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혀야 산다.
출25:22, 27:1-8
2년 전 가을이었습니다. 사무실에서 나눔지 원고 작업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와~ 새다. 새가 들어왔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현관문을 열어 놓고 지냈는데 어느 날씨 좋은 가을날에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예배당으로 날아 들어왔습니다. 다시 나가야 하는데 어디로 나가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구석구석으로 날아다니며 유리에 머리를 부딪치기도 했습니다. 저러다 골병들겠다는 생각을 하며 현관문과 쪽문을 열어놓고 날아가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대도 그 새는 모서리 쪽으로만 날아가서 부딪치곤 했습니다. 사로잡아서라도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해 주려고 수고를 했습니다. 녀석은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잡아서 밖으로 내 보내려 했는데 녀석은 잡히지 않고 계속 날아다니며 부딪치기만 했습니다. 녀석을 사로잡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냥 뒀습니다. 혼자 밖으로 날아가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다음 날 새벽기도를 하고 있는데 피아노 근처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습니다. 쥐가 들어와서 무엇을 갉아 먹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가까이 가니 다급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쥐를 잡으려고 놓아두었던 쥐 끈끈이에 걸려서 날개털이 모두 빠져 있었습니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날개를 퍼덕이며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끈끈이에 걸려서 파닥거리다 보니 날개가 붙었고 놀란 녀석은 더 몸부림을 쳤겠지요. 그 결과는 털이 뽑힌 채 파닥거리며 불안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제 손길을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따뜻한 도움의 손길인 제 손길을 뿌리치고 날개를 더 힘차게 퍼덕거리며 날아오르려고 애를 썼습니다. 제 손에 놓인 그 녀석은 결국 그렇게 털이 뽑힌 채 화단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빠르게 걸어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았는데 살았는지 들짐승에게 잡혀 먹이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일을 통해서 아주 확실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새는 제 손에 잡히면 살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그 녀석은 제 손에 잡히면 죽는다고 생각했다는 것이지요. 이 모습은 우리들의 모습과도 참 흡사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어떻게든 우리를 하나님의 장중에, 거하게 하려고 하시는데 우리는 그 손에 붙들리면 죽을 것 같아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고 살지는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그 손에 붙들리면 그의 인생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바로 능력이고,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바로 믿음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움의 근원이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 어떠한 능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산교회 성도 여러분!
잡혀야 삽니다. 누구에게 잡혀야 삽니까? 나의 피난처시오 구원의 뿔이시며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께 잡혀야만 확실하게 삽니다. 우리 하나님께 확실하게 잡히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잡히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를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를 받아 주옵소서. 라고 나의 연약함과 내가 죄인임을 인정해야만 하나님께 잡힐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보면 성막에 대하여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막은 우리 예수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예수를 믿어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성막에 들어가려면 죄가 있어야 들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막에 들어가 내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 그 죗값에 맞는 제물을 가지고 들어갑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죄를 지으면 누군가가 죽어야만 했습니다. 내가 죄를 짓고 내가 살기위해서 누군가 죽어야 했습니다. 내가 죽어야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내 대신 짐승을 받으셨습니다. 하루에 수많은 사람들이 짐승을 끌고 성막으로 들어왔습니다. 죄인의 몸이 되어 들어온 것입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내가 살기위해 들어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백성들을 위하여 큰 결심을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백성들의 죗값을 단번에 해결해 주시기로 작정을 하셨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희생하기로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나의 죗값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누구 때문에요? 네~ 나 때문에….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나의 죄 때문에 돌아가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할렐루야!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40일 동안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하시다가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을 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시며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그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나의 구주로 영접만 한다면 나는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을 받은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잡혀 사는 복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성막에서 번제단은 죄를 태우는 곳입니다. 죗값을 치르는 곳입니다. 번제단 앞에는 다섯 가지 보조 장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잡혀 사는 성도들은 다섯 가지 보조 장비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재 담는 통입니다
죗값을 치르기 위하여 제물로 가져온 짐승에게 죄인이 안수를 합니다. ‘안수’는 ‘전가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런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죽어야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 제 대신 이 짐승이 죽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이 짐승을 받아 주옵소서. 저의 죗값을 받아 주옵소서.”라고 기도한 후, 짐승은 번제로 하나님께 드려집니다. 하루 종일 불을 때면 재가 내려옵니다. 그 재를 재 담는 통에 담습니다. 그때 부삽으로 떠서 재 담는 통에 담고 뚜껑을 덮고 가지고 나가서 성막밖에 진을 치고 있는, 그 진 밖에다 버립니다. 재 담는 통은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둘째, 나를 가리킵니다. 교회는 공동 목욕탕과도 같은 곳입니다. 더러운 사람도 모입니다. 깨끗한 사람도 모입니다. 이런 곳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더러운 찌꺼기가 있습니다. 문제투성입니다.
안양교도소 사역을 매월 한번씩 15년째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사람은 고스톱을 잘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고스톱이 무엇입니까? GO 가다. STOP 서다. 사람은 가고서는 것을 잘해야 합니다. 가야할 때 서버리고, 서야 할 때 가버리면 언제나 문제가 생깁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푸른 죄수복을 입고 있는 것도 고스톱을 잘 못해서 생긴 결과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라고 메시지를 던집니다.
사랑하는 성산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잡혀 사는 사람은 고스톱을 잘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잡혀 사는 성도는 재 담는 통 같은 사람입니다. 더러운 것은 자기도 모르게, 담아다 자기도 모르게 살짝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버리는 재 담는 통 같은 성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사로 잡혀서 재 담는 통과 같은 성산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 부삽입니다.
부삽이 무엇입니까?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해 먹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때 재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도구가 필요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삽입니다. 교회에서 부삽과 같은 사람은 교회의 더러운 찌꺼기를 담습니다. 어디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우리 교회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은 없는가? 항상 교회 일에 관심을 갖습니다. 하나님께 사로잡혀 사는 성도는 항상 물음표와 느낌표를 공존하며 살아갑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수시로 물음표를 던지고 그 답을 찾습니다. 아하~! 그렇구나! 이러한 것에 신경을 쓰지 못했더니 이런 문제가 생겼구나! 담임 목사님께 보고 드리고 함께 상의를 해야겠구나! 이렇게 하면서 교회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입니다. 부삽은 더러운 찌꺼기를 담아 통에 담는 도구입니다. 하나님께 사로잡혀 사는 성도는 부삽과 같은 사람입니다. 교회에는 부삽과 같은 성도가 꼭 필요합니다. 성산교회에 꼭 필요한 부삽과 같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고기 갈고리입니다.
고기 갈고리는 두 가지로 썼습니다. 하나는 고기를 걸어 놓는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푸줏간에 소나 돼지가 들어오는 날에 가보면 커다란 고기를 걸어 놓고 칼로 뼈와 지방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것처럼 고기를 걸어 놓는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중요한 또 하나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고기를 태울 때 고기가 튀지 못하도록, 고기와 고기 사이를 얽어 매준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가지고 죽어서 번제단에서 태워지는 짐승이 있습니다. 고기가 태워질 때 타던 고기가 튀기도 합니다. 번제단에서 태워진 고기가 튀지 못하도록 서로 얽어 매줍니다. 고기 갈고리는 그런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신앙의 위기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들의 용어로 시험 들었다고 합니다. 시험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무슨 생각이 듭니까? 네 그렇습니다. 초신자들이 시험에 들면 교회를 안가겠다고 합니다. 조금 신앙생활을 한 사람은 교회를 옮기려고 합니다.
언젠가 정승훈 목사님께서 쓰셨던 칼럼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목사 가슴은 새가슴’주일에 빈자리가 눈에 들어오는데, 항상 그 자리를 지키셨던 분이 보이지 않습니다. 성도 한 사람이라도 출석하지 않으면, 혹시 내가 설교를 잘 못해서 안 나오셨는가? 내가 무엇을 잘 못해서 그런가? 섭섭한 것이 있었는가? 가슴이 오그라드는 것 같다. 그러면서 목사 가슴은 새가슴이다. 라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랑하는 성산교회 성도 여러분!
교회에도 교인들이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할 때 붙잡아 주는 고기 갈고리 같은 성도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다독거려 주고 사랑으로 이야기해 주고 심방을 가는 고기 갈고리 같은 성도가 많을수록 좋은 교회가 됩니다. 여러분 한분 한 분이 고리갈고리 같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사로잡히면 저절로 고기갈고리 같은 성도가 됩니다. 하나님께 사로잡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 대야가 있습니다.
대야는 두 가지 용도로 썼습니다. 하나는 물 나르는 그릇이요. 또 하나는 피를 담는 그릇입니다. 너무나 바쁩니다. 대야는 전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에도 부지런해야 하지만 가정에서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직장에서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교회 일을 열심히 하기 위해 가정이나 직장 생활에서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마땅히 부모를 섬겨야 하는데 ‘고르반’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는 핑계를 대면 안 됩니다. 교회 일을 핑계로 가정에 소홀하면 가정에서 전도가 어렵습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성실하게 수행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부지런해야 합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는데, 천하보다 귀한 그 영혼을 전도하기 위해서는 대야 같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의 총을 부지런히 쏘아야 합니다. 나눔의 총을 부지런히 쏘아야 합니다. 섬김의 총을 부지런히 쏘십시오. 사탄이 주는 미움, 시기, 질투, 원망, 절망의 총이 아니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총을 날마다 따발총으로 쏘며 살아가는 성산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사로잡히면 그렇게 됩니다.
5. 불 옮기는 그릇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사로 잡혀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여러분 스스로가 불 옮기는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는 은혜 받은 사람 그 주위에서부터 은혜를 받습니다. 기도의 불, 전도의 불, 불 옮기는 그릇이 되십시오. 불 담는 그릇이 되십시오. 그리하여 성산교회가 이 지역사회의 영적인 지주가 되어서 이끌어 가도록 하시고, 선교사명도 잘 감당하셔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복된 교회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