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김홍도의 풍속화첩 중에서 서당이라는 그림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키득거려진다. 아이 하나가 훈장 앞에 뒤돌아 앉은 채로 회초리 맞기를 각오한 듯 대님을 풀고 있다. 훌쩍거리는 아이와 킥킥거리고 있는 학동들.
녀석은 아마도 훈장의 질문에 답변을 제대로 못 한 듯하다. 훈장한테 대들었다거나 떠들었다고 매를 맞는 게 아니라 공부가 시원찮아 매를 맞는 것이다. 공부 못 하는 아이에게도 체벌이 가해졌고 인자한 훈장의 표정으로 보면 도를 넘는 매질은 분명 없었을 터.
나의 중시조인 송당 박영 선생을 모신 구미시 선산읍 금오서원의 정학당에는 칠조라는 제목의 오늘날 교훈 비숫한 액자가 걸려 있는데 내용인즉슨,
'창과 벽에 낙서를 하거나, 책을 손상시키거나, 놀기만 하고 공부를 안 하거나, 어울려 지내면서 예의가 없거나, 술이나 음식을 밝히거나, 난잡한 얘기를 하거나, 옷차림이 단정하지 않은 이런 사람들이 이미 여기에 들어왔다면 돌아가고 아직 오지 않았으면 오지 말라'라는 뜻이다. 당시의 학습 분위기를 충분히 엿불 수 있는 예이다.
명나라를 개국한 홍무제 주원장은 황궁 안에 황자들의 교육을 전담할 학교를 세우고 유학자를 초빙하여 교관으로 삼았는데 이희안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이희안은 황자라고 해서 특별히 생각하지도 않았고 오직 스승과 제자로만 대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사정없이 매를 들이댔다. 한번은 황자들의 이마에 시퍼렇게 멍이 든 것을 본 주원장이 깜짝 놀라 자초지종을 들은 결과 이희안의 짓이라는 것을 알고는 대노했다.
'감히 짐의 아이들을 때리다니 이는 필시 천자를 깔보는 짓이다.'
주원장의 얼굴에 노기와 살기가 번득였다. 이를 본 마황후가 말했다.
"스승이 성인의 도를 들어 제자를 가르치는데 뭘 그리 화를 내십니까?"
주원장은 이내 노기를 풀고 오히려 이희안을 승진시켰다. 아들들이 이마에 시퍼렇게 멍이 들 정도로 맞았는데도 황제가 아닌 학부형의 자세로 돌아간 주원장도 주원장이지만 주원장을 깨우치게 한 마황후의 품성은 훌륭했다. 마황후는 중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탁월한 황후로 칭송받는 사람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여 매우 중시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산업화를 이루는 데에는 부모들의 헌신적인 교육열이 한몫을 했다고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은 오바마 대통령도 부러워한다.
그런 우리나라의 교육 현장이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스승은 없고 선생만 있으며 제자는 없고 학생만 있다. 선생은 선생대로 스스로를 노동자라 칭하며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좌편향 교육과 파업을 일삼으며, 밥상머리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학생들은 체벌이 금지된 학교에서 그야말로 살판 났고, 학부모는 학부모대로 자기 자식 챙기기에만 혈안이다. 선생은 스스로 권위를 포기했고 다스릴 매도 없으니 여선생 앞에서 중학생들이 첫 경험이 언제였냐고 물으며 싸가지 없이 굴어도 속수무책이다.
학교 안에서 신체의 자유를 학대하는 모멸적이고 폭력적인 체벌은 당연히 추방되어야 하고 그런 선생은 법의 심판을 받게 하여 교육 현장에서 퇴출시키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아예 체벌을 금지시킨 것은 심각한 문제라 아니 할 수 없다.
스스로 권위를 포기한 전교조 선생들이나 '때릴 테면 때려보세요' 라며 고개 빳빳이 쳐들고 선생한테 대드는 학생들이나 선생 머리끄댕이를 잡은 우리 아이한테는 아무 잘못도 없다고 제 자식만 감싸고 도는 학부모들에게서 이 나라의 암담한 교육 현실을 보게 된다.
어쩌다가 이 나라 교육 현장이 이렇게 되었을꼬. =고들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