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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여호수아 1장 5-9절
먼저 말씀을 시작하며 제가 미국에서 5개월 동안 교회를 다니며 느낀 점을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한인 교회가 아닌 6개의 다른 현지 교회를 가 보았습니다. 6개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공통으로 느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배가 축제 같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예배가 정말 살아있어 생동감이 느껴졌습니다.
먼저, 예배가 시작하기 전부터 예배가 끝나고 나서도 그들의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예배 전에는 복도나 홀과 같은 곳에 모여서 다 같이 인사하고, 웃으며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제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예배 시작 전 자리에 앉아 있을 때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름을 말해주고 물으며 먼저 말 걸고 인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찬양을 부르는 중에 모두가 일어서며 찬양하며, 자리가 좀 널널한 분들은 그 자리에서 춤을 추며 찬양도 부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나이와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서 즐겁게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머리가 전부 흰 백 발의 나이 드신 분들도 가장 앞자리에 앉으셔서 점프하고, 춤추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 보고, 다윗이 하나님 앞에 즐거워했다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게 가장 인상이 깊었던 시간은 말씀 시간이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 설교 시간 때 가장 많이 들리는 소리는 “아멘”일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아멘'이 압도적이라고 할 만큼 많이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제게 인상에 깊었던 소리는 “Yeah~”와 “That’s good”(좋은데요)이었습니다. 이외에도 “Talk about it” (말해주세요) 그리고 “Keep going” (계속해 주세요) 등 각자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말씀에 화답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며 느낀 것은 그들은 말씀을 그저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의 씨앗이 마음의 밭에 심기고 그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과 직접 소통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중 한 교회에 정착하고 꾸준히 다녔는데, 처음 그곳에 갔을 때 저는 누가 봐도 처음인 사람처럼 문을 들어서자마자 여기저기 둘러보며 걸었고, 일찍 도착해 버려서 사람도 적었습니다. 그때 안내 서시는 분들께서 저에게 처음 온 사람인지 물으셔서 저는 “네, 예배드리고 싶어서 왔어요.”라고 말하니 제게 웃으며 해준 말이 “Welcome home!”이었습니다. 그분들이 환영해 줄 때 그 분위기와 미소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날 정도로 그들의 환영은 밝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리고 이야기하던 도중 어떻게 교회를 찾아왔는지를 물었을 때 구글맵 보고 찾아왔다고 말씀드리니 다시 한번 “Welcome home!”을 외치며 저를 힘차게 안아주셨습니다. 이분들뿐 아니라, 제가 청년회 예배를 처음 갔을 때도 많은 사람이 다들 반갑게 맞아주고 인사를 해주며 심지어 그중 리더인 분들은 저에게 먼저 예배에서 섬기고 싶은 부분 있으면 찬양팀이든 방송팀이든 어디든 말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곳에 처음 갔지만, 그들은 저를 바로 가족처럼 대해줬습니다. 신학교에서도, 그 어떤 수련회에서도 느끼지 못 한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점에서 그들은 서로를 가족과 같이 대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러한 경험을 길게 나눈 이유가 무엇일까요? 단순한 자랑이나 흥미를 끌기 위해서가 아님은 모두가 아실 것입니다. 다들 예상하실 수 있듯이 “우리 교회도 이렇게 되자!”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 생각에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더해드리고 싶습니다. 미국에서 학기가 끝나고 목사님으로부터 돌아와서 할 설교를 준비하라는 연락을 받은 후 하나님께 어떠한 주제를 가지고 해야 할지 밤마다 기도했습니다. 저에게 첫 번째로 주신 마음은 희망과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주제를 가지고 다시 밤마다 하나님께 “어떤 희망을 전해야 하나요?” “어떤 소망을 전해야 하나요?” 계속 물으며 기도했을 때 제게 처음으로 이러한 주제를 주셨습니다. 바로, “회복을 선포하라”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제게 주신 말씀은 “래원아, 여기에서 너가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그리고 받은 것들을 한국에 돌아가서 전해라. 내가 그렇게 회복하리라”였습니다. 제가 이 주제를 가지고 기도할 때 덧붙여서 한 기도가 괜히 제가 좋은 거 보고 기분 좋아져서 제 감정대로 설교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게 주신 마음은 “선포하라, 내가 회복시키리라.”였습니다. 좀 전에 “가장 중요한 한 가지”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 누구도 아닌 하나님께서 “내가 회복시키겠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약속”, 이 핵심을 계속 마음에 품고 말씀을 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본문은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는 부분입니다. 가나안 땅은 약속의 땅이라고 불립니다. 그 이유는 성경에서 가나안 땅에 대해 표현할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맹세하신 땅이라고 자주 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대해 아브라함 시대 때부터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다시 한번 당부하신 말씀 중 하나가 “강하고 담대하라”입니다. 이 부분을 원어로 살펴보면, “용기를 가져라”입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입니다.
이 확신은 우리가 가져야만 하는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아무리 우리 교회가 회복되고 변화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계속 의심하고 믿지 않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분 안에는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한 가지 예화를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정탐하라고 명하셨을 때 총 열두 명의 사람이 가게 됩니다. 그 정탐의 내용은 매우 자세합니다. 그곳의 사람들이 강한지 약한지, 많은지 적은지, 땅은 좋은지, 나무는 어떤지 알아보고 그 땅의 열매도 가져오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습니다. 그들이 40일 동안 모든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모두가 똑같은 반응을 보인 게 있습니다. 바로 그들이 보고 온 땅이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좋은 땅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 뒤의 그들의 반응은 둘로 나뉩니다. 열두 명 중 열 명은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거대해서 스스로 봐도 메뚜기 같은데, 그들도 자신들을 메뚜기 같이 볼 정도로 강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그들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고, 이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아론을 또 다시 원망하며,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이때 유일하게 그들을 이기고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이 여호수아와 갈렙 뿐입니다.
[민수기 14장 9절]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향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 확신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렇게 설득하려 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돌로 그 둘을 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변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코앞에 두고 들어가지 못 했으며,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한 갈렙과 여호수아 두 명만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정탐꾼들이 표현한 메뚜기의 비유는 그만큼 그들에게 두려움이 되고 위협이 되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회복하는 과정 중에 그러한 어려움과 고난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씀입니다. 본문 9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는 회복을 선포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선포한 것이 아니냐” 회복의 과정 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 생활이 끝나갈 무렵 그 기간을 되돌아보며 어떻게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을지 생각했을 때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의문으로 시작해 감사로 끝났다.” 처음 1~2달 그 사이 기간에 하나님께 가장 많이 기도했던 제목이 “하나님께서 저를 미국에 보내신 이유를 깨닫게 해주세요.”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알려주시지 않으셨고, 나중에 기도할 때 “나와 동행하자” 이렇게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도 제목을 “하나님께서 저를 보내신 이유를 알지 못하더라도, 주님이 계획하신 그 길만을 주님과 함께 걷게 해주세요.”라고 바꿨습니다. 처음에 응답이 없을 때는 정말 많이 답답했습니다. 단순히 공부만 하려고 보내신 게 아니실텐데라는 생각과 제 안에 자꾸만 무언가를 하고 싶은, 무언가를 해야 할 거 같은 마음만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학기가 끝나고, 돌아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제게 미국을 보내신 이유를 쭉 나열하듯이 생각나게 해주셨습니다. 정말 놀랍고, 빈틈이 없는, 그런 완벽한 계획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봤을 때 그 순간뿐만 아니라 제 입에서는 의문이나 질문은 ‘이미’ 사라지고 감사만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예배에 대한 감사, 좋은 친구들과의 만남에 대한 감사, 자연에 대한 감사, 음식에 대한 감사 등 감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저의 삶 가운데는 의문으로 시작해 감사로 끝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제게 있던 의문이 오늘 말씀을 들은 몇몇 분들에게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문이 들 수도 있고, 의심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께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회복하심을 선포하라고 하셨을 때 그 후로 저는 계속해서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님께서 제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구하고, 구하고 또 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답이 무엇이었을까요? 기도할 때 제게 주신 것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방법이나 계획이 아닌 미소였습니다. 정말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은 1달도 남지 않았고, 과연 그 안에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간절하게 기도하던 제 얼굴에는 저도 모르게 갑자기 미소가 가득했고, 마음에는 편안함과 기쁨이 넘쳤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미소의 뜻은 하나님은 교회를 회복시키시는 그 과정 가운데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왜 갑자기 미소가 그런 의미가 될까요? 분명 회복하는 과정 중에는 어려움도 많고, 아픔 그리고 상처도 많을 것입니다. 너무 현실적인 문제들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사건을 생각해 봅시다. 모세가 바로에게 나아가 백성들을 구하고자 했을 때 결과는 더욱 힘든 노동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마주한 현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 그들은 열 가지 재앙 가운데서 구원받고 많은 재물을 가지고 애굽을 나오게 됩니다. 애굽을 나온 것과 많은 재물을 들고 나온 것은 그들의 아픔과 고통보다 더 큰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마치 우리 교회가 “기쁨의 날 주시네” 찬양을 부를 때 “아픔보다 기쁨의 날 주시네”와 같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밝은 미래를 기대했겠지만, 그 기쁨도 잠시, 출애굽 후 그들을 가로막은 홍해는 무엇보다 큰 절망이었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그들은 바다를 건널 수 없었고, 뒤따라오는 애굽 군사들에게 죽을 위기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홍해 가운데에 길을 만드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넌 후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는 과정 가운데 현실적인 어려움을 마주했듯이, 우리 교회도 현실적으로 회복하는 과정 중 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마주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로막고 죽게 만들던 홍해가, 그들에게 절망 자체였던 홍해가 그들의 찬양의 이유가 되었듯이, 우리가 마주할 어려움과 고통 역시 우리 찬양의 이유가 되며, 마주할 시련과 아픔보다도 크신 하나님의 위로와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마무리를 이렇게 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회복을 선포하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회복하는 과정 중에 정말 많은 아픔과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탄의 공격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회복의 과정을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에게 미소를 주기 때문입니다.
[본문 9절]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내가 너희들에게 선포한 것이 아니냐”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그러니 너도 나와 함께 하자”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하고, 하나님과 동행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