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산사람이면 요산 선생님을 모르는 분이 없을 것이다.
올해도 요산문학제(9회)가 열리고 있는데(28일까지)
행사중 문학기행및 묘소참배, 생가방문행사가 첫날(22일)있었다.
나는 7회때(94년도)한번 참여했으나. 올해도 참여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나지않았다.
7회때 담은사진을 잘 보관하지 못해 사진도 담을 겸 내 혼자 나섰다
요산문학 기행안내도를 만들어 본다.
1.출발
2.생가방문 (남산동 금샘로, 오로라주유소 아래)
94년도 복원,그 옆은 신축중인 문학관 다음달 개관
범어사 절 아래 동네라 사하촌(3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당선작(28세)발표
절은 범어사자체가 모델이 된것이 아님
이글을 쓸 당시 요산은 남해에서 보통학교교사로 재직.
남해의 용문사,희방사 찾을 기회가 있었을 것임
일제치하의 불교에 비판적시각--
이 작품을 발표하고 나서 테러를 당함--상금을 치료비로
3.범어사 문학비(순환도로 상마마을입구 부근)
순환도로옆,무심한 자동차만이----
[어딜 가도 산이 있고 들이 있고 그리고 인간이 살았다.
인간이 사는 곳에는 으레 나뭇가리가 있고 그 곁에는
코흘리개들이 놀곤 하였다.
조국이란 것이 점점 가슴에 느껴졌다.] 인간단지(70년,월간중앙)에 나온 내용
4,사밧재(노포동 검문소애서 좌회전하여 양산 동면 사송가는길, 도로확장중)
계명봉,장군봉을 끼고 굽이굽이 넘어가는고개길, 공사중
사밧재는 양산 다방리에서 끝남.
좌회전--호포,가산,금산(요산의 외가 곳)
여기에서 물금까지 펼쳐진 들--"메깃들" (양산신도시,부산대대학병원 예정지)
[사밧재(71년,현대문학)]배경지
공사중이라 엣 정취는 사라지고 대형공사 차량땜에 사진담기도 힘들었다.
5,묘소참배(신불산 천주교 공원묘지)
96년도 협심증과 폐기종으로 별세 88세
참배하지 못함을 용서하시며,고이 잠드소서-
6,花濟마을 ( 양산천건너 좌회전, 지방도1022로 원동쪽으로, 원동면 화제리)
요산문학의 걸작 수라도(69년,월간문학8호)의 무대 화제마을
낙동강을끼고 구불구불 고갯길 넘어면 화제벌이 나온다
경부선철도가 강과 나란히--앞에 보이는 산은 토곡산. 산아래 마을이 있다.
화제초교. 학생수73명( 전교6학급,유치원생6명포함) 운동장에 계시는 여선생님을 만나 뵙다.
이 분(연구부장)은 매우 친절하시며 (교대20년후배,초면) 요산선생님에 대해 잘 알고 계셨다.
화제리는12개 자연부락으로 구성. 이 곳이 요산의 처가 곳
수라도의 가야부인은 요산의 처조모를 모델
운동장앞의 五峰山(533m) 가야부인의 시어른인 오봉선생의 호는 오봉산에서
고구마캐기 체험학습후--- 손에 고구마가-------------------음식점상호가 화제리
7. 뒷기미나루 (삼랑진읍에서 김해생림가는 철교 들어서기 전 '상부마을" 쪽으로 "나룻터횟집")
시간관계상 이 곳은 가지 못했다. 94년도에는 기행를 을숙도에서 이곳 뒷기미나루까지
배를 타고(2시간) 답사하였다, 당시사진을 담았으나 파일 관리불실로---
지난 6/22일 지나 가다가 철교에서 줌으로 촬영, 크레인은 신항만연결 철교 가설중
뒷기미나루(69년, 창작과 비평15호) "꼭 한번 읽어 보시라' 주인공들의 비극은 오늘날 에도---
8 .임경대 (오던 길을 되돌아 오는 길, 화제리에서 양산물금쪽으로)
바로 앞의 낙동강물길을 잘 조망할 수 있는 곳 (최 치원선생이 둘런 곳)
요산선생은 낙동강의 파숫꾼(78년,한길사)이자, 낙동강변과 함께 살아온 시대의 파숫꾼이다.
임경대에서 본 화제벌쪽의 낙동강. 임경대아래는 경부철도
수라도의 가야부인이 김해에서 시집올때 물금에서 이 아래 좁은 길로 가마타고 왔다고--
9.메깃들 (양산신도시, 부산대대학병원자리)
예전에 메기가 거품을 내뿜어도 물이 담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지대가 낮아 홍수가 잦았다. 32년도 양산농민 봉기사건 일어난 진원지-- 요산 피검됨
산서동 뒷이야기 (71년도, 창조 창간호)배경. 호포에서-- 양산 전철역사가 신축중
10. 시간나면 돌아 볼 곳
A. 어린이 대공원 성지곡수원지 요산 문학비 (수원지땜 쳐다 보면서, 오른쪽위 야생화밭에)
사람답게 살아가라!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불의와 타협한다든가 굴복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사람이 갈 길이 아니다. 산거족(71년,월간중앙1월 )나오는 구절
B. 낙동강하구, 을숙도
낙동강의 파숫꾼(78년,산문집) 모래톱이야기(66년,문학6호)의 배경지
註 위 사진은 지난 5/15일 촬영한 것 인데 오른쪽 중간 갈대밭 끝의 나무막대는
[을숙도 개발이전, 도심의 분뇨를 수거하여 (당시는 재래식화장실) 배로써
을숙도에 일단 저장하여 바다에 투기함 ] 소위 을숙도 똥다리교각잔해인데유일하게 남은 것 임.
세월이 지나면 이 마저 없어질 것--- 이래 되면, 이 사진은 매우 귀한사진(?)
모래톱이야기는 요산이 해방후 40세에 5년제 부산중학교(지금의 부산고)교사로 재직중
제자중 한명이 이 이야기에 나오는 건우의 모델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우가 사는 곳은 섬의 모양새가 길쭉한 주머니 같다해서 붙여진 조마이섬이다.
"이 고장 사람들이 젖줄 같이 믿어 오는 낙동강 물이 맨들어 준 우리 조마이섬"
은 당연히 을숙도(乙淑島)이다.
초량에서 버스를 타고 하단나루까지 가는 것, 그러나 지금 그 나루는 흔적조차 없다.
옛동산유지 아래쪽, 대단지 아파트인 가락타운 강가 어느 지점 정도에 서너 채의
가게와 술집들이 있었고 그게 나루터였을 것이다. 60년대 나룻배타고
을숙도 똥다리 건너며 지금 동아대 승학캠버스앞 에덴공원에 놀았는 기억도 난다.
후기
이상으로 문학현장안내도(?) 형식으로 압축한다고 했는데-- 미흡하다.
그러나 기획하고 Post 에 올리는데 시간께나 들었다.
비록 부족하지만 , 나의 성의가 담겼다고 자부한다--
한 분이라도 끝까지 읽어주시고 편달해 주시면 고맙겠다..
시간나면 일제때 7년간 교사로 재직한 남해에 가서 요산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예정
25일 저녁 한새
첫댓글 요산에 대하여 깊이 있게 이해하는 분, 애정을 가진 분이 아니면 제작할 수 없는 귀중한 자료 - 잘 보았어요. 7년간 교사로 재직한 학교는 남해 고현면 갈곶이 란 곳에 있는 갈화 초등학교, 고현 초등의 조그만 분교였는데 요산이 가서 학교를 키워 갈화 보통학교로 승격되는 기초를 닦았는데 막상 학교장은 일인 교장이 발령받아 오는 이야기지요. 낙일홍 - 요산의 초기의 대표작. 갈곶이는 우리 동기 차무언 친구의 고향 마을이죠.
南溪 선생, 고맙소. 좀 늦게 집에 와서 지금 열어보니--- 역시 고향소식은 그 고향人이---정말 고맙소, 요산선생이 33년도(26세)-40년(33세)까지 남해에 교직생활하셨다고 알고 있는데, 그리고 남해는 요산문학의 출발지로 알고있는데, "갈화교"도 알려주시니!!!!---73년도 발표작인 <회나뭇골 사람들>읽어보셨는지? 남해의지역성을 잘 드러낸작품인데--- 그 회나무가 읍 사거리 부근 농협인근에 있다던데--- 꼭 한번 보고싶습니다. 거듭 고맙습니다--
요즘 바쁜일이 좀 있어 이제사 이 좋은 자료를 읽었습니다. 생존해 계실때 이야긴데 부산사람이 김정한 선생을 모르면 간첩이다.그래서 못 알아보는 어떤 사람을 간첩으로 신고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저도 매우 존경하는 분인데 한새님이 이렇게 자세히 알려 주시니 그성의를 봐서라도 자세히 또박또박 읽었습니다. 틈나는데로 다시 보고 소개하신 책(뒷기미나루등)은 꼭 읽어 보겠습니다.똥다리교각잔해는 어릴때의 추억이 되살아 나는 듯 합니다.귀한 자료 올리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赤松 선생,댓글 늦어 죄송---- 그 쪽(낙동강하구쪽)비탈에 사신 적이 있나요? 하단 사하 괴정등등-- 우리의 젖줄"낙동강" 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樂山의 숨결이 더욱 느껴져요 오!!! 낙동강--- 겨레의 낙동강--우리의 낙동강-- 감사_()_
약 50년전, 그 당시 요산선생님의 댁도 대신동이었고 저의집도 대신동이었어요. 저의 외가가 재도(삼강초부근)에 있어 충무동-하단-을숙도(초갓집이 몇채 있엇음)-명지 코스로 버스와 배를 타고 외가에 자주 다녔기때문에 어릴때의 낭만적인 모습(일몰때의 모습은 세계 제 일)은 아직까지 찡~하게 남아 있지요. 산삼회 11월 을숙도 탐사에 동참하셔서 낙동강과 새 이야기 많이 해 주세요.
그렇습니까? 70년대 요산의 강의를 한 번 들은 적이 있는데,당시 선생님은 "자기는 옛날 감옥살이 한 곳에 지금 산다고"하셨는데 아마도 동신초교(?)부근 대신동 삼익아파트엔가 사시는데 그 곳은 본래 형무소 자리였던것 같습니다.(기억 더듬어 생각해보니) 적송님께서는 누구보다도 하구의 옛 모습을 아련히 잘 간직한 것같습니다,외가가 짐작컨데, 서낙동강과 평강천사이의< 제도>인 것같구요,명지에서는 좀 떨어진 곳 같습니다.지금은 강서구 강동동이지요 삼광초교가 초기에는 <가락초교 제도분교장>으로 출발 한 것같습니다.저가 관심을 가지는것은 낙동강 삼각주,하구지형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며 -->
---->실제 계속 답사중이오니 적송님의 이런 사연도 저에게는 좋은자료가 됩니다 , 고맙습니다. 즐겁게보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