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인의 인생 관찰 죽은 소설가가 말을 걸었다. 책장을 정리하다가 소설가 최 인 호 씨가 수덕 사에 묵으면서 쓴 에세이 집을 발견했다. 그가 죽기 몇 년 전 쓴 글 같았다. 아마도 암이 발견되기 전이었을 것이다. 병 기간 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책 속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 곧 닥쳐올 노년기에 내가 심술궂은 늙은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는 것이 내 소망이다. * 무엇에나 올바른 소리 하나 쯤 해야 한다고 나서는 그런 주책없는 늙은이, 위문 받기 위해서 끊임없이 신체의 고통을 호소하는 그런 늙은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가 있었으면 좋겠다. * 그리고 하나 더 바란다면 전혀 변치 않는 진리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죽는 날까지 간직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는 지금은 땅속에서 한 줌의 흙이 되어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글이 되어 지금도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그가 죽은 날 신문(新聞)에 난 사진이 아직 뇌리(腦裡)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미소(微笑)를 머금고 있는 서글픈 얼굴이었다.
그는 우리 시대(時代)의 아이콘 같은 인물(人物)이었다. 청년(靑年)으로 영원(永遠)히 늙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히랍인(希臘人) 죠르바 같이 항상 기뻐하고 춤을 추고 떠들 것 같았다. 그런 그가 늙음과 병(病) 그리고 죽음을 바로 앞에 두고 침묵(沈默)을 말하고 있었다. 노인(老人)에게 진리(眞理)란 그런 게 아닐까?
지난 2년 동안 실버 타운에 묵으면서 노인들의 지혜(智慧)를 유심(有心)히 살펴보았다. 대부분이 그림자처럼 조용히 살고 있었다. 밥을 먹을 때도 혼자 조용히 밥을 먹고 상(床)을 닦고 의자(椅子)를 제자리에 놓은 채 말없이 사라지곤 했다. 내 나이 또래의 다정(多情)한 교장(校長)선생님 부부(夫婦)의 모습이었다.
밀 차를 잡고 간신히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노인을 봤다. 혼자 고통(苦痛)을 참을 뿐 아픔을 얘기하지 않았다. 자식(子息)들이 다 성공(成功)해서 잘 산다고 하는데도 노인은 아들 얘기를 입에 담지 않는다. 젊어서 수 십 년 잠수부로 깊은 바닷속에서 외롭게 일하며 아이들을 키웠다는 노인이었다.
실버 타운에 들어와 아내와 사별(死別)하고 혼자 고독을 견뎌내는 노인도 있었다. 아들과 손자가 보고 싶지만 혼자서 참아내고 있는 것 같다. 실버 타운의 시설(施設)이 아무리 좋아도 그의 마음은 가족(家族)과 함께 있다. 그는 골프보다 손자의 손을 잡고 학교에 데려다 줬으면 더 좋겠다고 했다. 그는 평생(平生)을 비행기(飛行機)의 기장(機長)으로 승객(乘客)을 태우고 지구(地球)의 하늘을 날았다고 했다. 깜깜한 밤하늘을 보면서 상자(箱子)같은 조종실(操縱室)에 혼자 있을 때도 외로웠었다고 했다.
의식(意識)있는 노인들의 불문 율(不文律)은 아픔과 고통(苦痛)에 대해 입을 닫는 것이었다. 세상(世上) 남의 일에도 끼어들지 않았다.
며칠 전 실버 타운 로비에서 칠십 대(七十代) 후반( 後半)의 한 노인과 잠시 대화(對話)를 나누었다. 하루 종일 몇 마디도 하지 않는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는 암 수술(癌手術)을 하고 요양(療養)을 와 있었다. 그는 대학(大學) 재학 중(在學中)에 고시(考試)에 합격(合格)을 하고 승승장구(乘勝長驅)했던 고위공직자(高位公職者) 출신(出身)이었다. 젊은 시절 꽤 분위기(雰圍氣) 있는 미남(美男)이었을 것 같다. 그 역시 삶의 마지막은 고독(孤獨)과 완만(緩慢)한 죽음이 지배(支配)하는 바닷가의 실버 타운 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는 내게 품격(品格)있게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밥과 물을 안 먹고 이십 일을 견디면 정확하게 죽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할 결심(決心)인 것 같았다. 지혜(智慧)로운 노인(老人)들은 품위(品位0 있게 죽는 방법을 고민(苦悶0하고 있는 것 같다.
구십 대(九十代)의 한 노인(老人)은 실버 타운은무의식( 無意識)의 먼 나라로 향하는 사람들이 잠시 스치는 대합실(待合室)이라고 했다. 서로 서로 어떤 인생(人生)을 살고 어떤 길을 왔는지 서로 말하지 않는다. 눈 인사(人事)정도를 할 뿐 자기 자리에 말없이 앉았다가 자기 차례가 오면 조용히 영원(永遠)한 목적지(目的地)를 향해 간다고 했다. 나는 인생(人生)이라는 소설(小說)의 결론(結論) 부분( 部分)을 읽고 있는 것 같다.
아름다운 꽃도 언젠가 는 시들듯 사람도 늙고 병(病)들어 죽는다. 젊은 날의 성취(成就)와 실패(失敗), 웃음과 고민(苦悶)은 시시각각 변하는 스크린을 스치는 장면들이 아니었을까? 내 몸은 나의 영혼(靈魂)이 이 세상을 타고 지나가는 자동차가 아니었을까?
인생의 결론 부분에 와서 젊은 날을 돌이켜 본다. 그때의 고민(苦悶)들이 정말 그렇게 심각(深刻)한 것이었을까. 젊음과 건강 그 자체 만으로도 축복이었는지를 몰랐다. 늙어보니까 젊은 날 추구하던 돈과 명예, 지위가 다 헛되고 헛되다.
퇴근을 하고 저녁에 아들 딸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 가지고 집으로 들어가 나누어 먹으면서 활짝 웃을 때가 행복이었다.
<출처 : 부부 사랑의 샘터 정 다운>
- 옮긴 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