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복숭아
오정순
“택배 왔습니다!”
딸 이름으로 배달된 것은 내가 좋아하는 단단한 복숭아였다.
우리 가족은 과일을, 그 중에서도 나는 향 가득한 단단한 복숭아를, 남편은 한입 베어 물면 단물이 주르르 흐르는 몰캉몰캉한 복숭아를 더 좋아하기에 이때쯤이면 매 주마다 두어 개의 복숭아 빈 박스가 나온다. 왜 복숭아를 좋아하는지, 언제 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고 남편은 경험도 없이 사업을 시작했고 두 번째 아이가 만삭일 때 쯤 2년도 못되어 부도난 수표를 잔뜩 받아놓은 채 사업을 접어야만 했다.
빚쟁이들이 찾아오고 끼니조차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병원에서 아이를 낳는 건 사치라 생각했다. 골반이 좁아서 어렵게 출산하는 신체구조를 알면서도, 위험한 일이 생기면 병원으로 보내니 걱정 말라는 조산원의 말을 듣고 가격이 저렴한 조산원에서 열두 시간을 진통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간간히 태아의 상태를 살필 때까지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잘 생긴 사내아이를 낳았지만, 맥은 뛰는데 심장이 뛰질 않는다며 술렁거렸다.
결국 그 아이는 두 시간을 겨우 넘긴 상태에서 하늘나라로 갔다.
손이 귀한 집안인데… 서운해 하는 남편과 시어머님의 모습이 보였다. 경찰을 부르겠다며 소리치는 남편과 잘못을 빌며 보상하겠다는 조산원의 말을 뒤로한 채 흐르는 눈물을 빗물로 씻으며 집으로 왔다.
그리고 그날 밤, 나의 미련함과 남편의 무능함과 시어머니의 눈치를 생각하며 펑펑 울었다.
내 처지의 가련함을 하늘도 아셨는지, 어느 날 밤 복숭아밭에 누워서 날아다니던 복숭아 받는 꿈을 꾸고, 친구처럼 지내는 지금의 딸을 가졌다.
그래도 여전히 형편은 어려워 닥치는 대로 돈이 되는 일이라면 했다. 그런데 왜 그리 복숭아가 먹고 싶은지… 꿈속에서 봤던 그 복숭아가 자꾸 아른거렸지만, 쉽게 사 먹을 형편은 못 되었다.
눈치 챈 남편이 과일가게로 이끌었다. 그러나 주머니 사정을 알기에 망설이고 있는데 플라스틱 바구니에 가득 담긴 복숭아가 눈에 들어왔다. 진열된 것보다 몇 배는 싼값이었다. 나는 몇 개 골라 담던 남편의 봉지를 빼앗아 내려놓고 바구니에 담은 것을 달라고 했다. 주인아주머니는 “임신 중인 것 같은데 예쁘고 잘생긴 놈으로 먹지 그래요?” 하셨다. 남편도 속이 상한지 툴툴 거렸다. “내가 먹을 건데 어때요. 맛만 있으면 되는 거지.” 내 마음을 이해했는지 “새댁이 뭘 좀 아네. 모양은 이래도 맛은 좋아요. 저것도 발라내면 먹을 만한데 가져갈래요?” 하면서 선별해 놓은 썩은 복숭아 상자를 가리켰다.
그날 저녁 남편은, 복숭아는 어두운데서 먹어야 한다는 둥 벌레 먹은 복숭아가 더 맛있다는 둥의 나의 강의를 들으며 술을 마셨다.
그 이후 난 시장이 문을 닫을 때쯤 늘 진열된 과일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맨 아래 바구니에 담긴 복숭아를 푸짐하게 들고 왔다.
이사람 저 사람이 만져서 내 속 만큼이나 멍든 것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상처 난 것들이 나의 성난 식욕을 만족시켜주었다.
단골이 되어버린 과일 가게 아주머니가 나에게 주려고 선별해 놓은 복숭아를 담고 있을 때 진열된 상품을 고르던 어느 신사분이 주먹만 한 복숭아 두 개를, 들고 있는 내 봉투에 넣어주고는 급히 자리를 떴다. 쓸데없는 자존심이 나를 슬프게 하여 고맙다는 말도 못한 채 도둑질 하다 들킨 것처럼 집으로 뛰어오고 말았다.
콩닥거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고 달콤한 향까지 가득담긴 아삭아삭 씹히는 복숭아를 먹으며 나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나도 이런 복숭아 살 수 있어. 그렇지만 나는 마음 착한 그 아주머니의 팔리지 않는 물건을 팔아 준 것 뿐이야.” 그러나 그건 단지 나에게 거는 체면일 뿐 자꾸만 잘 생긴 진열된 과일을 고르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 다음해 썩은 복숭아를 먹고 자란 딸은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진열된 최상품을 먹고 자란 친구들을 앞질렀다.
가끔씩 두 시간동안 이 세상에 머물다 간, 얼굴도 모르는 아들이 보고 싶고 미안하여 울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그 아이가 살았다면 이쁜 딸이 지금 내 곁에 없을 거라 생각하니 잔인하리만치 쉽게 잊을 수가 있었다.
외로운 6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중요한 시험을 위해 잠시 귀국한 몇 개월도 쉬지 않고 직장을 다녔고 월급은 모두 엄마 아빠를 위해 이것저것 챙기는 착한 딸로 자랐다.
다음 달이면 다시 출국해야 하는데, 오늘도 시험 준비를 위해 도서관에 간 딸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모처럼 딸을 마중하리라 생각하고 시간에 맞춰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나갔다. 버스에서 내리는 딸은 감동 받았다며 팔짱을 낀다.
시장 통을 막 들어서려는데 “엄마 잠간만!” 하며 복숭아를 팔던 노점상 할머니 앞에 멈췄다. 할머니 얼굴 닮은 쭈글쭈글한 것과 검버섯이 핀 것처럼 검게 변한 복숭아가 지친 할머니처럼 바구니에 힘없이 놓여있었다.
이 시장엔 과일가게만도 일곱이다. 더구나 눈앞이 싱싱한 과일가게다.
“할머니 이거 모두 얼마예요?”
할머니는 한꺼번에 계산도 힘드신 듯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만 원만 주세요.” 하셨다.
“아까 택배 왔더라. 복숭아 두 박스… 근데 뭐하러 또 사니? 물건도 별로인데…”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응, 엄마 이런 복숭아 좋아했다며? 그래서 나 가졌을 때 매일 복숭아 먹었구… 근데 나두 이상하게 이런 게 더 맛있어. 뱃속에서부터 썩은 복숭아 맛에 인박혔나봐. 그래서 내 다리에 그렇게 털이 많은거구…” 하면서 깔깔거린다.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던 형편이었다는 거 알면서…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잖니?”
“알지… 근데 저 할머니 이거 다 팔 때까지 집에 못 들어가시잖아. 우린 지금 집에 가는데…그리고 오늘 못 팔면 내일은 내놓지도 못해. 그냥 비싼 커피 한잔 마신 셈 치면 치면 되지 뭐.”
생각 없이 돈 쓴다고 말하려던 생각을 얼른 감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빈 바구니를 챙기던 할머니가 굽은 등을 치시며 어둠이 내려오는 하늘을 올려 보신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할머니는 조금 전 보다 밝은 모습이다.
딸의 얼굴도 활짝 핀 복사꽃이다.
“이렇게 이쁠 때 시집가야 하는데 공부한다고 늙게 생겼으니 가엾어서 어쩌니?”
“이제 썩은 복숭아씨가 싹을 틔워서 이만큼 컸는데 뭔 섭한 말씀을? 꽃이 시든다고 서러워 마셈~ 열매는 그 꽃이 떨어져야 맺는다는 거 엄마도 잘 암시롱~”
딸은 코 맹맹이 소리를 내며 또 깔깔댄다. 나도 그 웃음소리를 흉내 내며 더 크게 웃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금힐금 바라본다. 검정 비닐봉투 안의 복숭아도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어 감사하다며 달콤한 냄새로 다가온다.
아무래도 오늘밤은 그냥 못 넘길 것 같다.
28년 전 이렇게 어둑어둑할 때쯤 봉투 속에서 행복을 전해주던 그 단내가 지금과 흡사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