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어머님이 안 계신분만 읽어보세요!

[산사랑]

                       어 머 님  전 상 서

                                                                                     0  0  면 장           황  0  규 

 설이 다가옵니다. 이맘때면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놋그릇을 닦는 것과 엿을 고는(만드는)일이 어머니께서 맨 먼저 서두르시는 설 치레였습니다.

 밥그릇이며 찬그릇은 말할 것도 없고 대야며 촛대며 아버지 재떨이에 이르기까지 놋쇠로 만든 유기류란 유기류는 다 닦던 일과 엿을 고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지푸라기에 아궁이 재를 묻혀가며 그 많은 유기를 흡사 명경 알처럼 얼굴이 비치도록 닦으셨습니다.

 막 닦은 놋그릇에 담은 그날 저녁밥 그릇엔 파르스름한 구리성에가 끼던 게 생각납니다. 진종일 밖에서 썰매타기와 자치기, 연놀이 같은 것으로 해를 보내다가 밥 먹을 시각에야 집에 돌아온 저는 그 저녁밥이 그토록 맛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람 사는 인정은 그 때가 더 나았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시루떡을 해서 이집 저집에 조금씩이라도 나눠먹는 배달 심부름을 하는 건 제 몫이었습니다. 그 때마다 어머니 친구 분들이 들려주시는 칭찬이 듣기가 좋았지요. 그리고 그날 하루 저녁밥을 시루떡으로 때우면 얼마나 좋으련만 저는 꼭 빠쁜 시간에 저녁밥을 달라고 때를 썼지요.

그런데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 세상에는 놋그릇 닦는 주부는 아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놋그릇만도 아니지요. 명주옷을 빨래하고 손질하고 다리미질하는 일도, 이불 호청을 뜯어 빨아 풀 먹이고 다시 꿰매는 일도 없습니다. 어머니를 도와 다리미질감 잡던 일이 생각납니다.

 초저녁에 잠은 쏟아지는데 물기 먹인 다리미질감은 딱 들러붙어 포개진 채 왜 그리도 좀처럼 줄지 않던 지 참 고역이었지요. 제가 그만 깜박 졸아 팽팽히 맞잡아야할 다리미질감이 갑자기 느슨해져 다리미를 다시하곤 했지요. 때론 어머니가 졸아 제 손등을 다리미로 스쳐 데이면 황급히 간장을 발라 주며 안쓰러워하기도 하셨습니다.

 한번은 다리미질을 또 잡아야할 것 같아 집에 들어가지 않고 친구 집으로 뺑소니 쳤던 적이 있었지요. 이튿날 아침 조바심 내며 집에 들어간 저에게 미소만 지어보인 어머니께서 혼자 밤이 깊도록 다 다리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나무라기보다는 혼자 다리느라고 볼품없게 다려진 것을 걱정하셨지요. 아버지는 그때 이장 직을 맡고 계실 때라 사랑채에서 동네친구 분들과 밤새워 이야기 하셨지요.

 설도 이젠 예전 같지 않습니다. 동네 어른들을 다 찾아다니며 세배를 드리고 있습니다만 어머님같이 돌아가신 어른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제는 서로 찾곤 했던 그런 설이 아닙니다. 바쁘기 때문이라고들 말합니다.

 한 겨울에는 별로 할일이 없어 설이면 서로 찾아뵙는 게 인륜사의 대사였지요. 굴뚝공장이 많아지면서 사람 살기가 달라지더니 이젠 꿈도 못 꾸었던 컴퓨터 세상이 되면서 엄청나게 변했습니다. 참 이상하대요. 문명이 발달하여 살기가 편해지면 시간이 남아 돌 것 같은데 더 바쁘게 사는 것이 요즘 세상의 사람들입니다.

 제가 철부지였을 적의 일로 떠오른 어머니 생각은 아주 아득한 옛날이야기지만 저는 그런 어머니 모습을 그려보는 게 참 좋습니다. 그 무렵의 어머니들이 다 그랬었지요. 어머니 또한 한 집안의 며느리로 인종을 미덕으로 알고 무던히도 참으며 열심히 사셨습니다.

 제가 거들어드릴 수 있는 일이라곤 여름방학 때에는 보리타작 하는 일이고, 동네 어르신과  대성, 동방 저수지를 지나서 진다라니(덕천리) 고개 너머 20리 길을 걸어서 발안장에 가서 생활필수품을 사오던 일, 설날, 잔치집이 있을 땐 동네 형들과 떡메 치는 일이었지요. 힘에 부쳐 부대끼면서도 떡메를 칠 때는 그래도 신명났습니다. 이제는 시골에서도 떡메 치는 소릴 좀처럼 듣기가 어려운 세상입니다.

 그리고 설날이 다가오면 집집마다 며칠씩 밤을 새워가며 장작불과 왕겨를 태워서 엿 만드는 일이 하루 일과였으나 굴뚝과 가마솥도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어머니! 세상살이는 달라져도 자식에 대한 어버이 정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습니다. 지금의 어머니들도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을 똑같이 그렇게 키운 줄은 모르고, 제 자식들에게 자기만 그런 것처럼 온 정성을 다 하니까요. 저처럼 나이가 더 들면 나중엔 알겠지요....

 이러다 보니 올해 따라 이 세상에 안 계신 어머니가 더 생각납니다. 일흔 살 먹은 아들이 아흔이 넘은 어머니 앞에서 때때옷을 입고 재롱을 피웠다지요?

 저도 좀 어리광을 피우고 싶은 맘이 들어 어머니 생각을 해봤습니다. 매주 어머님 뵈러 산소에 갑니다만 지난주에는 감기가 너무 심해 못 갔습니다. 설날에는 뵙겠네요. 부디 편히 쉬십시오.  어머니!!!
       
             
                                              2005년 2월 3일
                                              불 효 자   올림

                     ( 2005년도 0 0 시 공무원 작품공모  최우수상 수상 작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