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 간결한 보고서 쓰기 바람
"보고서를 다이어트하라"
낭비 없애 업무 효율 강화
앞으로는 두 장 이상의 보고서는 받지 않겠다.” 2월 7일 오전 서울 테헤란로에 위치한 포스코 영상회의실. 1월의 경영 성과를 보고받는 ‘2월 운영회의’를 주재하던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뜬금없이 보고서 이야기를 꺼냈다. 이 회장은 6시그마 전문가로 2주간 포스코에 머물렀던 미국 SSMI사의 퐁부 사장을 언급하며 그가 남겼다는 말을 이렇게 전했다.
“글로벌 기업에서도 보고서의 40%는 읽히지 않고 사장된다고 한다. 글로벌 기업이 이 정도라면 우리 보고서는 (정도가) 좀 더해 50%는 읽히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두 장을 초과하는 보고서는 받지 않을 것이며 두 장을 초과하는 보고서는 두 장으로 줄여 다시 작성하라. 올해 우리 회사의 보고서가 (현재의) 절반쯤으로 줄었으면 좋겠다.”
“두 장 보고서만 받겠다”
이 회장이 발언한 직후 포스코에는 ‘두 장 보고서’ 쓰기 바람이 일고 있다. ‘지시’가 아닌 ‘권고’지만 최고경영자의 권고이다 보니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귀찮아졌다”는 푸념을 하는 임원이나 중간 관리자가 생겨나고, 일부는 글씨 크기를 작게 하는 ‘편법’까지 쓰고 있다. 보통 5~6장에 들어가던 내용을 두 장에 요약하기 위한 노력이다.
이에 대해 조청명 혁신기획실장은 “최고경영자나 조직의 리더는 시간이 없고 바쁜 사람인데 이들에게 원활한 의사결정을 하게 하려면 간단한 보고서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조직의 역량이 높아지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 사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통찰력,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분간하는 능력이 있어야 간결한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 실장은 “벌써 보고서 양이 상당히 줄었다”며 “임원회의도 압축 보고서로 하면서 업무가 밀도 있게 진행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대기업을 중심으로 임직원들에게 간략하면서도 효과적인 보고서 작성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보고서 작성이 업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는데도 전문교육을 받지 않고 어깨 너머로 배우거나 상사의 지적을 통해 배우던 것을 체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의 바람은 안면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알음알음 거래하거나 술 접대 같은 영업 형태가 줄어들고 특정 사업을 제안하는 영업 방식이 늘어나면서 생겨나고 있다.
특히 최근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내에서도 길게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없어지고 인트라넷이나 e-메일을 통한 보고 등 업무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달라지면서 이 같은 수요가 더 커지고 있다.
‘보고서 다이어트’ 바람은 포스코만이 아니다. 삼성SDS 멀티캠퍼스는 3월부터 사내용으로 ‘한 장짜리 보고서 만들기’ 등을 개설해 호응을 받고 있다. 이 과정을 기획한 최은영 선임 컨설턴트는 “실습이 절반을 차지하는데 필수로 돌려야 한다는 의견이 많을 정도로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논리적인 스토리가 있는 보고서 작성’을 강의하는 이 회사 박우성 책임 컨설턴트는 “상대방을 설득해야 하는 일이 갈수록 많아지는 상황에서 보고서는 상대방에게 이쪽 주장을 어필하는 가장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며 “의외로 자기 주장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실수를 많이 한다”고 지적했다.
사실 간결한 보고서 쓰기에서 삼성은 가장 앞선 주자로 꼽힌다. 삼성은 1993년 신경영선언 때부터 간결한 보고서 쓰기를 시작해 ‘1매 베스트(Best)’라는 단어가 일상용어가 됐을 정도다.
LG그룹도 올해 신입사원 교육을 이론 중심에서 실무에 강한 인재 양성으로 전면적으로 바꾸면서 보고서 쓰기 교육을 강화했다. 당장 현업에 투입해도 무리가 없는 ‘준비된 사원’으로 만들겠다는 의도에서다.
신입사원 교육을 담당하는 김범수 LG인화원 과장은 “신입사원들이 의외로 짧고 간결하면서 명확하게 자신의 논리를 전달하는 능력이 약하다”면서 “컨설팅 회사인 매킨지 방식을 벤치마킹했다”고 말했다. 매킨지의 경우 신입 컨설턴트들에게 1년 정도를 투자할 정도로 보고서 작성을 중시하고 있다. 매킨지 보고서의 핵심은 ‘단순할수록 이해하기 쉽다’는 것이다.
국내 대기업에 기획서 및 보고서 작성법을 전문적으로 강의하고 있는 이용갑 자기계발연구소장은 “지난해에 비해 강의 요청이 40% 정도 늘었다”며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문자로 표현하는 능력이 중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은 물론이고 연구소나 한국은행·금융결제원 같은 곳에서도 강의 요청이 온다”고 최근의 상황을 설명했다.
‘키스’(KISS)는 보고서의 기본
그렇다면 효과적인 보고서는 어떻게 작성해야 할까? 조청명 포스코 혁신기획실장은 “NC3가 기본”이라고 말했다. NC3란 ‘Needs(왜 보고를 하는가-필요성), CTS(Critical to Satisfaction·보고받는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을 만큼 중요한가-목적성), CTQ(Critical to Quality·내용이 정확하고 보고 목표가 분명한가-목표성), CTX(Critical to Xs·핵심적인 내용인 X인자가 들어 있는가-중점 사항)’ 등의 머리글자다. 조 실장은 “여기에 실행 방안이 더해지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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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제법 된 삼성의 보고서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첫 장에서 승부를 보라는 것이다. 보고받고 싶게끔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제목을 잘 뽑아야 한다.
둘째, ‘신경영’ 같은 핵심 용어를 잘 사용해야 한다는 것으로 상사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80%, 상사가 처음 들어본 내용을 20% 비율로 섞는 게 좋다고 한다.
셋째, 오·탈자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성과 신뢰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넷째, 한 장에 하나의 주제를 담아야 한다.
다섯째, 옷을 잡 입혀 보고 싶게끔 한다는 것이다. 박우성 삼성SDS 책임 컨설턴트는 “특히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LG는 기본적으로 결론-이유-경과의 순으로 작성하되 미사여구나 추상적인 표현을 지양하고, 가능한 한 도표나 그래프를 사용하며, 사실과 의견·생각 또는 정보를 확실하게 구분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용갑 소장은 ‘현·문·종·세’의 원칙을 내세운다. 현상을 파악하고, 문제를 정의하고, 종류별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예산과 스케줄을 반영한 세부 실행안을 작성하라는 것이다. 이 소장은 “여기에 예상되는 문제점과 해결책을 반드시 준비하고 증거 자료를 첨부하라”며 “특히 상사의 마지막 질문을 예상하라”고 조언했다.
물론 이런 보고서의 기본은 매킨지에서도 강조하듯 간결성과 명확성, 그리고 짜임새다. 역시 기업체 강의를 하는 아이엔터의 김석정 팀장은 이를 KISS로 요약한다. KISS는 ‘Keep it Simple & Short(간단하고 짧게)’의 의미다.
이런 현상에 대해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파트너는 “그동안 회의 방식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췄던 기업들이 회의의 기본인 문서로 옮아가는 것 같다”며 “보고서가 간결하지 않고 불분명하면 설명을 다시 들어야 하는 등 낭비 요소가 많아 조직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간결한 글쓰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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