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1: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너희 식물이 되리라 - 최초 인간과 동물에겐 채식만이 허용되었음을 보여 준다. 육식은 타락 후 노아 홍수 사건 직후에야 비로소 허용되었다. 이로 볼 때 피흘림이 뒤따르는 육식 행위는 결코 하나님의 본래 뜻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원 창조시 허용되지 않았던 육식이 타락 후 허용되었다는 사실은 곧 처음 낙원의 재 창조 또한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런데 이 낙원의 재창조는 그리스도의 '피흘림'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루어지고 있으며 최종 이루어질 것이다.
[마 21: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길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 유대 율법에 의하면 길가에 무화과나무가 있다고 하면 그 열매를 따먹는 일이 허락되어 있었다. 또 톰슨에 의하면 오늘날까지도 길가의 무화과나무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대로 취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지중해 연안 국가에서는 이 열매를 '가난한 자의 양식'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무화과나무는 풍요와 번영의 상징으로 나무 자체가 우람하고 보기에 아름답다. 밑 둘레의 굵기가 약 1m, 높이가 5-6m나 되며 가지가 8-10m의 너비까지 뻗기 때문에 그 그늘은 기도와 명상과 휴식의 장소로 이용되곤 한다(요 1:48). 또한 잎과 꽃이 무성하게 되었을 때 그 열매도 함께 열리는데 이스라엘에서는 그 열매를 일년에 두번(태양력으로 6월과 9월) 혹은 세 번 6월과 8월과 12월 딸 수 있다고 한다.
잎사귀 밖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시고 - 푸른 빛깔을 띤 무화과열매들은 대개 6월까지는 먹을 수 있을 만큼 완전히 익지 않아서 6월에 먹기에는 매우 껄끄럽지만 그래도 먹을 수는 있었다. 따라서 보통잎이 있다는 것은 비록 완전히 익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열매는 맺혔음을 암시한다. 마태는 이런 모든 것들을 그의 유대인 독자들이 잘 이해할 것이라 생각했으므로 '잎사귀 밖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시고'라고 간결하게 언급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막 11:13에 의하면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보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본문의 해결점이 된다. 즉 그때가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왜 예수가 이 특별한 나무, 곧 잎이 무성하기 때문에 눈에 잘 띄는 나무에 갔는가를 설명해 준다. 그 나무의 '잎들'은 바로 그것이 '열매'를 맺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따라서 자신의 시장기를 메울 수 없으셨던 예수께서는 기억에 남을 만한 실물 설교의 기회를 포착하시고 그 나무를 저주했는데, 그것은 제 철이든 아니든 그것이 열매를 맺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마치 열매가 있는양 무성한 잎만 자랑했지 실상은 아무 열매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6월에야 비로소 열매맺는 무화과나무임에도 불구하고 4월에 벌써 그 잎을 냄으로써 '열매'에 대한 기대를 잔뜩 부풀리게 했던 이 나무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상징하고 있다.
(1) 선민이라고 하는 자의식(自意識) 속에서 형식에불과한 희생제사를 위해 부지런히 성전을 오고 갔지만 단 한 번의 진정한 희생제사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려는 메시야이신 예수를 거부하는 유대인들과 (2)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겉으로는 경건의 모양을 자랑하면서도 실제로는 아무 신앙의 열매도 맺지 못하는 유대인들의 이율 배반적인 생활 태도를 상징한다. 이와 더불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3) 크리스찬이라고는 하지만 그에 어울리는 사랑의 계명들은 실천하지 못하고 입으로만 주여 주여를 찾는(7:21) 오늘날의 수 많은 교인들을 가리킨다. 이제부터 맺지 못하리라 - 무화과나무는 팔레스틴에 있는 여러 나무들 중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애용되고 있는 나무였으며 종종 이스라엘을 상징하곤 했다 또 이 나무는 언약의 땅을 가리켜 '무화과나무의 땅'이라고 하는 표현에 사용되기도 하였으며(신 8:8),
그 열매는 가나안으로 정탐갔던 사람들이 그땅의 비옥함과 번영을 증명하기 위해 가져온 산물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무화과나무 그늘에 앉아 있는 것은 바로 평화와 안녕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시고 쳐서 죽게 하실때는 바로 여호와의 진노의 날에 해당한다. 따라서 예수의 무화과나무의 저주는 바로 여호와의 진노의 날이 임박해 왔음을 알리는 선포이다.
그가 삼년을 이곳 예루살렘에 와서도 열매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따르는 제자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는 그 나무예루살렘를 찍어버 리겠다고, 즉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셨던 것이다 곧 마른지라 - 마가복음에 의하면 무화과나무는 그들이 보는 그 자리에서 곧 마르지 않았다. '곧'의 뜻인 부사 '파라크레마'는 물건을 살때 그 물건과 함께 돈을 지불한다고 하는 즉각적인 현금지불의 뜻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마태의 본문에 의하면 무화과나무는 예수의 저주가 말해지는 동시에, 비록 그 외형은 그대로였지만 그것은 순간적인 연장일뿐 이미 그 본질상 마른나무로 바뀌었다(교환)고 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 사실은 결국 예수께서 지니신 신적 능력과 위엄을 보여 준다. 즉 예수께서는 종말의 때에 인류의 심판 주로 오셔서 그 외모 가 아닌 내면의 유무를 관찰하시고 그에 준해 심판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