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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귀고리에 진노한 선조》
박물관에 전시된 금이나 옥으로 만든 귀고리를 보면서 그것이 남녀노소를 불문한 장신구였음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선조 때까지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귀고리를 착용하는 풍습이 있었음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선조는 남자들의 귀고리 풍습에 노하여 다음과 같은 전교를 내렸다.
"신체와 발부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니 감히 훼상(毁傷)하지 않는것이 孝의 시초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사내아이들이 귀를 뚫고 귀고리를 달아 중국사람에게 조소를 받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이후로는 오랑캐의 풍속을 일체 고치도록 中外에 효유하라. 서울은 이달을 기한으로 하되 혹 꺼리어 따르지 않는 자는 憲部가 엄하게 벌을 주도록 하라."
(선조 5년,1572년)
임금이 직접 이런 명령을 내린 것만 봐도 당시 남자즐의 귀고리 풍습이 적잖이 행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선조의 전교 이후 남자의 귀고리는 사라졌고 여자들도 귀를 뚫는 대신 거는 파란 귀고리를 만들어 사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선조가 귀고리를 오랑캐의 풍습이라고 말한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박물관에서 볼 수 있듯이 귀고리는 우리 민족이 아주 오래전부터 즐겨 사용해 온 장신구이기 때문이다.
또 귀고리는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라 부적의 역할도 했다.
귀고리가 가장 화려한 각광을 받은 것은 삼국시대이다.
당시의 무덤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귀고리가 출토되고 있고,국보로 지정된 것도 여러 개다.
귀고리의 재료는 금ㆍ은 ㆍ청동ㆍ금동 등 여러 가지였는데 가장 많이 쓰인 것은 역시 金으로,
금귀고리는 신라 귀족들의 사치품이었다.
감사합니다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