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하루를 살면 그만큼 더러움을 잔뜩 묻힐 수밖에 없는 인간입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오늘도 자격 없는 자, 주님의 이름을 힘입어 나아가오니
아버지 품속의 평강만을 구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30.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31.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32.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33.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
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35.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39.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40.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 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42. 다 배불리 먹고
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본문 주해)
30~34절 : 제자들이 회개하라고 전하면서 귀신도 쫓아내고 병도 고쳐주니 제자들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온다. 예수께서 식사할 시간도 없는 것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라고 하신다.
사람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서 가는 방향을 보고 강을 둘러 달려오니 배보다 먼저 도착하여 예수님과 제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무리가 몰려 왔는지 아이와 여인들을 빼고 성인 남자들만 오천 명이 되었다.
예수께서 이 큰 무리를 보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여기시며 불쌍히 여기신 것이다.
그들에게 종교적으로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율법 선생들이 있었고, 정치적으로는 헤롯과 수많은 관리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참된 목자들이 아니기에 예수님은 그 큰 무리를 목자 없는 양같이 불쌍히 여기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몰려온 무리로 쉼의 시간을 포기하고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가르치신다.
35~37절 :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오래 걸린 모양으로, 저녁 때가 되어 간다. 조바심이 난 제자들이 무리를 보내어 각자 음식을 사 먹게 하자고 예수님께 말씀을 드린다.
주님은 이때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다.
30절로 보면 제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다. 그런데 그런 보고가 끝나고 돌아서자마자 이백 데나리온이라는 현실적 계산을 하는 자들이 되고 만 것이다.
38~44절 : 제자들이 급하게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알아보니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었다. 예수께서 이것을 들어서 하늘을 쳐다보고 축복하신 다음에, 빵과 물고기를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다.
모두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빵을 먹은 사람은 남자 어른만도 오천 명이었으니 여자와 아이들을 합치면 15,000~20,000명으로 추측된다.
(나의 묵상)
나의 영원하신 목자 예수님(30~34절) : 아무리 친해도 살아가면서 모든 것에 한마음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남편도, 자식도 한마음일 수가 없고, 성도들 가운데서도 완전히 한 마음이 될 수 없다. 영적으로 어느 정도 한마음인 것 같다가도, 삶의 구체적인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또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각각 자신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사시대 그렇게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갔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이 세상의 삶의 모습임을 보여준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
목자 없는 양은 위험한 길인지도 모르고 헤매다가 결국에는 큰 짐승에게 잡아먹히거나 고립되어 굶어 죽게 되는 양이다.
이런 비참한 양처럼 세상 속을 헤매고 다니던 나를 예수님께서 찾아내 주셔서, 그분의 품에 안아주셨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하심과 나타나심과 또 하늘에 오르시고 성령을 보내주심을 믿음으로 영혼의 목자시며 주인 되신 예수님께로 돌아온 양이 된 것이다. 그것은 내가 돌아간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찾아내신 것이다.
그런데 내게는 아직도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결정하려는 성향이 남아 있고, 그 증세에 늘 시달린다. 그러므로 피 흘리심으로 나를 찾아내 주신 그 목자의 음성을 매일 듣지 않으면 내게는 소망이 없다.
세상 속에서 들리는 유혹과 ‘너의 생각이 중요하다’고 속살거리는 사탄의 음성에 혹하지 않으려면 언제나 주님의 음성에 귀를 귀울여야 하는 것이다.
참된 목자는 성경이 증거 하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예수님 한 분만이 나의 영원한 목자가 되신다.
너희가 주라(35~44절) : 주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파송하시며 전도하게 하셨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능력을 기뻐하며 전도했던 내용을 보고했었다.(30절)
그런데 당장 먹을 것이 없는 현실적 문제 앞에서 조금 전까지 말하고 기뻐했던 하나님의 능력은 다 잊어버리고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들이 되어 ‘200 데나리온’을 운운하는, 계산하는 자들이 되었다.
주님은 그와 같은 그들에게 ‘너희가 주라’고 말씀하시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주신다. 어쩌면 이 기적은 모여온 무리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 곁의 제자들을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주님은 제자들이 무엇을 주기를 말씀하신 것일까?
오병이어의 기적의 참 의미는 요한복음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썩는 양식을 구하지 말고 생명의 양식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 오병이어로 먹이신 주님의 뜻인데 이 진리의 말씀에 그렇게 많이 따라다니던 무리들이 다 흩어져 버린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주님의 양이 아닌 자들이요, 참 진리를 들을 귀가 없는 자들이다.
제자들로 하여금 ‘주라’고 하신 것은 썩는 양식이 아닌, 생명의 양식 즉 복음이다.
이제 나는 주님께서 찾아내신 양이 되어, 이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게 되었다.
세상에는 그럴싸한 명언이 많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듣기 좋은 말들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런 말들을 하면서 복음 없이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산다.
하루 온종일 웃으며 함께 하였어도 복음을 나누지 못하는 관계는 참으로 헛헛하다. 세상의 방식으로 서로를 좋아하고, 세상의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면서도 자신이 주님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다.
어리석고 편협한 나로 하여금 매일 말씀 앞에 나아가게 하신 이유는 매일 말씀을 통해 내가 듣는 복음을 주변인들에게 나누고 전하라는 사명을 주신 것임이 점점 확실해진다.
하루도 빠짐없이 묵상한다고 칭찬하는 말이 내게는 더 이상 기쁨이 되지 않는다.
그런 칭찬을 백 번 듣는 것보다 주님의 말씀을 단 한 번이라도 나누는 것이 더 기쁘기 때문이다.
‘너희가 주라’ 하신 말씀 앞에 다시 고개를 조아린다.
쓸데없는 분위기에 휩쓸려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오직 복음을 전하고 나눌 수 있도록, 주님께서 명철과 지혜 주실 것을 간구한다.
이곳저곳에 먹을 것이 늘려있고 놀 거리가 많아도, 한눈팔지 않고, 영원하신 목자 예수님만을 따라가는 단순한 양이 되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세상 속을 헤매고 다니던 어리석은 양을 찾아내 주시니 감사합니다.
지극한 평안을 주시는 주님의 품속을 맛본 자,
이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지혜와 명철을 주셔서
즐거움이든 우울감이든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게 하시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제가 어찌할 수 없는 모든 상황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