고 많은 돈과 노력을 들여야 했던 서울시도 ‘우리라고 못할 소냐’며 드디어 자기들도 시청앞 광장을 장터로, 놀이터로 만들었다. ‘하이 서울 페스티벌’인가 뭔가 한다면서 광장 주변에 족보에도 없는 몽골풍(風)의 ‘뾰족 천막’을 치고 잔디를 작살내더니 주변 도로까지 차단해 일년 내내 집회에 시달려온 시민들을 또다시 괴롭혔다.
시청 주변을 다니면서 푸른 잔디를 본 적이 언제인가 기억이 까마득하다. 광장 주변에 항상 이상한 천막들이 둘러쳐져 있어서 광장 안 잔디가 어떻게 생겼는지 잊어버렸다. 푸른 잔디에 누워 하늘을 보는 시민들과 어린이들을 본 적은 또 언제인가 아리송하다. 시민들이 저녁에 흥겨운 음악소리에 맞춰 어깨를 흔들며 손뼉을 치는 정겨운 광경을 본 적이 언제인가 기억이 없다. 정말로 이명박 대통령을 상대로 나에게서 서울시청 앞 광장을 앗아간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이라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