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흐드러지면 벚꽃이 핀 나뭇가지까지 끌어당겨 벚꽃 향기에 취하곤 했습니다. 호수에 노니는 원앙부부가 미끄러지듯 헤엄치며 금슬 자랑할 때면
“어머, 예쁘다. 예뻐”
하고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그랬던 내가, 웬일인지 올해는 무엇을 봐도 시큰둥입니다. 어제도 공원 숲에서 보지 못했던 새가 날았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넌, 누구니?”
하고 물어보았을 텐데 눈 한번 크게 뜨곤 그만이었습니다.
멀리서 벚꽃 구경 온 사람들로 공원에 사람이 넘쳐나지만, 산책을 나서도 벚꽃 길 쪽으로는 멀리서 눈인사로 끝내고 말았습니다. 늙어도 마음은 이팔청춘이라 했는데 몸이 마음을 끌어내렸는지 아니면 마음이 몸을 먼저 끌어내렸는지 알 수가 없지만 만사가 귀찮았습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영양가 없는 고민도 잠깐이었습니다. 그냥 올봄은 그동안 겪어보지 못 한 심드렁한 봄날이었습니다.
버릇대로 글 한 줄 쓰자고 컴퓨터 앞에 앉아도 그냥 멍만 때리다 일어서고 말았습니다.
화두가 떠 오르지 않아도 끙끙 앓을 일도 없었습니다. 가을만 큼은 아니지만 봄바람이 산들거리고 구름 몇 점 흘러가는 푸른 하늘을 보며 날고 싶었습니다. 어디라도 가면 좀 나을까 싶지만 마음은 거기서 멈추어 버립니다. 무릎이 아프고 난 다음부터는 마음속에 주사 한방 스스로 놓았습니다. 뚜렷이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다고 말입니다.
당연히 몽글몽글 피어 올릴 꿈 하나 키우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굳이 무지개를 잡자는 것도 아닌데 꿈이 없으니 초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좋아하던 해외여행도 끊었으니 모든 것이 그냥 다 나와는 관계없는 일들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꿈이라도 꾸어야 사는 맛이 나고 봄바람에 우르르 피어나는 꽃들에 취해 올 한 해도 아름답게 흘러갈 텐데..... 내 봄 날은 이제 아주 사라진 걸까요?
그랬던 내가, 요즘에는 찬란한 봄 길을 걷습니다. 느긋하게 콧노래도 불렀습니다. 어깨가 절로 들썩입니다.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습니다. 아무나 붙잡고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올해 선물처럼 다가 온 봄은 그래서 좋습니다. 형형색색 알록달록 봄에게 갖은 아양이라도 떨고 싶어 집니다. 내가 왜 갑자기 이렇게 됐는지 이유는 간단합니다. 잊어버린, 아니, 강제로 놓아 보냈던 내 생애 첫 소원 하나를 이루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일본인이 살다 간 앞 집에는 아름드리 체리나무가 서너 그루가 있었습니다. 벚꽃이 필 무렵이면 어김없이 연분홍빛 체리 꽃도 무수히 피어났습니다. 체리 꽃 향기가 얼마나 진했는지 체리나무 곁을 지날 때면 현기증이 일어날 지경이었습니다. 봄이 무르익는 6월이 오면, 앞집에서는 윤기 자르르 흐르는 체리를 땄습니다. 우리 집에도 두어 바가지를 보내왔습니다. 식구들이 빙 둘러앉아 그 체리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때, 그 체리 맛이, 얼마나 달콤했던지 꿈 하나 만들었습니다.
내가 크면, 내 집에, 체리나무 한 그루 꼭 기르겠다고. 그 꿈을 잊고 살았습니다. 사는 게 급해서였지요. 나이 들고 나니 그 꿈이 생각났습니다. 요즘은 귀하디 귀했던 체리가 어느 순간부터, 마트 매대에 나타나더니 요즘은 사계절 내내 체리를 먹을 수 있는 시절입니다. 체리를 사 먹을 때마다 체리나무를 심어 기르겠다는 어릴 때 꿈이 모락모락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체리를 먹으면 씨를 심어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기를 오 년은 족히 넘었습니다. 내가 아는 방법이란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아도 체리 씨는 싹이 트지 않았습니다. 올해도 체리 씨 5개 심으면서 심드렁했습니다. 또 싹이 안 나올 거라고 지레짐작을 넘어 단정까지 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체리 씨를 심어 놓고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 졸이며 싹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며 빌고 또 빌었습니다만 말입니다.
체리 씨 심기가 벌써 6년째니, 당연히 싹이 안 나올 거라 생각하면서도 온 신경은 체리 씨를 향해 가고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매불망 싹트기를 기다렸지만 좀처럼 체리 싹은 올라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올해도 실패인가?”
하며 실망이 더 해 갈 무렵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드디어 연초록 싹이 올라왔습니다.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올라왔습니다. 나도 모르게
“우와~~~”
함성을 질렀습니다. 만세라도 부르고 싶었습니다. 싹 튼 체리의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릅니다. 단지 고향이 미국이라는 것 밖에는 모르는데 말입니다.
아침부터 하늘이 찌푸리더니 오후가 되자마자 비가 내렸습니다. 후둑후둑 빗방울이 쏟아지는 소리에 내 얼굴 가득 웃음이 서렸습니다.
“그래 그렇게 만 내려 주렴, 하루 낮, 하루 밤이면 족해.”
내리는 비는 오후를 꼬박 채우고도 밤까지 계속 내렸습니다. 오락가락, 안절부절 행여나 내리던 비가 멈출까봐 창가를 서성이며 안달을 떨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비는 계속 내리고, 바라보는 나는 가슴 두근대며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속 시원히 쏴아~~~ 뿌려주면 좀 좋을까 마는, 비는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내리니 속만 타 올랐습니다.
“조금만 더 비를 뿌리면 안 되겠니?”
“내일, 낮까지만 뿌려주면 더 바라지는 않을게.”
봄비야 워낙에 얌전하게 내리는 법인데 그게 영 불만이었습니다. 무심하게 내리는 비를 탓하면 안 되는데, 내 상황이 상황인 만 큼 간절하게 비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어제 체리를 아파트 옥상 화분에 심었기 때문입니다. 물을 많이 주어야 할지.... 물을 조금 주어야 할지..... 체리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으니, 아직 어린 녀석이니, 내리는 비야 체리에게 득이 될 거라는 생각에 하루만 비가 더 왔으면 하는 겁니다. 그러면 체리 싹이 무럭무럭 자랄 거라는 믿음 때문이지요. 내 생애 첫 소원이 이루어졌으니 요즘 걷는 걸음은 하늘을 납니다. 찬란한 봄날입니다.
첫댓글
축하 드립니다
6년 만에 이루신 결과물
파릇파릇한 예쁘게 자라고 있는 체리
무럭무럭 잘 자라서 꽃피고 열매 맺을 때 까지
날마다 향기로운 마음으로 건강 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잘 자라주면 좋은데
이 녀석들이 주인을 잘못 만나 몸살을 합니다.
물을 너무 자주 줬는지 곰팡이 병에 걸려
락스를 500배 희석해 주라길레
그리했더니 곰팡이병은 사라졌는데...
이번엔 락스 희석 배율이 잘못 되었는지
죽지 못 해 배실배실 크고 있답니다. 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