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님의 영화평을 읽으면서 "아하~!" 하고 공감하곤 하는데~
정말로 글을 잘쓰시는군요! (멋있어요~!!!!)
다음에도 재밌는글 기대할께요.
(--)(__)
:p
--------------------- [원본 메세지] ---------------------
[AI]는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처럼 3부로 구성된 영화입니다. 데이빗이 모니카의 가정에 입양(?)되고, 그러나 살아돌아온 진짜 아들 마틴의 존재로 인해 버려지는 1부는 현실을 다룹니다. 그에 비해 2부는 동화와 신화의 세계입니다. 피오키오와 오즈의 마법사를 뒤섞은 듯한 2부에서 데이빗은 자신이 진짜 인간이 되면 모니카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믿고 자신을 인간으로 만들어줄 푸른 요정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제 3부는 완전히 허구의 세계로, 2000년 후 인류가 멸종하고 로보트만이 살아남은 세상에서 되살아난 데이빗이 단 하루 복원된 모니카와 재회하는 이야기입니다.
가장 재밌고, 또 정서적인 울림을 가지는 것은 현실을 다룬 1부입니다. 1부에서 스필버그가 보여주는 연출의 힘은 정말 대단합니다. 데이빗은 [블레이드 러너]의 안드로이드와는 다릅니다. 데이빗은 인간과 구분할 수 없으리만치 인간과 똑같지도 않고, 또 자신이 인간이라고 믿고 있지도 않습니다. 식사도 할 수 없고, 어딘가 기계적인 미소를 지으며, 눈 한번 깜빡거리지 않는 데이빗이 사랑이 입력되자 모니카에게 보이는 집착은 정말이지 눈물 겹습니다. 스필버그는 냉정하고 사실적인 디테일들과, 모니카가 데이빗을 숲 속에 버리고 나오는 신파적인 장면들을 그대로 충돌시키면서 관객들의 마음을 손아귀에 쥐고 흔듭니다. (무서운 인간!)
하지만 데이빗의 사랑은 눈물겹도록 진실하지만 그러나 동시에 그 사랑은 그로테스크합니다.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슬프고 그로테스크합니다. 데이빗의 사랑은 입력된 것이고, 그래서 데이빗이 폐기처분되기 전에는 지워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건 인간의 사랑이 아닙니다. 인간이 그런 사랑을 할 수는 없죠. 그렇다고 데이빗의 사랑이 인간의 그것보다 더 진실한 것이다, 그렇게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프로그램화된 것이 아니니까요. 모니카가 데이빗을 버리지 않았다 해도 계속 사랑할 수는 있었을까요? 아프지도 않고, 반항도 하지 않고, 더우기 자라지도 않는 아이를? 모니카가 데이빗을 버리는 것은 전적으로 그녀가 이기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고유성을 다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데이빗의 사랑은 인조인간의 한계 내에서의 사랑이고, 따라서 데이빗의 비극은 존재 자체에서 오는 비극입니다.
자, 그럼 데이빗이 푸른 요정을 만나 진짜 인간이 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스필버그는 아주 은근한 방식으로 데이빗이 점점 더 진짜 인간이 되가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데이빗의 표정은 점점 더 인간의 그것처럼 되고, 감정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되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영화는 데이빗이 푸른 요정의 조각 앞에서 인간이 되게 해 달라고 비는 그 장면에서 끝나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그후에 붙은 3부는 어떻게 보면 감동적인 결말에 대한 궁여지책처럼 보여져서 차라리 3부는 없애는 게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필버그는 스탠리 큐브릭의 스크립대로 영화를 짝었다고 말하지만 과연 문제의 3부가 큐브릭의 구상 그대로인지, 아님 스필버그식 감상주의인지는 의문입니다.
데이빗을 연기한 할리 조엘 오스먼트의 연기는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훌륭합니다. 그 기계적인 미소와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 풀장에 빠져서도 동그랗게 뜬 눈동자에 어리는 당혹의 표정은 정말 으스스할 정도입니다. 할리 조엘 오스먼트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는데도 누구 하나 불만을 표시하기 어려울 거예요. 지골로 조를 연기한 주드 로도 좋았구요. 주드 로가 등장하는 부분이 이 영화에서 유머가는 넘치는 유일한 장면입니다.푸른 요정의 목소리는 메릴 스트립이, 만물박사의 목소리는 로빈 윌리암스가 맡았다는데 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나레이션의 목소리를 저는 안소니 홉킨스로 들었는데 알고봤더니 벤 킹슬리더군요. 아니, 그 째째하게 생긴 아저씨가 그렇게 목소리가 좋을 줄이야.
[AI]는 스탠리 큐브릭과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두 천재의 만남이라는 엄청한 후광을 입고 모습을 드러냈지만 예상만큼 흥행을 거두지는 못하는 모양입니다. 소화하기 쉬운 영화는 아니니까요. 하지만 전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그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릴 적에 동화를 읽을 때처럼 몹시 슬펐구요. 엄마를 찾아다니는 아이보다 더 슬픈 게 세상에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