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고 수필을 쓰며 책을 읽는 사람들은 으레 감성이 남다르다고 한다.
남의 슬픔에는 눈시울을 붉히고, 세상의 아픔에는 누구보다 깊은 한숨을 내쉰다. 말 한마디에도 수많은 의미를 찾아내고, 바람 한 줄기에도 인생의 철학을 붙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그토록 넓은 세상을 품는 사람들이 어찌하여 자기 마음 하나는 그토록 좁게 품는 것일까.
남의 글에는 관용이 넘치는데 자기 글에 대한 평가는 유난히 엄격하고, 남의 상처에는 공감하면서도 자신의 자존심에 작은 생채기라도 나면 금세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세상을 노래하는 시인의 마음속에도 때로는 벤댕이 한 마리쯤 살고 있는 모양이다.
문학을 한다고 해서 사람이 특별히 고상해지는 것은 아니다.
문학은 사람을 성인군자로 만들어 주는 자격증도 아니고, 많이 읽었다고 해서 인격까지 함께 두꺼워지는 것도 아니다..
책을 백 권 읽은 사람이 책 한 권도 읽지 않은 사람보다 반드시 넓은 마음을 가진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생각에 그럴듯한 문장을 붙여 그것을 진리처럼 포장하는 재주가 생길 수도 있다.
참 편리한 재능이다.
세상 모든 사물에는 값을 매기면서 사람에게는 값을 매기지 말자고 말하는 것이 문학이다.
그런데 정작 문학인들끼리 모이면 은근히 사람의 값을 매긴다.
누가 더 유명한가.
누가 더 많이 배웠는가.
누가 더 오래 글을 썼는가.
누구의 글이 더 주목받는가.
말은 겸손을 이야기하면서 마음속에는 작은 저울 하나씩을 품고 다닌다.
그러다 보니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문학보다 인간관계가 더 어려운 경우도 있다.
아름다운 시 한 편을 함께 읽고도 돌아서는 순간 마음에 작은 금이 가고, 따뜻한 수필을 함께 감상하고도 사소한 말 한마디에 서운함이 쌓인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을 하는 사람들이 때로는 가장 서투르게 사람을 대한다.
하지만 그것을 지나치게 나무랄 일도 아니다.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성인군자가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감정이 있다.
질투도 있고, 서운함도 있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도 있다. 문학인은 그것을 조금 더 아름다운 말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일 뿐, 감정에서 면제된 사람은 아니다.
그러니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너무 높이 올려놓을 필요도 없다.
시를 쓰는 사람도 사람이고, 시를 읽지 않는 사람도 사람이다.
문학을 하는 사람도 상처받고, 문학을 모르는 사람도 눈물을 흘린다.
어쩌면 진짜 문학은 거창한 문장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도 함부로 마음의 값을 매기지 않는 데 있는 것인지 모른다.
좋은 글을 쓰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있다.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이다.
그리고 더 어려운 일은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스스로 믿지 않는 일이다.
문학의 마지막 공부는 결국 사람 공부다.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게 썼느냐보다, 사람을 얼마나 따뜻하게 대했느냐가 오래 남는다.
이제 우리는 인공지능이 쓴 글과 마주하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영혼 없는 글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인간의 감성과 진정성을 대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물론 기계가 인간처럼 상처받고 기뻐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장을 만들고, 생각을 정리하고, 사람의 마음을 비추는 글을 만들어 내는 일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을 이해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인공지능의 글과 논리를 받아들이는 일은 지금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그때에도 인간의 감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감성만을 내세워 기계의 가능성을 부정하거나, 반대로 인공지능의 논리만을 앞세워 인간의 마음을 낡은 것으로 치부하는 태도는 모두 좁은 생각일 수 있다.
시를 쓰는 사람도 사람이고, 인공지능을 만든 사람도 사람이다.
인공지능이 만든 글을 읽는 사람도 결국 사람이다.
그러니 오늘도 시를 쓰기 전에
내 마음 한구석에 숨어 있는 벤댕이부터 한번 들여다볼 일이다.
혹시 내가 쓰는 글보다
내 마음의 그릇이 더 작은 것은 아닌지.
그리고 혹시 새로운 시대를 받아들이는 내 마음이
내가 쓴 문장보다 더 좁은 것은 아닌지.
첫댓글 잘읽고 갑니다.
마치 글을 쓴다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회초리로 자근자근
후려치는 것 같습니다.
저도 문학동인들을 이끌고 있지만
그걸 단석님이 다 엿보고있는 것 같아서
뜨끔하기도 하네요.
서로 자성해야겠지요.
문학을 사랑하는 우리가 서로의 부족함을 탓하기보다 함께 성찰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문학이 주는 귀한 가르침일 것입니다.
석촌님의 따뜻하시고 겸허한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하고 싶은 말씀을
제대로 쓰신 것 같습니다.
AI 는 따지고 보면,
자신의 글을 파악해서
자신의 논리로 편들어 줍니다.
편을 든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내 놓은 글에 발 마춤 입니다.
말하자면,
내가 쓴 방향으로 도움을 준다는 것이지요.
결국 잘 이용하는 사람은 글이 보다 나은 글이 되지만,
체험없이 글로만 잘 난 사람은 AI 글도 AI 일 뿐이지요.
사람의 체험에서 나오는 글이 아닐테지요.
요즘, 수필방에 맞지 않는 글이 올라와 티격 태격입니다.
다름을 인정하되 수필방 고운 분위기는 지켜야 하지요.
뭘 잘 한다고 인격이 좋으면, 더 할 나위 없지요.
단석님의 글이 오늘 따라, 심층 분석입니다.ㅎ
수필방 글이 아닌 줄 알면서도 수필방에 올리는 심뽀는
밴댕이가 몇 마리 일까요.
또 밴댕이가 없어도,
사람들은 재미없어 하거든요.
호기심으로, 구경하러 달려오는 세상입니다.
단석님의 글, 정석입니다.
속 시원하게 잘 읽었습니다.
콩꽃님, 글의 뜻을 깊이 헤아려 주신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AI가 아무리 정교한 문장을 빚어낸다 해도, 글의 깊이와 온기는 결국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체험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서로의 다름은 너그러이 품되, 수필방의 고운 정취와 품격은 함께 지켜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제 글의 제목에 담은 ‘밴댕이’까지 여유롭게 받아주셔서 미소가 납니다.
때로는 작은 다름과 호기심마저도 사람 사는 세상의 한 풍경이겠지요.
귀한 말씀 깊이 새기겠습니다.
따뜻한 공감과 정성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흔히 하는 말로 <밴댕이 속알머리 하고는> 하면서 상대방을 핀잔을 주곤하지요... 남을 아량으로 이해하고 보듬어 주면서 내의견과 좀 틀리다고 대립하지 않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게 정말 어렵습니다. 나역시 밴댕이가 뱃속에 수십마리 있을겁니다.
남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품어주는 일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예외일 수 없겠지요. 마음속에 밴댕이 몇 마리쯤은 키우고 있을 테니까요.ㅎ
서로의 다름을 조금 더 넉넉히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배워야 할 삶의 지혜가 아닌가 싶습니다.
따뜻한 말씀, 고맙습니다.
저도
거울에 비추어진
마음을 들여다 보듯
한자한자 꼼꼼히 읽게
되는군요.
자칫, 통달한듯
안다이즘의 우물에
빠지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늘 생각하는 일상,
살피고 배려하는
넓이와 깊이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글
잘보았어요. 멋지심~^^
따뜻한 마음으로 읽어주시고 깊은 생각까지 나누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 역시 글을 쓰며 남을 돌아보기보다 먼저 제 마음을 비춰보게 됩니다.
‘안다’는 마음이 때로는 가장 좁은 우물이 될 수 있음을 새삼 생각합니다.
좋은 말씀 오래 마음에 새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