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6일(화)
* 시작 기도
주님...
아브람은 아브라함으로, 사래는 사라로 이름이 바뀌었고 아브라함 이하 모든 남자들은 할례를 받았습니다(창 17장).
나 역시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정체성이 바뀌었습니다.
내 뜻대로 살던 자가 이제는 나의 뜻과 생각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사는 자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니 나를 온전히 주의 것으로 삼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이 하루도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우소서.
내 안에서 나를 진리에서 멀어지게 하는 온갖 상념들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사 주의 긍휼을 베푸사 주님만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막 6:30-44
제목 : 떡을 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30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31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32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33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
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35 때가 저물어 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200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39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40 떼로 100명씩 또는 50명씩 앉은지라.
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42 다 배불리 먹고
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 떡을 먹은 남자는 5,000명이었더라.
* 나의 묵상
예수님으로부터 파송을 받고 전도여행을 떠났던 사도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와서 자신들이 행했던 일과 가르쳤던 것을 모두 예수님께 말씀드렸다.
말씀을 들으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제 한적한 곳에 가서 좀 쉬라고 하셨다.
그 이유는 오고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과 그들이 식사할 시간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갔다.
그런데 그들이 배를 타고 가는 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알아보고 여러 마을에서부터 걸어서 그들보다 먼저 그 장소로 모여들었다.
예수님이 배에서 내리면서 모인 많은 사람들을 보셨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다.
한편 날이 저물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씀드렸다.
이곳은 빈들인데다 날도 이미 저물었는데 사람들을 보내어 마을들로 가서 먹을 것을 사먹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다.
그러자 제자들은 의아하다는 듯이 우리가 200데나리온어치 떡을 사서 먹이라는 말씀이냐고 물었다.
이에 예수님이 그들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는지 물으셨다.
그들이 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을 100명씩 또는 50명씩 잔디 위에 앉게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신 후에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고 그들은 다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렇게 떡과 물고기를 사람들이 모두 배부르게 먹었다.
그들이 먹고 남은 것을 12바구니에 가득 차게 거두었는데 이를 먹은 사람들은 남자만 5,000명 정도였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얼마나 유명한 기사인지 4복음서에서 공히 다루고 있다.
그런데 공관복음서인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지극히 작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성인 남자만 5천 명을 먹였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야말로 기적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 오병이어의 기적 사건을 요한복음에서도 똑같이 다룬다.
하지만 이는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하는 이적적인 일을 표적이라 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진짜 표적은 어린 아이의 점심도시락 하나에 해당하는 오병이어로 성인 남자만 5천 명 남녀노소 모두 합하면 최소 2만 여명을 먹인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요 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이 말씀의 의미는 너희들이 오병이어를 통하여 본 표적은 진짜 표적이 아니다.
다만 너희들이 나를 찾아온 이유는 표적이 아니라 다만 먹고 배불렀기 때문에 지금 다시 나를 통해서 먹고 배부르기 위하여 온 것이라고 일갈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떼어주신 떡과 물고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5천 명이 먹은 떡과 물고기는 육신의 배를 부르게 한 기적의 물고기가 아니라 그 진의는 바로 예수님의 살과 피이다.
예수님의 이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가 진짜 표적을 본 사람이요 그 표적에 참여한 자가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육신의 양식으로 먹은 그 떡은 사실 썩을 양식이다.
이제는 그런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을 주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양식은 인자이신 주님께서 주시겠다는 것이다.
(요 6: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따라서 주님이 주기 원하시며 영생을 주는 생명의 양식은 하늘로부터 오신 참 떡이다.
(요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주님께서는 이어서 직접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조상들이 먹었던 만나는 하나님이 주기 원하시는 진짜 떡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먹고도 다 죽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너희가 먹으면 다시 죽지 않는 생명의 떡을 주겠다고 하신다.
(요 6: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헬, 사릌스)이니라 하시니라.
영생을 주는 생명의 떡인 주님의 살을 먹는 것은 다름 아니라 주님을 믿는 것이다.
(요 6: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예수를 믿는 자가 영생을 가졌고 또한 주님의 살을 먹고 마시는 자가 영생을 얻는다.
(요 6:54-55)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이처럼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시는 것이 바로 믿는 것이며 이런 자가 영생을 얻게 된다.
그 영생은 지금 현재로 즉시 얻지만 또한 미래적인 의미에서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 최종적으로 완전한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이것은 다름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것이다.
그래서 영생을 얻은 자는 이 생명의 말씀을 날마다 먹고 마시며 주님과의 교제와 사귐을 가진다.
말씀 앞에 서면 모든 만물이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난다.
그것이 바로 말씀의 능력이다.
(히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심판)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주님이 오병이어의 표적을 본 사람들에게 진짜로 보여주기 원하셨던 표적은 그런 육신적인 표적이 아니라 요나의 표적으로 무덤의 표적이었다.
이를 가리켜 장사복음이라 한다.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것이 아니다.
아리마대 요셉에 의해서 무덤에 장사되셨다.
바로 그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이다.
따라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우리 주님과 같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고 또한 주님의 그 무덤에 나도 함께 장사되어야 한다.
그렇게 십자가와 무덤에 연합할 때 새 생명으로 행하게 된다.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이것이야말로 표적 중에 표적이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표적을 보며 호기심 때문에 신기해하며 열광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술을 보면 그 행하는 속도가 너무나 빨라서 우리의 눈으로 미처 보지 못할 뿐인데 그런 속임수로도 우리는 너무나 신기해하지 않는가?
그래서 그런 마술을 보고 또 보고 싶어한다.
나는 지금까지 예수님이 행하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런 마술과 같이 우리의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것쯤으로 보았던 것이다.
물론 마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육신을 넘어 영의 것 무엇보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으로는 전혀 알지 못하였다.
나아가 그 표적이 무덤을 표상하는 장사복음이라고는 언감생심 감히 상상도 못하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배부르게 먹었던 떡이 예수님의 살과 피였다니 그저 손으로 입을 가릴 뿐이다.
그들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지라도 그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고 먹었다면 그것은 아무런 효험이 없다.
그저 육신의 배를 부르게 하는 육신의 떡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배를 부르게 한 그 떡을 다시 먹기 위하여 다음날 아침에도 예수를 찾지 않았는가?
내가 바로 그런 자임을 부인할 수 없다.
예수를 이용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는 것, 그것은 사실 믿음도 신앙도 아니다.
그저 예수님을 요술램프로 이용하는 것이요 말씀을 나의 성공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예수님과 말씀은 존재이지 결코 존재물이 아니다.
우리가 이용해야 하는 것은 이런 존재물이다.
다만 존재이신 주님 곧 말씀은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향유의 대상이다.
그동안 나의 어리석음과 불충으로 인하여 하나님이신 주님을 우상으로 섬겼음을 인정하며 나의 유익을 위하여 이용하는 존재물에서 존재로 향유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생을 주는 생명의 양식임을 믿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생명의 떡이 되기 위하여 육신으로 태어나실 때에도 짐승의 밥통인 구유에 누우셨습니다.
제발 나를 먹으라고 하신 것이지요.
그런데 나는 그 주님을 생명의 양식으로 먹기보다는 나의 유익을 위하여 수단과 도구로 얼마나 많이 이용하였는지요.
이런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임이 분명합니다.
주님의 공의로 나를 심판하소서.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그 무엇도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드러나지 않음이 없도록 벌거벗은 자가 여기 있습니다.
주의 심판을 받아들인 자는 주님의 무덤에 함께 연합하여 장사된 자이오니 이제는 새 생명으로 행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당신의 살을 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신 것처럼 나 또한 주의 복음을 나누는 자로 살기 원합니다.
내 것을 내 것이라 주장하지 않고 더 많이 나눌 수 있기를 원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주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