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를 제사상에 안 올리는 이유에 대한 반론
장달수
우리 나라에서는 흔했던 과일이 복숭아다.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복사골’이란 마을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 복사골은 “복숭아꽃이 많이 피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이를 한자로 쓴 것이 ‘도화동(桃花洞)’과 ‘도화리(桃花里)’다. ‘복사’는 복숭아의 준말로, “발목 부근에 안팎으로 둥글게 나온 뼈”를 ‘복숭아뼈’ 또는 ‘복사뼈’라 한다.
복숭아가 흔했다는 사실은 자두·앵두·호두 같은 열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 이들의 한자 이름은 紫桃(자도)·櫻桃(앵도)·胡桃(호도)로, 모두 ‘복숭아 도(桃)’ 자가 들어 있다. 한자 그대로 풀면 붉은 복숭아, 벚꽃만 한 복숭아, 오랑캐 나라에서 건너온 복숭아다. 우리 조상들이 복숭아밖에 모르던 시절에 복숭아에 빗대어 지은 이름인 것이다.
중국이 원산지인 복숭아나무는 열매를 신선들이 먹는다고 여겨 예부터 신성시해 왔다.
특히 복숭아나무는 민속신앙에서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귀신을 쫓아내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귀신에 복숭아나무 방망이’라는 속담도 그래서 생겼다. 복숭아나무가 귀신을 쫓는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와 반대로 귀신을 쫓아서는 안 될 상황에서는 복숭아가 오히려 금기시됐다.
제사상에 복숭아를 올리지 않는 것이 그 예다. 또 집 울타리 안에는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는 풍습이 있었다. 복숭아나무가 있으면 조상신이 집으로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라 하는데
성호 이익의 천도(薦桃 복숭아를 제사에 드림) 이란 글에
내가 일찍이 어느 집을 갔더니 창문 밖에 복숭아가 한창 익었고 때는 마침 세속 명절이었다. 주인이, “복숭아도 사당에 올릴 수 있느냐?”고 묻기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가어(家語)》에 공자가 ‘과일의 품종이 여섯 가지가 있는 중에 복숭아가 하품이어서 제사에 쓰지 않는다.’ 하였다. 그러나 궤사[饋食]의 변두(籩豆)에 올리는 과일이 대추ㆍ밤ㆍ복숭아ㆍ마른 매실ㆍ개암나무 열매 등인지라, 복숭아가 제물이 되는 것은 옛날에도 그러하니 《가어》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또한 변두에 오르는 과일은 마름ㆍ연밥ㆍ밤ㆍ포 등인데, 굴도(屈到)란 사람이 마름을 즐겨했기 때문에 자기 제사에 마름을 쓰도록 유언을 했는데도 그 아들 건(建)은 예가 아니라 하여 쓰지 않았으니, 생각건대 초(楚) 나라의 정한 예가 그런 것이요, 선왕(先王)의 법전에는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닌 듯하다. 복숭아 또한 노(魯) 나라에서 쓰지 않아 이 좋은 복숭아를 천대하기 때문에 성인께서 세속을 들어 말한 것이니, 대개 그 뜻을 말하자면, 지금의 제사에 쓰지 않는 것이나 도리어 귀하게 여기므로써 천대했던 것을 씻어주는 말인 듯하기도 하다. 또 주송(周頌 《시경(詩經)》의 편명)을 본다면, ‘자가사리ㆍ피라미ㆍ메기ㆍ잉어로써 향사를 지낸다[鰷鱨鰋鯉以享以祀].’고 했는데, 당(唐) 나라 사람은 그 잉어의 이(鯉)가 국성(國姓)인 이(李)와 음이 같다 하여 이(鯉)를 바꾸어 적혼공(赤鯶公)이라 하고, 잡아먹는 자에게는 곤장 60대를 때리기도 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이것을 인해 풍속이 되어서 제사에 쓰지 않으니 이러한 유례를 어찌 이루 다 따르겠는가? 더구나 지금 사람들이 심는 복숭아는 과일 중에도 아름다운 품종이니, 제사에 쓰기를 의심할 필요가 없다.” 성호사설 제12권 / 인사문(人事門)
余甞至人家𤗉外桃熟時當俗莭主人問曰桃亦可薦廟乎余謂家語孔子言果品有六桃為下祭祀不用然饋食之籩棗栗桃乾橑榛實則桃為祭用古禮然也家語之說未可暁又加籩之實蔆芡栗脯蔆者芰也而屈到嗜之遺言薦祭其子建以為非禮而去之意者椘國之㝎禮有然者非謂先王之典亦不用也桃亦魯國之所不薦而以黍雪桃故聖人舉時俗為言其意盖曰今也祭享之所不薦而反以貴雪賤云爾又如周頌鰷鱨鰋鯉以享以祀唐人以國姓同音謂鯉為赤鯶公食者杖六十後人因成俗不以薦此類何可悉遵今人所種桃即果之美品可薦無疑
춘추시대 노나라 애공(哀公)이 공자를 초청하여 다과를 대접했다. 다과상에는 복숭아와 기장이 올려져 있었다. 기장은 복숭아를 깨끗이 문질러 닦는 데 쓰는 것이었다. 그런데 공자는 기장부터 깨끗이 먹어치운 다음에 복숭아를 먹었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애공이 말했다.
“기장은 먹는 게 아니라 복숭아를 닦는 데 쓰는 것입니다.”
그러자 공자가 대답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장은 오곡의 으뜸으로 제사에 올리는 것입니다. 반면 복숭아는 여섯 가지 과일 중에 가장 흔한 것으로 제사에 올리지 않습니다. 오곡 중에 가장 귀한 기장으로 과일 중에 가장 흔한 복숭아를 닦을 수는 없습니다.” 『공자가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복숭아를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 이유에 대한 문헌적 근거이다. 그런데 춘추시대 종주국 주나라의 예법을 집대성한 『주례(周禮)』를 보면, 복숭아는 분명 제사에 올리는 음식의 한 가지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주나라의 예법을 계승하였다고 자부한 노나라에서 무엇 때문에 복숭아를 제사에 올리지 않았던 것일까? 이는 ‘여섯 가지 과일 중에 복숭아가 가장 흔한 것’이라는 공자의 말에 있다. 노나라가 위치하였던 중국 허난성(河南省)은 지금도 복숭아가 흔한 편이다. 제사상에 복숭아를 올리지 않았던 것은 너무 흔하고 하찮은 과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춘추시대 각국은 기후와 물산, 그리고 나름의 전통에 따라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이 각기 달랐다. 종주국 주나라의 제사상에는 복숭아도 올리고 마름도 올렸지만, 노나라에서는 복숭아를, 초나라에서는 마름을 올리지 않았다. 그래서 성호는 복숭아를 제사에 올리지 않는 것이 노나라의 국지적인 풍습에 불과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이보다 널리 알려진 이유가 있다. 귀신이 복숭아를 싫어하므로 제사상에 올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복숭아가 귀신을 물리친다는 믿음이 오래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건 잡귀에게나 해당하는 것이다. 조상을 잡귀 취급하면 곤란하다. 조상이 잡귀에 불과하다면 제사 따위 지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요즘 복숭아는 고급 과일로 옛날 보다 탐스럽고 맛도 아주 좋다
그런 복숭아를 잡귀 쫓는 과일이라고 쓰지 않는 것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일전에 김천 강씨 댁에서 맛있는 복숭아 두상자를 보내 왔는데 마침 親忌가 들었는데 관례데로 복숭아를 제사에 쓸 수가 없어
맛있는 과일를 제수를 쓰지 못하고 우리는 맛있게 먹으니 죄스럽기 짝이 없어 그 근원을 찾아 보았다.
그렇다면 내년부터는 제사에 쓸 수 있지 않겠나하고 몇자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