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4일, 15일, 16일 과천축제 돌아보기
한주엽
지난 5월즈음에 전정일 선생님으로부터 화덕을 같이 만들자는 요청을 받아 대략의 예산과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8월 선생들은 대안교육 실천대회에 참석하려 충남대학교로 향하는 차 안에서 본격으로 적정기술 화덕과 천연 발효 빵을 만들어 과천축제에 참여하자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5학년 가을 겨울학기 밑그림을 그릴 때 본격으로 적정기술 공부를 일놀이로 녹여낼 생각이었기에 좋은 제안이라 생각했다. 다만 앞으로 있을 다른 연수들과 9월 초에 있을 자람여행, 무엇보다 내 기억을 끄집어내기에 마음으로 여유가 부족했다. 그래서 둘레의 다른 화덕 선생님을 모셨다. 3년 전 쯤에 에너지 자립 집을 지을 때 로켓메스히터 라는 난로 겸 구들침대 만들기를 알려주신 백동선 선생님을 모시기로 했다. 2대의 화덕을 만들기로 했다. 1대는 백동선 선생님이 전북 순창에서 미리 만들어 오시고 1대는 과천축제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만드는 것이다. 전에 만들어 둔 도면과 화덕의 사진을 살피며 머리와 손의 감각을 깨운다.
축제가 다가왔다. 어린이들에게 불의 연소 원리와 과정을 가지고 과학공부를 시작했다. 실제로 난로를 만들고 불을 피워보지 않으니 어린이들은 어려워하는 눈치였다. 직접 손을 쓰고 흙을 쌓고 불을 때보면 저절로 이해하리라. 줄곧 공부를 함께 하고 장작을 만든다. 축제에선 2000인분의 피자를 구워 나눌 예정이다. 장작이 많이 필요할 것이라. 이틀에 걸쳐 5,6학년 어린이들과 장작을 팬다. 톱질하는 자세가 영 불안해서 톱질을 다시 가르친다. 그래도 5,6학년이나 되니 스스로 톱질을 하고 도끼질을 한다는 생각에 대견함을 느낀다. 어린이들은 집으로 가고 나는 화덕에서 실험삼아 구워볼 빵의 반죽을 살핀다. 빵 반죽 만들기는 올 2월에 송순옥 선생님에게 배웠지만, 아직 서툰지라 전정일 선생님이 미리 해두신 반죽과 발효종에 밥을 준다.
적정기술 화덕은 9월 14일 쇠날부터 15일 흙날 까지 만들 계획이었다. 14일 아침 이것저것을 챙겨 과천축제장으로 향했다. 날씨가 좋지 않았다. 바깥에서 화덕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비가 오면 어린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작업을 할 수 없다. ‘비만 오지 말아줘.’ 줄곧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축제장에 닿으니 오랜만에 뵙는 백동선 선생님이 계셨다. 대안교육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풍부한 분이라 우리학교 어린이들과의 수업도 걱정 없었다. 저 멀리 순창에서 새벽부터 달려오셨단다. 고마운 마음이다. 가져오신 화덕을 보니 어린이들이 꽤 흥미를 가진다. “이걸 어떻게 만들어요?” 하는 어린이부터 “얼른 만들어요” 하는 어린이까지. 저마다의 기대는 다 다르다. 미리 만들어 온 화덕을 보니 어린이들과 만드는 화덕이어서 그런지 어려운 구조로 만들지 않으셨다.
서로 저마다의 소개를 짧게 하고 본격으로 화덕 만들 채비를 한다. 화덕 하나를 만들 때에도 많은 재료와 품이 든다. 화덕을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번에 만들 화덕은 황토를 조적해서 만드는 화덕이다. 미리 채비할 재료들을 풀어두니 바닥에 산더미처럼 쌓인다. 어린이들에게 재료를 하나하나 설명해주니 너무 많아서 나중에 글로 정리하라고 부탁한다.
우선 화덕의 기초가 될 기초면을 만든다. 기본으로 섭씨 400~500도는 훌쩍 넘기는 까닭에 화덕의 벽면만큼이나 기초 역시 중요하다. 방열처리가 되어있는 상판을 이동할 수 있는 다리에 맞게 재단한다. 그리고 저마다의 상판 조각을 미리 용접해둔 이동할 수 있는 다리에 올린다. 올릴 땐 세라픽스 라는 접착제를 조각에 발라 서로 잘 붙게 만들어준다. 그 다음 내화벽돌을 반으로 쪼개 상판위에 둥글게 놓고 빵을 구울 수 있는 자리에 구들을 올려 둔다. 둥글게 놓은 벽돌을 사이에 철로 된 막대기를 구부려서 반 구 형태를 만든다. 화덕은 돔 모양이기 때문에 막대기 여러 개로 돔의 기초를 만들어준다. 돔의 기초가 만들어 졌다면 이젠 돔에 흙을 쌓을 수 있게 철망으로 돔의 둘레를 감싸준다. 철망이 없다면 돔 모양으로 흙을 쌓을 수 없을뿐더러 나중에 돔이 무너지고 만다. 일종의 섬유인 것이다. 화덕의 입구 (화구) 자리와 연통 자리를 잡고 크기에 맞게 철망을 자른다. 이렇게 화덕의 기초공사는 마무리된다.
벽돌을 놓고 쇠막대기로 돔 모양을 만들고 있는데 소나기가 찾아왔다. 날씨마저 쌀쌀한 탓에 서둘러 어린이들을 피하게 한다. 그동안 화덕 둘레에 천막을 친다. 잠시 작업을 멈춘다. 그동안 어린이들과 작업한 것들을 돌아본다. 오랜만에 큰(?) 일놀이 공부인 까닭에 어린이들도 잘 기억한다. 앞으로 흙을 쌓고 미장하는 일만 남았다는 말에 어린이들의 기대도 커 보인다. 비가 그치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아침부터 이런저런 일놀이 공부를 많이 한 터라 이른 시간이지만 점심을 먹기로 한다.
점심을 먹고 본격으로 흙 쌓을 채비를 한다. 흙은 순창에서 가져온 질 좋은 황토를 쓴다. 사울에선 황토 한 주머니도 비싼 값에 사야하지만 시골에선 쉽고 싸게 구할 수 있다. 이런 처지를 잘 아시는 분이라 황토도 넉넉히 갖고 와주셨다. 나중엔 이 황토로 천연 미장 공부를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황토는 물을 넣고 반죽해서 쌓으면 금방 깨져버린다. 수분이 날라 가면서 황토면에 금이 가는 탓이다. 그래서 많은 황토 작업은 여러 재료를 섞어 반죽을 만든다. 이번 반죽에는 모래, 볏짚, 석회가루를 섞는다. 모래와 볏짚은 황토가 갈라지지 않게 도와준다. 그리고 석회가루는 반죽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어린이들에게 저마다의 비율을 알려준다. 황토와 모래는 1:2의 비율로, 그리고 석회는 1:0.3의 비율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저절로 수학공부가 된다. 마침 5학년 어린이들과는 분수, 소수 공부를 하고 있던 터라, 줄곧 머릿속으로 계산하게 이끌어본다. 정확한 무게를 잴 수 있는 일이 아닌지라 어린이들에겐 어림으로 비율을 맞춰보도록 한다. 저마다 삽을 한 자루씩 잡고 재료를 섞는다. 양이 상당한 터라 돌아가면서 삽질을 한다. 물과 재료를 더 넣을 땐 이 비율이 맞는지 세심하게 양을 조절한다. 절로 일놀이 공부가 되는 것이다. 어린이들의 힘에는 많이 벅찬 일이라 교반기라는 기계로 반죽을 한다. 반죽이 완성되고 흙을 쌓는다. 7명의 어린이들이 함께 하고 도움 선생이 3명이나 있으니 일이 생각했던 것 보다 빠르게 진행된다. 저마다 흙을 한주먹씩 가져와 쌓고 또 쌓고. 느낌도 말랑말랑하고 온 몸에 흙이 묻으니 어린이들의 장난기가 살아난다. 동무들의 얼굴과 옷에 흙을 묻히고 뛰어 놀기 바쁘다. 이런 놀이도 있어야 일놀이도 풍성해질 것이라 믿는다. 이런 흙반죽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은 터라 선생도 도움말을 주지 않는다. 일을 줄곧 하니 저마다 일나누기가 뚜렷해진다. 반죽을 옮겨주는 사람, 흙을 쌓는 사람, 쌓인 흙의 면을 잡고 미장하는 사람. 저마다 흥미 있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찾아간다.
한 어린이가 눈에 띄게 일놀이에 흠뻑 빠져있다. 다른 동무들은 장난도 섞어가며 일을 하지만 이 어린이만큼은 선생들 보다 더 집중해서 흙미장을 한다. 흙미장 하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는데 집중력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뒤에 선생에게 다가와서 흙미장 하는 학교가 없는지 물어볼 정도다. 흙미장은 쌓은 흙의 면을 매끈하게 잡아주는 일이다. 미장칼로 면을 고르고 예쁘게 하는 일종의 마감 작업인데 선생만큼 빼어나게 해낸다. 사실 미장에 완성은 없다. 자기 마음에 찰 정도로만 하면 되는 것인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 선생이 봐도 아주 훌륭하게 해냈음에도 더 예쁘게 하고 싶다고 말하는 어린이다.
미장을 마치니 어느새 시간이 4시가 되었다. 5,6학년을 제외한 나머지 학년은 과천축제를 둘러 봤지만 5,6학년 어린이들은 화덕을 만드느라 축제를 둘러볼 시간이 없었다. 어린이들이 화덕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잘 해주어서 생각했던 것보다 하루나 일찍 화덕을 완성했다. 물론 나머지는 선생들이 마감미장을 하고 마무리하지만 말이다. 남은 일들은 선생들의 몫이기에 어린이들이 할 수 있는 뒷정리를 살핀다. 흙을 다루는 일은 장비에 흙이 묻어있으면 반드시 씻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굳어버려서 장비를 버려야하기 때문이다. 일이 끝난다는 것은 뒷정리까지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어린이들도 잘 아는 터라 선생과 함께 뒷정리를 하고 축제를 둘러보게 한다.
첫날 어린이들의 손 덕분에 둘째 날은 선생들이 마무리 하는 일 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선생들이 마무리 미장하는 것을 살펴보며 손을 돕는다. 마무리 미장을 하고 보니 선생님이 미리 만들어 오신 화덕보다 더 완성도 있게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어린이들을 크게 격려한다. 청소년 과정에서도 만들기 쉽지 않은 피자화덕을 5,6학년이 몸과 마음을 합쳐 만들어 내다니. 대견할 따름이었다. 둘째 날 아침나절까지 마무리 작업을 한다. 본디는 둘째 날 아침부터 빵을 굽고 피자를 구어야 하지만 이런 저런 까닭 탓에 점심나절부터 빵을 구울 수 있었다. 빵 반죽을 보니 빵 선생님과 부모님들의 애씀이 한 눈에 보여 고마울 따름이었다. 전날 밤부터 1시간에 한번 씩 반죽을 뒤집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또 채비를 하셨다니. 어린이, 부모, 선생들의 애씀이 합쳐진 이번 축제임에 틀림없다. 화덕을 불을 지피고 이것저것 마무리를 하고 있으니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도시에선 보기 힘든 모습일 것이라. 궁금한 것이 많은 모양이다. 화덕이 무엇인지, 화덕에 무엇을 구울 생각인지, 우리 학교는 어떤 학교인지 많은 것들을 알려낼 수 있다. 이번 축제에선 2000인분의 빵을 구워 나눌 예정이다. 둘째 날과 셋째 날에 1000인분씩 나눌 생각인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몰린다. 먹는 사람들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둘째 날 나눌 빵의 반죽이 떨어지고 피자를 줄곧 구워 나눈다. 좋은 재료로 직접 반죽한 빵과 피자인 까닭에 반응이 아주 좋다. 우스갯소리로 500원을 받고 팔았으면 부자가 되었을 거라며 피자를 굽는다. 부모님들의 덕에 정신없었지만 큰 탈 없이 빵을 굽고 나눌 수 있어 다시한번 감사할 따름이다.
화덕 만들기 공부를 준비하며 개인으로는 전에 했었던 적정기술 공부들을 되돌아보고 머리와 손의 감각을 깨울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선생으로서는 일놀이와 수학공부, 과학공부를 자연스레 끌어내고 그리고 글쓰기 공부까지 이어지게 할 수 있는 뜻이 깊은 공부이다. 자연의 재료로 생활에서 쓰임을 만들어내고 앞으로도 화덕의 쓰임을 공부꺼리로 이을 수 있어 역시 뜻이 깊다. 우리 밭에서 나온 밀로 반죽을 하여 빵이나 피자를 구워 새참으로 나누어 먹을 수 있고 화덕을 만들고 남은 흙으로 흙미장을 하여 세밀한 손의 감각을 깨우며 그림 그리기 공부를 끌어낼 수 있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흙을 쌓으며 몸을 크게 쓰고 미장을 하며 오밀조밀하게 온 신경을 집중하다 보면 몸과 머리의 균형 있는 자람이 일어날 것이라 믿고 있다.
어느 공부나 마찬가지이지만 선생이 계획한 공부들이 어린이들에겐 어떤 뜻이 있을까? 어떤 뜻으로 받아드려질까? 라는 물음이 남는다. 좋은 공부임에는 틀림없지만 어린이들에 저마다 받아드려지는 것은 어떤 것일까? 따위의 잔상 같은 것이다. 흙을 반죽하고, 쌓고, 미장하는 순간의 어린이들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본 적 없던 집중하는 표정을 보여주기도 하고 흙으로 장난을 치며 일을 즐기기도 한다. 거친 결론이지만 선생으로서 갖고 있는 확신 하나는 어린이들은 일과 놀이로 자란다. 일을 하며 자연스레 노는 법을 배우고 일이 곧 놀이라는 것을 동무들을 통해, 일을 하는 순간에 알아가는 것이다. 선생으로서 드는 물음들은 어린이들이 웃고 즐겁게 해내는 모습들을 보며 위안을 얻지만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고 애써야 할 부분임도 틀림없다.
첫댓글 와~~
화덕 만드는 법을 아주 자세히 써 주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