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21장)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첫댓글
바울님은
새 예루살렘 성과 아버지의 집,
낙원을 동일한 하나의 장소로
보나요,
서로 다른 곳으로 보나요?
새 예루살렘은 아버지의 집이 완성된 것입니다.
믿은 사람이 죽어 가는 낙원은 부활 전까지 머무는 임시 거처이지요.
주님도 사흘 만에 낙원에서 나오셔서 지상에서 40일 더 계시다가
승천하셨지요.
(계21장)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 자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그 성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 문이니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같은 뜻임~~!!
네. 동의!
완성된 교회.
제대로 보셨네요.
요한복음 14장 2절을 보면
아버지의 집에서 거처를
마련한다고 합니다.
이게 성도입니까?
셋째하늘이 성도입니까?
낙원이 성도입니까?
바울은 그곳에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계시를 받았는데
말입니다 ~ 고린도후서 12장
말도 안되지요?
이름만 다를뿐 다 한 장소입니다.
결코 성도가 아닙니다 ~
요 14:2의 내 아버지의 집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이지요.
@김바울 엡 2:21-22
'십자가 고통'과 '사십일 금식'은 말로 하는 고품격 인문계 철학이 아니라 몸으로 조지는 개막장 이공계 산수입니다. 그 신은 제대로 개막장을 달리는 전투적인 FM군신입니다. 그게 '전쟁에 능하신 만군의 주'입니다.
그 책을 싸가지 없게 댁들 멋대로 판단하면 그 신께서 댁들 주변에 올라운드 흉기로 도배를 해버리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게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입니다.
일단 그 고통은 스킨 메커니즘을 싹 다 걸레로 만들어야 되니까 바이오닉으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굶음은 왕년에 목소리 좋은신 분 한 방에 제대로 골로 가셨지요. 그건 영문학적으로 '킬'이 아니라 '터미네이트'입니다.
매일매일 회개를 똑바로 처하는 삶은 개막장 하드고어 밀리터리 받아쓰기 산수놀이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고통과 그 굶음이 몬 족까는 의미인지 '유레카'하면 그 신의 실체가,
개막장 하드고어 폭력산수 ㄱㄹㅅㄷ인 걸 처알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