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매린千萬賣隣
장 현 심
오월 중순이다. 사냥철이 지났으니 이제 슬슬 포수가 나타날 때가 되었다. 올해는 아까시꽃이 잘 피어서 그가 치는 토종벌통에 꿀이 가득찰 것 같다. 마당가에 ‘파드득’ 나물이 한창이다. 마치 잡초처럼 번져 들고나는 발길에 밟힌다. 깊은 산속에나 있는 그 식물이 우리 집에 있게 된 데에는 사연이 좀 있다.
원주로 이사 와서 첫봄을 맞던 어느 날이었다. 큰길에서 벗어나 막다른 우리 집 마당에 웬 낯선 차 한 대가 주차해있었다.
‘감히 주인의 허락도 없이 남의 마당에 함부로….’
차 안은 비어 있었다. 만나기만하면 한마디 일러주리라 단단히 맘을 먹고 기다렸는데 해가 설핏해서야 허름한 입성의 남자가 성큼 차에 올랐다.
‘어마? 인사도 없이?’
심히 못마땅한 얼굴로 차 앞을 가로 막았다.
“남의 마당에 하루 종일 차를 세워놓으면 되겠어요?”
“요 앞산에 갔었더래요.”
동문서답이었다. 내가 재차 다그치자 그전부터 늘 이집 마당에 차를 대놓고 다녔노라고 미안한 기색도 없이 대꾸를 했다. 내가 무엇 때문에 기분 나빠하는지, 알지만 상관없다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니 내 기분 따위는 관심도 없는 듯했다.
사냥철이라 산에 들었다 나오는 길인데 허탕이라며 묻지도 않는 말을 하며 열없이 웃기까지 했다. 혼자 웃어도 모자란 사람 같지는 않았다. 순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지금까지 만나왔던 일반 사람들과는 화법이 달랐다.
그의 대답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아이의 엉뚱한 변명 같기도 했다. 힘 받는 곳 없는데다 못을 박을 때 망치를 두드리는 것처럼 내 항의는 먹히지가 않았다. 두드려 봐야 맥만 빠지는데 그런 사람과 무슨 시시비비를 가리랴.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판정패였다.
경우를 조목조목 들어 따끔하니 따져줄 요량이었는데 주차문제는 흐지부지 되고 또 오겠다는 말에 그러라고 고개까지 끄덕이고 말았다. 그의 순박함에 요즘 말대로 뻑이 간 모양이었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남편은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렸다. 그 일로 좌절하고 속을 끓이다가 병을 얻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서울 사람 모두가 사기꾼은 아니건만 그 후 나는 서울이 싫었다. 자연 속에서라면 맘 편히 살 수 있을 것 같아 삼십여 년 간 정들었던 서울을 떠났다. 그런데 몸만 옮겨왔을 뿐 의식은 그대로 이었던가보았다. 비어있는 널찍한 마당에 차 좀 세웠기로서니 그게 뭐 어떻다는 말인가. 내게 손해를 끼친 것도 아니고, 방해를 한 것도 아닌데.
‘너도 참 한심한 인간이로구나.’ 나 자신을 향해 혼잣말을 하는데 부끄러웠다.
그는 포수였다. 겨울에는 개를 데리고 사냥을 다녔다. 철이 끝나면 토종꿀벌통을 우리 집 계곡 건너편 산에 놓았다가 늦가을이면 벌을 털어내고 꿀이 가득 든 통을 지고 내려왔다. 벌이 들지 않았을 땐 통을 산에 두고 빈 지게를 지고 껄껄 웃었다. 멧돼지를 잡았다며 고기 두어 근을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가기도, 진짜 토종꿀 한 종지를 내밀기도 했다. 비상약으로 쓰라며 멧돼지 쓸개를 주며 효능을 알려준 적도 있었다.
어느 해 이른 봄, 그는 풀뿌리를 한 움큼 주면서 심어보라고 했다. 이름은 모르겠는데 향이 참나물과 비슷하고 맛도 그에 뒤지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쌈을 싸 먹어도, 삶아 무쳐도 맛이 그만이라고 했다. 그렇게 심은 몇 포기가 씨를 퍼뜨리더니 지금은 집주변에 지천이다. 그 나물 이름이 ‘파드득’이다. 사람들에게 맘껏 뜯어가라고 인심을 써도 나물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중국 남북조 시대에 송계아라는 사람이 살았다. 정년퇴직을 하고 노후에 살 집을 보러 다니다가 여승진이란 사람의 이웃집을 사서 이사를 했다. 집값은 백만금인데 천백만금을 주고 샀다는 말에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었다.
백만매택(百萬買宅) 천만매린(千萬買隣)
백만금은 집값이고, 천만금은 좋은 이웃과 함께 하려고 지불한 금액이라고 했다.
내게는 이름도 성도 모르는 포수아저씨가 찾아와서 천만금의 이웃이 되어 주었다. 산속에 산다 해서, 아니 이웃집이 없다 해서 혼자 사는 건 아니다. ‘존 단’은 그의 시에서 사람은 ‘완전히 혼자일 수는 없다’고 했다. 주변 모든 게 이웃이다.
시골에서 살려면 도회지의 사람 관계 이상으로 동식물과 엮이지 않을 수 없다. 농사를 지으면서 풀을 이기려 들다가는 몸에 골병들기 십상이다. 고라니나 멧돼지 등 산짐승들의 해코지를 당할 수 없어 항복하고 떠나는 사람들을 보았다. 잡초 속에서 농작물이 자라기도 하고, 산짐승들도 먹고 사람도 함께 먹으며 살면 좋으련만. 하긴 나는 농사가 생업이 아니라서 조금 덜 먹으면 된다는 포시라운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천만금을 내고 좋은 이웃을 찾아가지는 못하더라도 내 마음의 빗장부터 벗기는 게 우선인 것을 포수에게서 배웠다. 아예 빗장을 던져 버리면 더 좋겠지만 어디 그게 쉬운가.
첫댓글 좋은 이웃이야말로 정말 천금 같은 존재입니다.
멀리 있는 자식보다 더 살갑지요.
멋대가리 없는 포수, 그 투박한 정이 마음을 따듯하게 하네요.
나도 누군가의 이웃이란 걸 깨닫게 하는 좋은 글입니다.
우리 모두 이 글을 좋아했지요. 가만 보면 로맨틱하기도 해요.
알 수 없는 설렘이 그냥 이웃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또 하나의 이야기를 상상해 보는 즐거움이 더 좋았습니다. ㅎㅎㅎ
'시골에서 살려면~~포시라운 소리를하는지도 모르겠다.'
문단이 겹치네요.
에고 제가 옮겨오면서 뭔가 잘못 되었나봐요. 샘 덕분에 바로 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