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동쪽>은
오래전 책장을 넘기다 덮어버렸는지 ,
아니면 긴 여정의 비행기 안에서
지루함을 쫒으려 보다 만 영화였는지 ,
늘 마음 한구석에 흐릿한 잔상으로
남아 있던 제목이었다.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된 드라마 〈에덴의 동쪽〉
일곱 편의 에피소드를 홀린 듯 단숨에
끝까지 내려보았다.
화면 속 이야기는 전쟁의 상흔을 훈장처럼 여기는
완고하고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배다른 형제,
아담과 찰스로부터 시작된다.
결핍된 사랑을 갈구하며, 서로에게 상처 입히면서도
깊은 형제애로 얽혀 있던 두 사람 앞에,
어느 날 빈사 상태의 여인 캐시가 나타난다.
형 아담은 헌신적으로 그녀를 돌보며
순결한 사랑을 품지만,
동생 찰스는 그녀의 눈빛 속에 숨겨진
지독한 악의 본성을 단박에 꿰뚫어 본다.
마치 자신의 본성을 반영하는 듯한 ~
처음 만난 것이 아니지 않느냐는 의미심장한
챨스의 말에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싶어 하는
그녀를 아담은 끝까지 지켜주고 싶어 한다.
형의 삶을 망칠 것이라는 찰스의 절박한 만류에도
아담은 결국 캐시와 결혼을 택한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해 군에 입대 했던 아담이
제대 후 방황하던 시절, 떠돌이 무리 중 누군가
캘리포니아 살리나스 계곡을 ‘지상낙원’이라 일컬었던 말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아담은 새로운 삶을 찾아 마지못해 함께 하는 캐시를 데리고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지혜로운 이웃 새뮤얼 해밀턴과
충직한 중국인 집사 리의 도움으로
흙먼지 날리는 그곳에 새로운 터전을 일구지만,
낙원의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쌍둥이 형제를 낳은 캐시는 자신을 붙잡는 남편의 팔에
총을 쏘고 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매정하게 떠나버린다.
엄마가 떠나고 남겨진 어린 쌍둥이 형제와 상실의 늪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아담을 집사 중국인 리가 알뜰히 보살핀다.
온화하고 이상주의적인 아론과
충동적이며 결핍에 시달리는 캘은
마치 구약성서 속 카인과 아벨처럼 자라난다.
어머니가 살리나스 뒷골목 사창가의 마담으로 살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캘은 그곳을 찾아간다 .
자신 안에 흐르는 어머니의 어둡고 비정한 피를
자책하며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아버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아론이 명문대입학을 했지만
학교 생활에 회의를 느껴 방황을한다 .
캘은 아버지의 상추사업 실패를 만회해 드리고자
콩 농사로 큰돈을 벌어 바친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전쟁의 비극을 이용해 돈을 벌었다는
아버지의 싸늘한 질책과 모욕뿐이었다.
인정받지 못한 설움과 주체할 수 없는 질투에 눈이 먼 캘은
아론을 어머니의 거처로 데려가 추악한 진실을
마주하게 만든다.
순결한 영혼에 깊은 파열을 입은 아론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1차 세계대전의 전장으로 떠나버린다.
다섯살에 숲동굴에서 겪은 일, 학교 선생님의 욕정에 거부,
그 뒤에 그의 자살에 대한 충격 , 화재로 위장한 부모님 살해 ,
포주의 성 노리개 등등으로 온갖 죄와 악의 사신이 된 캐시는
죄책감과 불안증으로 어둠속에서 약물 과다 복용과 환청에 시달리다가
끝내 비극적인 생을 마감한다.
그녀가 전 재산을 아론 앞으로 남긴다는 유서를 남겼지만
아론은 받을 수가 없다.
곧이어 날아든 아론의 전사 통지서. 비보를 접한 아담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만다.
동생의 죽음과 아버지의 파멸이 모두 자신의 탓이라며
절규하는 캘 곁에서, 집사 리는 꺼져가는 숨을 몰아쉬는
아담의 귀에 속삭인다.
아들에게 해줄 말이 없느냐고,
제발 이 아이를 용서해 달라고 한다.
아담은 떨리는 손으로 캘의 손을 쥐며 마지막 한마디를 남긴다.
“팀셸(Timshel).”이다.
‘네가 선택할 수 있다.
너는 죄를 다스릴 수도 있다." 는 뜻의 히브리어 다.
그 묵직한 울림이 화면을 넘어 내 가슴을 깊게 흔들었다.
내가 이 이야기에 이토록 깊이 빠져들었던 것은
아마도 ‘살리나스’라는 도시 이름이다.
오래전, 우리 가족에게도 살리나스에 작은 일터가 있었다.
아이들의 학교 때문에 나는 남 캘리포니아에 있었고
남편만 홀로 그곳에 머무르면서 돈을 벌었다.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편도 일곱 시간을 운전해
다녀오곤 했다.
남편의 가게를 찾아오던 손님들은 대부분 거친 흙을 만지며
살아가는 농장 노동자들이었다.
꿈 하나만을 품고 머나먼 타국에서 건너온
그들은 영어도 서툴렀고,
때로는 손에 쥔 화폐의 단위조차 헷갈려하곤 했다.
하지만 그 메마른 땅은 그들에게도,
그리고 낯선 타국에서 분투하던 우리 가족에게도
내일을 향한 ‘꿈과 희망의 도시 '’였다.
먼 길을 돌아,
이제 나의 ‘팀셸’을 가만히 반추해 본다.
오늘날의 나는 과연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나에게는 아직 스스로의 삶을 다스리고 새롭게
나아갈 선택의 용기가 남아 있는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여전히 익숙한 울타리 밖으로
한 걸음 내딛는 것을 두려워하며
적당히 현실에 안주하려 든다.
어쩌면 내 안의 한계를 탓하며
이대로도 괜찮다는 핑계를 위안으로 삼으며
선택의 기회를 외면하고 싶어하는것 같다.
그렇지만 언젠가 다시 내 삶에도
중대한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다면,
아담의 가족곁을 묵묵히 지켜주던
따스하고 지혜로운 집사 중국인 리가 있으면 좋겠다.
‘너에게는 선택할 힘이 있다’ 고 말해주고
일깨워줄 다정한 길잡이가 곁에 머물러주기를
바람 한다.
첫댓글 오랫만이죠? ㅎ
일찌감치 단지내 사우나후
라운지 커피마시며 영화비평 봅니다
난 자칭 영화광이라서
영화평론 좋아하는데
단숨에 읽어내리네요
아주아주 굿~입니다ㅎㅎ
넷플에 찾아보고 도전해야지..
이렇게 미리 공부좀 하면
감상에 훨씬 도움되요
나의 선택!
오늘은 집콕 영화보기
서울의 동쪽에서 다짐합니다 ㅎ
오랜만 맞습니다 .
우아한 강마을님으로 하루를 보내셨겠네요.
이곳은 요즘 너무 더워서 집에서 영화보는것을
낙으로 삼고 있습니다 .
제가 영화 감상문 쓰는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감명 깊게 본 여운이 가시기전에 한번
써 보았습니다 .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
아주 오래전 TV 주말명화로
'에덴의 동쪽'을 본 적이 있었지만,
그 내용이나 장면은 거의 기억나지
않았는데 글 따라가다 보니 그 내용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살리나스'란 지명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아 찾아보니 이번에
제가 다녀온 태평양 연안 몬트레이
바로 곁에 있네요.
돌아오던 길에 거쳐서 오다보니
지명이 눈에 익었던가 봅니다.
악명 높은 "갱" 이 있는 도시로도 유명하다고 합니다 .ㅎㅎ
그곳에서 가까운 17 마일은 쪽은 부자들만 사는
곳이라고 합니다 . 바닷가 지요 .
그곳에서 우리도 돈을 좀 벌어서 살림이 좀 폈습니다 .
희망의 도시로 기억합니다 .
글 감사합니다.
제게 에덴의 동쪽은 포스터 한 장과 제목에 대한 생각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제목 '에덴의 동쪽'을 보고 들었던 생각을 지금 정리해 보니,
성경에 아마 에덴은 유토피아 같은 곳이고 동쪽은 그 너머 라는 뜻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유토피아의 근원은 무엇인가? 행복의 근원은 무엇인가? 이런 것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인간만의 능력이라고 오만하게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는 선택일 것 같아요. 뭔가 고민을 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보통 감정을 억제 하고 이성적으로 판단을 하여 하나의 선택을 하지만 더 어려운 것은 포기하지 않고 지켜 가는 것인것 같아요.
오늘 이 글을 읽고 다시 전에 했던 선택을 되새기며 다시 원점에서 출발하고자 합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00년대 쯤이어서
미국도 어렵던 시절이었습니다 .
군대를 가거나 ,벌목을 하거나 , 농사를 짓거나 ..
그런 일들이었지요 .
영화는 사람의 심리를 잘 묘사해서
제가 빠져 들게 된것 같았습니다 .
결국은 화해와 용서만이 스스로를 자유롭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리고 자유의지로 용기를 얻을 수 있다는것 ..
고든님께도 제가 느꼈던 그 마음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
영화 '에덴의 동쪽', 줄거리를
잘 정리하여 옮기셨네요.
어떤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좋은 조건이 주어지고,
다른 사람에게는 상처와 결핍이 남기도 합니다.
스타인벡은 여기에 팀셸이라는 단어를 꺼집어 내어|
‘너는 할 수 있다’가 의미하는 것을 제시하는 듯 합니다.
이제 나이는,
선택하는 길보다
안전하게 닦아진 길을 가는 것이
나머지 삶을 지키는 것이 아닐까요.
중국인 리와 같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
더할 나위 없지만,
그 사람도 자연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아녜스님~^^
살면서 선택의 기로에서 갈팡질팡 하는 날들이 많았지요.
이젠 그럴 기회가 적어 진 것이 마음은 편합니다 .
그래도 남은 날들중에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혜와 용기로 올바른 쪽을 택하는 삶이고 싶습니다 .
현명한 이의 조언도 많이 도움이 되겠지요.
화성에서 온 이상한 남자가 수필방을 휘젓고 다니더니 잠시인지 영구적인지 자취를 감춰 아녜스님이 편안히 글을 쓰셨군요... 앳날 명화는 아무리 다시 봐도 우리인생사에 시사하는 바가 크지요.. 이방에 다시 오셔서 반갑습니다.
그때도 마음이 불편했지만 지금도그리 편안하지는 않아요.
몸이 좀 불편하신것으로 느껴졌거든요 .
왜 그래야만 했을까를 많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
수필방에 언덕저편 1님이 계셔서 마음이 든든하고
또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잘읽고 갑니다.
매너리즘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선한 의지를 깨우려는 자각을 느끼고 갑니다.
좋은 전기가 있길 바라요.
제가 영화 보는것을 좋아하는데
유독 푹 빠져서 보았숩니다 .
선과 악, 보이는것과 숨겨진것 , 과거와 현실 ..
한 사람이 갖고 있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을
저를 대입 해 가면서 본 영화 였습니다 .
아녜스님 글 읽고 어제 저녁부터 보기 시작했어요.
감사해요
미파님은 어떤 영화평이 나올지 궁금 합니다 .
저는 아담을 많이 헤아려 보게 되더군요 .
저도 감사해요 .
아네스님 날마딘 새로운힘 잘 이겨내시고
잘지내오셨잖아요 감사해요글 잘 보았습니다
네 ,
부족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
인애님도 그러시지요 .
재주가 많으셔서 부럽습니다 .
지금 이대로도 아녀스 님은 주님이 보시기에
자랑스러운 딸로 잘 살아오셨어요.
어쩌면 주님이 중국인 집사 리 인지도
몰라요.
주님은 영혼한 동반자 애인이자 보호자 남편이기도 하니까요.
아녜스 님 우리 모두 파이팅이예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
늘 주님이 저의 선택에 , 옳은 일에 ,
길잡이 되어 주실거라 믿는답니다 .
나무랑님도 그럴실테고요 ,
인륜의 도덕도 최악의 상황 이어요.
영화에서나 가능할수 있을것 같은 그런 상황.
마음에 품고 있으면 그마음도 그리될것
같습니다.
푸른하늘 바라만 보아도 어디로든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에 힘이 납니다.
제 영화 감상은 다른 사람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
공감 되는 부분도 있을 수도 있고요 .
정말 아름다운 한국 가을은 어디로 가도
좋을 계절이지요 .
이곳은 아직 더웠는데 비가 좀 오고 나니
시원해 졌습니다 .
얼마전에 시에틀 다녀 오신 분이
그곳엔 단풍이 예쁘게 들었다고 말 해 줬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