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납치문제 국제대회… "12개국서 520여명 끌려가"
"내가 죽거든 내 시신이나 화장한 재를 저주받은 북한 땅에 묻거나 뿌리지 말고, 바다에 뿌려줘요. 바닷물에 실려서라도 내 고향 루마니아, 사랑하는 가족 곁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1978년 10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됐다가 1997년 사망한 루마니아 여성 도이나 붐베아(납치 당시 28세)씨는 북한에 살면서 절친했던 찰스 젠킨스씨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젠킨스씨는 주한 미군으로 근무하던 1965년 월북했다가 납북 일본인 부인인 소가 히토미씨 뒤를 이어 2004년 일본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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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1일 오후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북한에 의한 납치문제 해결 국제 연합대회’에 참석한 루마니아의 가브리엘 붐베아(오른쪽)씨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서울 중구 코리아나호텔과 프레스센터 등에서 열리는 '북한에 의한 납치문제 해결 국제연합대회'에 참가한 도이나 붐베아씨의 막냇동생 가브리엘 붐베아(43)씨는 "임진각에서는 북한이 보인다는데 하루빨리 북한에 살고 있는 조카들을 보고 싶다"고 했다.
도이나 붐베아씨는 루마니아에서 미술을 전공하다 1970년 이탈리아인과 결혼해 로마로 갔다. 가브리엘 붐베아씨는 "누나와 1주일에 두 번 이상 통화했는데 1978년 10월쯤 '일본에 화랑을 열어 작품을 전시할 기회를 얻었다'고 한 전화가 마지막이었다"며 "젠킨스씨로부터 누나가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됐다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도이나 붐베아씨는 월북한 미군 조 드레스녹과 결혼해 두 아들을 낳았다. 가브리엘 붐베아씨의 노트북 컴퓨터엔 누나의 둘째 아들 가브리엘 드레스녹의 사진이 저장돼 있다. 그는 "조카의 눈·코·입 등이 내 아들과 매우 닮았다"며 "누나가 가족을 그리며 둘째 아들에게 내 이름을 지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혼이라도 바닷물에 실려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붐베아씨의 유언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가브리엘 붐베아씨는 "젠킨스씨가 누나의 골분(骨粉)을 보관하다가 여행 허가를 받으면 바다에 뿌려주려고 했지만 북한 당국에 발각돼 골분마저 뺏겼다"고 말했다.
'납치피해자를 구하는 모임'의 니시오카 쓰토무 일본 도쿄기독교대학 교수는 "젠킨스씨는 평양에서 다른 3명의 월북 미군과 이웃해 살았는데, 그들의 부인은 모두 해외에서 납치된 일본·루마니아·태국·레바논 여성들이었다"며 "북한의 외국인 납치는 1976년 본격화돼 지금까지 한국·일본·프랑스·이탈리아·네덜란드·중국·태국 등 12개국에서 520여명이 납북됐다"고 말했다.
1978년 5월 마카오에서 납북된 태국인 아노차 판조이(납북 당시 24세)씨의 조카 반종 판조이씨는 "한국전 참전용사인 할아버지는 '죽기 전에 한 번만이라도 딸을 보고 싶다'고 그리워했지만 젠킨스씨가 고모의 생존 소식을 전하기 3개월 전에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가 주관하고, 통일부와 주한일본대사관, 조선일보사가 후원하는 이번 행사엔 한국·일본·루마니아·태국 납치 피해자 가족 150여명과 한·일 양국 시민단체 회원 등 200여명이 참가해 북한에 의한 납치문제 해결방안을 모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