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번역)
성서는 히브리어, 그리스어로 쓰여져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읽고 있는 성서는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최초 성서번역은 히브리어(구약) 성서를 그리스어로 옮긴 70인 역 본이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의 문화적 배경이 달랐기 때문에 히브리어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해야 하는 필요성이 있었다.
구약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이들은 기원전 3세기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유다인들이었다. 디아스포라의 유다인들은 히브리어를 모르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히브리어로 된 모세오경, 예언서, 성문서 부분을 그리스어로 옮겨야 할 필요가 있었다.
전승에 의하면 70명의 유다인 학자들이 번역작업에 참여했다고 해서 그 성서 번역본을 라틴어로 70이라는 뜻의 ’칠십인 역’(Septuaginta)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에 칠십인 역 성서를 간략하게 ’LXX’라고 표기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시대에 팔레스타인과 지중해 지역 유다인들이 주로 사용했던 성서는 바로 이 70인 역이었다.
그런데 70인 역의 번역자들은 히브리어 성서를 문자 그대로 옮기지 않고 의미 전달을 위해 필요한 경우 주석을 하는 방식으로 의역을 시도했다. 그리스도교 복음이 로마세계에 전파된 1세기 말 이후부터 구약과 신약은 아람어, 시리아어, 라틴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3세기 이후 라틴어가 세계 공용어로 정착된 후 밀라노의 주교 예로니모(345∼419년)는 교황 다마소 1세의 위임을 받아 ’널리 수용된 통속 판’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성서 개정판인 ’불가타’(Vulgata)를 만들었다.
불가타(382년) 성서는 서방교회 최초의 표준성서로 권위를 인정받았으며, 중세시대를 거쳐 종교개혁 이후까지도 1000년 이상 가톨릭교회 유일한 공인성서로 자리 잡았다.
그후에 라틴어를 사용하지 않는 영국 평민들을 위해 위클리프(1130∼1384년)는 신약성서(1382년)와 구약성서(1384년)를 영어로 완역했다. 1516년에는 에라스무스가 그리스어 연구 결과를 토대로 당시 시대에 맞는 라틴어로 번역한 성서를 내놓았다.
그리고 이 번역본은 인쇄기계 발명에 힘입어 많은 성서학자들에게 보급되었다. 영국의 틴데일(1480∼1536년)은 영어로, 독일의 루터(1483∼1546년)는 독일어로 성서를 번역해서 평민들이 읽을 수 있도록 했다.
한국에서의 성서번역은 1790년대 초에 시작은 되었으나 본격적으로 번역이 시작된 것은 1882년 스코틀랜드 연합장로회 선교사 J.로스와 평신도인 이응찬, 백홍준 등이 루가복음을 번역하여 1883년에 간행하면서부터였다.
1887년에는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성서번역위원회가 조직됨으로써 국어 번역의 바탕이 마련되었다. 그리하여 1900년 5월에 신약, 1911년에 구약성서를 완역해서 성경전서들로 합본 간행되었다.
한글판 공동번역성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의 재 일치 운동 움직임에 따라 세계성서공회 연합회와 로마 교황청 성서위원회가 성서 공동번역 사업에 합의함으로써 비롯되었다.
성서 공동번역이라는 세계적 추세에 따라 1968년 1월 공동번역위원회가 구성되고, 1971년 4월 신약성서를 우선 출간하였으며, 이것을 개정하여 구약성서와 합쳐 드디어 공동번역성서를 발간했다.
그런데 공동번역성서는 독자가 원문을 읽는 사람과 같이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하다 보니 원문과 멀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한국 가톨릭은 1989년 번역을 시작해 지난해에 13년 만에 신, 구약 성서에 대한 독자적 우리말 번역작업을 마무리했다.
모든 번역이 그렇듯이 성서의 어떤 번역본도 완벽하지는 않다. 그러나 어떤 번역본도 예외 없이 하느님 말씀을 독자에게 분명하게 전해준다고 본다. 성서 번역에도 하느님의 성령의 활동과 이끄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성서번역은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옮겨주는 성서의 기록만큼이나 중요한 작업이다.
성서번역은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을 재창조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성서번역은 앞으로도 계속 진행되어야 하는 거룩한 신앙 활동이다.
- 서울대교구 허영엽 마티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