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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 한동안 떠돌던 망령같은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국민적 무기력함입니다. 웬지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국민들의 눈가에 희망이 사라져 버린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뭔가 목표가 사라진 사회속에 나타나는 현상같기도 했습니다. 한국민들의 성향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빨리 빨리로 대변되는 신속함과 역동적 성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도 어느 순간 슬며시 자취를 감추어버렸습니다.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정부내에서는 호들갑을 떨었지만 피부에 와 닿는다는 국민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8년전인 2016년 겨울만해도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로 서울 광화문과 전국의 광장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수많은 시민과 국민들로 가득 찼습니다. 혹독한 겨울 화장실시설도 부족하고 바닥도 얼음판이었지만 그곳에 그동안 억눌린 심정도 토로하고 한동안 생각하지 않고 살았던 국가란 무엇이고 국민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고민하고 의논하게 되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수십만명이 모였던 시위장소는 집회가 끝난 뒤 언제 그런 행사가 있었냐는 듯이 말끔히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시민들 스스로도 놀라고 외신들도 경의스러워 했습니다. 한국인들이 가진 저력이라는 평가가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 쏟아졌습니다. 특히 프랑스 언론들은 혁명이라고 하면 프랑스 제품인데 그것이 한국에 와서 완성을 이뤘다며 한국이 혁명의 선진국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모진 추위속에 대통령 국회탄핵소추안 가결로 2016년은 저물고 2017년 헌재의 결정의 시간을 남기고도 국민들의 격정속에서도 질서를 잊지않는 대규모 집회는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2017년 3월 10일 헌재는 대통령의 탄핵을 확정지었습니다. 그리고 대선을 통해 새로운 정권이 탄생했습니다. 촛불혁명이 만들어준 정권이었지만 시민들의 고통속에 만든 정권답지 않게 안일한 판단과 그들만의 리그 그리고 국민들의 생활과는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검찰개혁에 올인하고 부동산 개혁은 요상하게 투기꾼들을 자극해 본래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19는 국민들을 단절과 소통부재속으로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서울 광화문 등지의 시위문화가 코로나 사태로 완전 중단되자 소통을 빙자한 유튜브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극우 극좌들의 주장이 국민들을 파고 들고 서로 갈등하게 만드는 대단한 흉기로 작동합니다. 코로나 19로 위축될 때로 위축된 국민들은 매일 터지는 검찰과 정부의 대결을 피곤한 눈으로 봐야 했습니다. 누구를 위한 개혁인지는 모르지만 대통령과 민정수석실이 삼고초려해서 모셔온 모 검사가 이뤄줄 것으로 판단했던 검찰개혁은 한 발자욱도 전진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부에 칼을 향하는 형국을 만들었습니다. 검찰총장이 법무장관의 말에 항명하고 대놓고 분란을 일으켰지만 대통령은 무슨 연유인지 검찰총장을 두둔하고 법무장관을 경질합니다. 검찰개혁은 사실상 물 건너간 양상이지만 대통령은 무슨 생각인지 검찰의 총수의 언행을 방치합니다. 그런데 그 검찰총장은 그후 당시 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고 결국 한국의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부동산 개혁도 마찬가지입니다. 호기롭게 부동산 투기세력을 때려잡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당하고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습니다. 부동산 주무부처의 장은 임기응변식 땜질 정책을 수없이 내놓고 내성이 붙은 부동산시장은 걷잡을 수 없는 혼돈속에 빠집니다. 전세가격도 치솟아 졸지에 전세난민이 된 시민들은 서울에서 경기도로 경기도에서 타지역으로 밀려 내려가는 그야말로 전세피난행렬을 만들고 맙니다. 하지만 당시 주무 장관은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은 깨닳았습니다. 촛불혁명으로 대통령도 여대야소의 정국도 만들어주었지만 그 댓가는 바로 이것이구나 즉 국민들의 바람을 모아 그들이 편하게 정국을 운영하도록 만들어주었지만 결과는 무능한 정권이라는 타이틀뿐이구나 하는 것을 뼈아프게 느낀 것입니다. 상당수 국민들과 촛불집회에 참가했던 시민들마저도 결국 대통령을 검찰총장 출신 인사로 선택했고 이어 벌어진 지자체장에서도 보수진영의 인물들을 대거 뽑게 됩니다. 2017년 대선에서 그 꽃잔디 정치판을 만들어주었지만 그들만의 달콤한 축하의 희열속에 검찰개혁도 부동산개혁도 물거품이 되어버린 그 과정을 답답하고 가슴아프게 바라보아야만 했습니다. 최고 권력자와 그 주변인물들은 최악의 위기상황에도 어떻게 잘 되겠지 낭만적인 긍정속에 촛불시민들의 열망을 짓밟은 것입니다.
아마 그때부터 한국사회에 퍼진 이상한 분위기인 집단 무력증과 집단 피곤증이 팽배해진 것이 아닌가 판단됩니다. 거대한 용솟음같은 그 촛불혁명의 도도한 흐름도 무능한 정권과 그 조직을 이루는 인물들의 무비판적인 판단속에 아야 소리도 못하고 고스란히 정권을 헌납한 것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초저출산에도 무기력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으며 특히 젊은층은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는구나라는 패배의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른바 전통 민주정당에 대한 손절이 이뤄지고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그런 양상도 두드러집니다. 나라의 경제는 점차 곤두박칠치고 제 2의 국가부도사태가 우려되고 고물가에 내수부진까지 겹치면서 경제는 더욱 벼랑으로 몰리면서 과연 이런 상황이 선진국맞느냐는 회의감도 대단히 많이 일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정치는 국민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잘못이 있으면 법에 따라 수사를 하면되는데 현 정권의 검찰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야당인사를 다루는 검찰의 잣대와 대통령 주변인들을 다루는 검찰의 잣대가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새정권이 출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습니다. 대통령 주변인들의 잘못이 있으면 그 잘못에 대한 일반적 수사가 진행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잘못에 대한 벌을 받으면 됩니다. 물론 결코 쉽지는 않았겠지만 나라의 최고 책임자라면 그렇게 했어야 옳았습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는 허공을 향하고 야당은 특검이란 칼을 빼어듭니다. 특검이 없었던 정권이 없었으며 과거 김대중정권에서도 주변인들에 대한 특검은 가동되었습니다. 특검이 작동하지 않았던 정권이 없다시피 합니다. 하지만 현 정권은 거부권이라는 카드를 남발합니다. 채상병 특검도 거부권, 대통령 부인에 대한 특검도 거부권 그러니까 역대 대통령가운데 거부권행사를 가장 많이 한 대통령이라는 기록이 남았습니다. 게다가 선거와 관련돼 요상한 인물에게 휘둘리는 듯한 증거가 쏟아져 나오고 그런 증거중에 대통령 부인도 상당히 간여하고 여권 핵심인사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도 여야의 갈등과 마찰은 이어집니다. 역대 정권에서 편하게 예산안 통과가 이뤄진 해는 한번도 없었습니다.하지만 협치라는 단어 자체가 상실된 현 정권하에서 여야의 마찰은 극에 달하고 결국 야당단독으로 예산안을 통과합니다. 그리고 2024년 12월 3일 밤 10시반 비상계엄령이 발령됩니다.
45년만에 터져나온 계엄령은 이 나라에 대단히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무기력하다고 판단되었던 국민들이 깨어난 것입니다. 집단적으로 좀비같은 무기력함의 소유자인지 알았던 국민들이 몽롱한 상태에서 벗어납니다. 비상계엄령이 뭐지하면서 그냥 귀찮으니 정치인 너희들이 알아서 할 줄 알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8년전 촛불집회의 정신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죽어서 땅속 깊은 곳에 묻힌 것으로 알았던 시민정신이 되돌아 온 것입니다. 계엄령 발령과 동시에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가고 그동안 숨겨 놓았던 촛불을 다시 꺼집어 냅니다. 물론 이번에는 촛불이 아니라 시위봉이지만 말입니다. 도구도 업그레이드 됩니다.
한동안 이 나라 이 사회에서 외톨이 신세였던 MZ세대가 합류합니다. 어리게만 보고 무기력하게만 평가됐던 신세대가 드디어 시위현장에 몰려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시위 노래인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로 시위장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시위장의 단골인 40대 50대도 자신들의 자녀뻘들이 힘차게 부르는 노래에 따라 분위기를 맞춥니다. 세대갈등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요즘 젊은 것들은 싸가지가 없다는 꼰대소리는 사라지고 없습니다.대견하게 흐뭇하게 젊은 층들의 주장을 경청합니다.
이번 대통령의 비상계엄령은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고 상상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비상계엄령이 내려진지 벌써 보름이 되지만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정치 외교 경제 문화 등 피해를 주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역사가 1980년대로 되돌아 갔다는 자조섞인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외국의 시각은 일부 한국인들의 태도와 시위문화 등에 대해 감탄을 내놓지만 그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은 아직도 비상계엄령을 생각하는 그런 후진적 나라라고 평가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입니다. 지금 세계는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려 하지만 한국의 비상계엄령과 그 후속적인 정치권의 잡음 등으로 한국은 국제 외교에서 그야말로 외톨이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번 계엄령으로 한국은 예상치 못한 수확을 얻었습니다. 불행중 다행이라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무기력함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는 것입니다. 아주 옛날 일제 강점기이후 그리고 독립된 뒤에도 한국인들의 상당수가 패배의식에 젖어 있었습니다. 엽전이 별 수 있어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일본은 30년이상 앞서가는 나라라면서 포기상태에 놓인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강의 기적으로 그런 분위기에서 탈피했다면 이번에는 집단 무기력증에서 깨어나게 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비상계엄이라는 것입니다. 이대로 망가질 수만은 없다는 절박감이 온 국민에게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추운 겨울날 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서방 언론에서는 축제같은 시위라고 하지만 그곳에 담긴 의미는 아마 서방세계에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야말로 그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고 참을 수 없고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는 집단 저항정신이 다시 가동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바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젊은 지성들이 그들의 본연의 자세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대학가는 한때 시위의 본산이었습니다. 4.19혁명을 비롯해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1987년 6.10항쟁 등은 모두 대학가를 중심으로 시작되고 번져나갔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대학생들과 젊은 시민들이 합심해 이룬 대표적인 한국의 시위들입니다. 하지만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한국에 민주주의가 확립되고 이제 정권이 감히 국민들을 힘들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이랄까 그런 분위기가 작동하면서 대학은 침묵속에 들어갑니다. 정권에서 국민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불평등과 부조리가 터져 나와도 대학은 침묵했습니다. 그런 대학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착찹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계엄령으로 대학도 잠에서 깨어납니다. 전국의 대학과 교수들이 일제히 시국성명을 발표하고 행동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계엄전에도 그런 분위기는 확산됐지만 계엄사태로 인해 더욱 활성화되는 상황이 됐습니다.
앞서 말한 MZ세대가 한국의 현실세계에 관심을 표하고 적극적인 행동을 보인 것은 참으로 대단한 성과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제 이 나라를 어른들에게만 맡겨 놓아서는 안되겠다는 절박감이 담긴 것으로 보입니다. 참여하고 행동해야 뭔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확실하게 체험한 것으로 보입니다. 단지 SNS속에서 가상현실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거리로 나와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겠다는 선언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뭘 모르는 어린 세대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떨쳐내고 그들만의 목소리를 담는 계기로 삼은 것은 여간 반가운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주장합니다. 이제는 선거때 무심하게 바라보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철저하게 입후보자를 판단하고 자신들의 미래를 제대로 인도할 그런 인물을 택하겠다는 의지가 강력해 보였습니다. 앞으로 선거에서 MZ의 거센 흐름이 감지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이번 계엄사태는 정말 한국을 힘들게 만들고 그 후유증이 상당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헌재에서 최종 결정때까지 매우 많은 난관이 예상됩니다. 대통령과 여당 지지 세력들이 대다수 국민들의 희망과는 달리 저항하고 대결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불행중 다행으로 생각치도 못한 상황들이 벌어진 것은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어려움은 국민 모두 지금같은 생각으로 임하면 다시 못 일어날 이유가 없습니다. 국민들 특히 젊은 세대가 그들의 주장을 펼치고 자신들도 당당하게 이 나라 국정 운영에 한 몫을 하겠다면 정말 더 큰 힘을 우리는 낼 수 있을 것입니다. 8년전 벅찬 감정을 허사로 만든 그런 아픈 추억을 다시 되풀이 하지 않도록 국민 모두가 앞으로 펼쳐질 정치 상황에 더욱 관심을 보이고 방향이 잘 못 정해질 경우 언제든지 시위봉을 들고 거리로 나와 힘껏 나라의 앞날을 위해 외칠 것을 상상하면 없는 힘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참여하지 않고서는 얻는 것이 없고 국민들이 단합하면 이루지 못할 일도 없다는 것을 이번 계엄령 선포후에 너무도 강하게 느꼈습니다. 깨어있는 국민이 있다면 한국의 앞날은 절대 어둡지 않다는 것을 정말 피부로 절실하게 깨닳는 시간들입니다. 미국 국무장관이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 국민들을 강력하게 지지한다"는 발언이나 미 국무부 대변인의 "한국과 미국과의 동맹은 단지 대통령과 정부사이의 동맹이 아니라 한국 국민과의 동맹이다"라는 발언도 바로 이래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2024년 12월 17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