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정치 권력과 군부 사이의 갈등이 표면화하고 있다. 한 국가의 군 최고 통수권자는 대통령이다.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과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총참모장(합참의장 격) 간에 잠복해 있던 대립설이 최근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과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지'의 보도들이 그 계기가 된 듯하다.
타임지는 '지속적인 반격'을 주장하는 젤렌스키 대통령과 이에 반발하는 군부 간의 충돌을, '고를로프카(Горловкa) 공격' 명령에서 실례를 찾아가며 자세히 보도했다. 또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져 어느 쪽도 돌파구 찾기가 어렵다'는 잘루즈니 총참모장의 상황 판단(이코노미스트지 보도)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직접 반박하는 등 흐름이 심상치 않다.
특히 양측의 갈등이 군사작전과 핵심 지휘관의 인사에서 불거지고 있다는 게 우려스럽다.
잘루즈니 총참모장과 대화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4일 키예프(키이우)를 방문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언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만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막다른 골목 앞에 와 있다', '교착상태에 빠졌다'는 잘루즈니 총참모장의 상황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이 시작되고, (우크라이나가) 곧 패배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을 때가 (지금보다) 더 힘들었다"면서 "그러나 인간이기 때문에 전쟁의 피로도를 이해하지만, 문제가 되는 부분은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거론한 문제는 바로 제공권으로, 미국으로부터 F-16 전투기를 받으면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잘루즈니 총참모장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군이 이미 장거리 방공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F-16 전투기가 전선의 교착 상태를 바꾸지 못할 것"이라며 "획기적인 것, 예를 들면 중국이 처음 발견한 화약 같은 게 나와야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측이 공개적으로 충돌한 것은 빅토르 호렌코(Виктор Хоренко) 우크라이나 특수전 부대 사령관의 경질이다. 호렌코 사령군은 러시아 흑해함대와 크림반도 주요 기지와 병참 시설 등에 대한 공격을 성공적으로 지휘한 인물로 알려졌다.
전격 경질된 호렌코 사령관/사진출처:스트라나.ua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3일 호렌코 사령관을 세르게이 루판추크(Сергей Лупанчук) 장군으로 전격적으로 교체했다. 그리고 저녁 대국민연설을 통해 호렌코 전 사령관이 앞으로 군정찰국(GUR)에서 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일부 지역의 국가보안국(SBU) 책임자를 해임한 바 있다.
호렌코 전 사령관은 즉각 반발했다. 그는 "언론을 통해 자신의 경질 소식을 듣는 게 말이 되느냐"며 "잘루즈니 총사령관에게 물어보니, 그도 경질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 따위로 인사하면 안된다"고도 했다. 그는 대통령실이나 총참모부 측과 갈등이 있었는지 여부를 묻는 언론의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면서도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라"고 날을 세웠다.
그의 전격적인 경질이 스캔들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자,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이튿날(4일) 대통령이 루스템 우메로프 국방부 장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인사를 단행했다고 해명했다. 우메로프 장관도 이를 인정한 뒤 "호렌코 전 사령관은 이제 다른 방향으로 필요한 장군"이라고 주장했다.
우메로프 국방장관/사진출처:golos.com.ua
스트라나.ua는 "전문가들은 코렌코 전사령관의 경질 사태를 대통령과 잘루즈니 총참모장의 갈등설 차원에서 보고 있다"며 "잘루즈니 총참모장의 해고 가능성(타임지 보도)에 대한 정치권력(대통령실)의 경고일 수 있다"고 짚었다. 한 군사전문가는 "대통령실은 의도적으로 잘루즈니 총참모장의 군 장악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며 "젤렌스키 대통령 측(캠프)은 잘루즈니 총참모장이 차기 대선에서 유력한 경쟁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두려워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미하일 포돌랴크 대통령 고문은 대통령과 군부(총참모장) 간의 갈등설 보도(타임지)에 대해 "대통령은 특정 조직(군 부대)이 기능적 책임을 다하도록 요구해야 한다"며 "대통령이 (군에게 영토) 탈환을 요구하지 않으면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대통령은 전방 상황과 가용 자원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