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세루 하지마라..”
군복무를 마치고 대구 곽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경북 문경시 조 외과의원의 부인이 찾아와서
“ 조 원장님이 간질환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진료하기가
부담스러우니 문경으로 와서 같이 진료하여 달라” 고
간곡히 부탁을 한다.
나도 이제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원과정이 끝났으니
어머니와 어린 동생 셋이 기다리는 시골집으로 가야만 했다.
시골집에서는 동생이 삼성전자 대리점을 경영하면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탄광촌의 광부들에게
텔레비전,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판매하고 나면
수금이 제대로 되지 않고
떠돌이 광부들은 할부로 구입한
가전제품을 가지고 몰래 이사를 가버려
동생은 본사에 진 빚이 엄청났다.
매일 빚 독촉을 받고 수금은 되지 않고
결국 파산하고 구속, 수감될 지경이었다.
나는 조 원장님에게 간청을 하였다.
“ 봉급은 정하지 말고, 제가 열심히 일 하면서
수입이 많이 오르면 선배님께서 가늠하여 주십시오.
주시는 데로 받겠습니다.“
선배님도 나의 가정형편을 이해하시고
그리하자고 하셨다.
선배님은 진료실에 앉아계시거나
주택에서 쉬시도록 하고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진료를 하였다.
문경시는 의료취약지역이고
광산지대라서 환자가 엄청 많았다.
낮에는 외래를 보고
저녁과 밤에는 산모를 돌보고 개복수술을 하였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삼성전자 본사에
빚을 갚고 난 후,
나는 이 대출금을 매월 갚아 나가야했다.
어느 날 저녁 예천 공군부대에서 근무하는 군의관
( 서울 성모병원에서 산부인과 전공의 과정을 마친 분) 이
야간 당직을 하겠다고 찾아왔다.
그 날 저녁 같이 근무하면서 실제 상황을 관찰하도록 하였다.
저녁시간에 충수절제술을 하고 난 후
산모의 출산을 돌보고,
D/C를 다섯 건을 하고 나니 밤 12시,
이 군의관님.. “이러다가 의료사고 나는 것 아닙니까?
나는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하고 가버린다.
그 날 나는 낮 시간에 외래환자 약 200여명을 진료하였고,
위 천공의 복막염환자를 개복수술 하고 난 뒤였다.
빚은 갚아야하고....
먹고는 살아야하고...
나에게는 참으로 절박(切迫)한 세월이었다.
이렇게 2년이 지나고 나니
조 원장님의 간질환이 악화되면서 복수가 차고
몸은 야위어 갔다.
그리하여 서울대병원에 입원하기로 하고
앰블런스에 조 원장님 내외분과 내가 같이 동승을 하고
서울로 향하였다.
고불고불 비포장도로의 문경새재를 넘고
충주에 도착하니 조 원장님이
“ 자네는 내리게.. 환자가 많이 기다리고 있을테니..
그리고 제발 아세루 하지 말게..“
기다리고 있을 환자들을 생각하니
더 모시고 갈 수도 없어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나는 앰블런스에서 내렸다.
“ 아세루 하지말라..”
무슨뜻인지 모르겠지만
짐작은 간다.
“서두르지 마라”
이런 뜻이 아닐까..하고 생각하였다.
나는 결과적으로 문경탄광촌의 광부들에게
수억원어치의
삼성전자의 가전제품을 사주었고,
이 돈을 갚기 위하여
“ 아세루 하였구나... ” 하는 생각이 들었다.
<1986년의 점촌 이외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