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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무진장 - 행운의 집 원문보기 글쓴이: 유당
계와 율이 생긴 까닭은? / 종진스님 (해인총림 율주)
말 잘하는 비결
1. 가장 좋은 말을 하라 2. 진리에 맞는 말을 하라 3.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하지 말라 4. 진실을 말하라 <숫타니파타>
계를 지녀 신구의(身口意)를 깨끗이 하고
섭심하여 생각을 바로잡으며 다문하여 진실지를 나타내나니
계율은 이들의 바탕이 되네.
계율은 미묘법을 간직하는 곳
그대로가 출세간의 재보(財寶)가 되고 계율은 큰배를 타고 감과 같은 것
생사의 저 고해를 건네어 주네.
계율은 청량한 연못이 되어
모든중생 열뇌(熱惱)를 모두 식혀주고 계율은 두려움없는 이슬이되어
중생의 사독해(邪毒害)를 제거해 주네.
(범망경 보살계 ‘계율찬’ 中에서) 사회에서 법이라고 하면 딱딱하고, 몇몇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다루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불교 계율에도 역시
그런 식의 사고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계율은 그것을 지키고 공부하는 율사스님들만의 것인 양
생각하는 경향이 만연합니다. 오늘 법회의 결론을 미리 말한다면
부처님의 삶을 배우는 법회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계율은 부처님의 세계로 가는 가장 바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선 스님들이 지키는 소승계와
재가자들이 지키는 대승보살계가 그것입니다. 스님은 비구·비구니·식차마나니·사미·사미니계가 있습니다. 또 남자신도는 거사라 하고 여자신도는 보살이라 하는데 이런 분들이 지켜야하는 것은 재가율장입니다. 오늘 출가 5부중(비구 비구니 식차마나니 사미 사미니)과
재가대중들을 모여 법회를 열고 있는데 법문 중에 혹시 뜻하지 않는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계율을 설명할 때는 스님과 신도에게 할 수 있는 말이 구분되어 있어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계(戒)는, 중국 사람들이 글자를 만들 때 두 손으로 무기를 들고 경계를 선다는 의미를 가진 글자입니다. 그 뜻을 빌리자면 계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선한 행동, 좋은 습관,
좋은 성격, 도덕적 행위 등을 잘 익혀 경건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즉, 부처님의 삶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출ㆍ재가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윤리적 지침을 계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율(律)은 우리 세속의 법률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가령 교통법규를 어기면 그에 대한 벌을 받습니다. 출가자가 잘못을 저질러 벌을 줄때도 여러 가지
절차를 거쳐서 제재를 가합니다. 곧 잘못이 있을 때 벌을 받고 그 벌을 받은 다음, 다시 깨끗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 내용이 율이라고 이해를 하면 되겠습니다. 우리가 늘 하는 삼귀의(三歸依)도 역시 계율에 관한 겁니다. 흔히 깨달은 분을 ‘부처님’이라 하고, 부처님이 말씀하신
모든 내용을 ‘가르침’이라 합니다. 부처님이 성도하시고 아직 승단이 이루지 않았을 때는 ‘부처님’께 귀의하고 부처님 ‘가르침’에 귀의하라 해서
이귀의(二歸依)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승가가 이뤄지면서 불법승(佛法僧) 삼보에 귀의하라는
삼귀의가 시작됩니다. 이러한 삼귀의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킬 것을 맹세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계율이라고 봐야 합니다. 불자라면 누구나 5계를 받습니다. 우리는 주로
5계를 ‘~하지 마라’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마라,
주지 않은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마라, 거짓말 하지 말라, 행실을 바로 하라, 술을 먹지 말라’고 해석하는 데 사실은 ‘제거하라’ ‘떠나라’ ‘조심하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옳습니다. 도둑질 않고, 거짓말 않고, 헛생각 않고, 죽이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중생들이라면
누구나 지켜야할 인간의 윤리입니다.
그리고 ‘팔관재계(八關齋戒)’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은 만 하루 동안 8가지 계(첫째 살생하지 말라,
둘째 도둑질하지 말라, 셋째 음행하지 말라, 넷째 거짓말하지 말라, 다섯째 음주하지 말라, 여섯째 몸에 패물을 달거나 화장하지 말며 노래하고 춤추지 말라, 일곱째 높고 넓은 큰 평상에 앉지 말라,
여덟째 제때가 아니면 먹지 말라)를 받고 스님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는 겁니다.
요즘 오대산 월정사의 단기출가라는 프로그램이 있잖아요. 그것과 비슷한 거라 보시면 됩니다. 일반 신도가 이러한 계를 어긴다고 무슨 벌칙이 있는 건 아닙니다. 단지 부처님은 지계가 청정한 삶을 마음 깊이 새기도록
인과의 법칙을 강조하십니다. 따라서 악행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을
수없이 반복해 설명하십니다. 내가 저지른 잘못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 5계를 지킬 것을 약속한 경우에는 반드시 지키는 것이 바른 도리입니다. 수계식 때 받은 5가지만 제대로 지켜도 됩니다. 재가불자는 이것만 지켜도 어김없이 열반이라는 행복의 자리로 갈 수 있어요.
오늘 제가 꼭 당부 드리고 싶은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좋은 말만 하라. 둘째, 이치에 맞는 말을 하라. 셋째, 남을 상하게 하는 말 하지마라. 넷째, 늘 진실만을 말하라는 겁니다.
제가 1985년부터 율장을 공부했지만 어디서도 부처님이 중생들에게 모진 말씀하신 것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남을 해치고 가족과 주위를 상하게 하는 말은 하지 않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반드시 계율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계를 지킨다는 것을 지계(持戒)라 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계를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내 것’이라는 표현 참 좋아하지요.
아무리 계를 잘 알고, 설명을 잘해도 오래 익혀 몸에 배지 않으면 절대 내 것이 되지 않습니다. 속담에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죠? 계율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율은 행동입니다. 그래서 아는 것보다 실천이 중요합니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저는 늘 재가불자들에게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불자의 기본은 합장입니다.
합장을 단정하게 하고, 신을 반듯하게 바로 벗어놓으세요. 이 두 가지만 바로 해도 나머지 것은 차차로 갖춰집니다. 겉모습을 부처님 같이 하다보면 속도
나중에 부처님처럼 자비심으로 넘쳐날 거예요. 계율이라는 것은 우리가 부처님을 닮아가도록 도와주는 길잡이입니다. 부처님의 제자가 된 스님들에게 계율은 목숨처럼 중요합니다.
이생에서 부처님의 제자가 돼, 부처님을 만나 제자가 된
스님들은 매우 행복한 분들입니다. 그러나 재가자와는 달리
스님들이 지켜야 할 계율은 가지수도 많고 상당히 복잡합니다. 처음에 부처님이 승단을 이끌어 나가실 때는 무엇이든 좋은 일만 하라, 그리고 나쁜 일 절대 하지 말라고 가르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로만 승단의 문제가 해결되질 않았습니다.
율은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 한 지 12년이 지나 어떤 제자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이를 계기로 처음 제정됐습니다.
이때 부처님은 승단을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4가지 규율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기록을 찾아본 바에 의하면 이 무렵 부처님은 인도의 빔비사라
왕에게 나라의 중죄인을 다스리는 기준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평생 부처님을 떠받들었던 빔비사라 왕은 “다른 사람의 목숨을 해치고, 남의 물건을 도둑질 할 때, 남의 부인을 넘볼 때, 대중이나 국왕을
일부러 망령되게 속이고 거짓말을 할 때 사형을 시킨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부처님도 승단이 지켜야 할 4가지 계를 제정하십니다. 그 뒤로 승단의 질서와 스님의 위의에 관련된 수많은 계율이 생겨납니다. <사분율>에는 비구 250, 비구니 348가지의 계율이 나옵니다. 계율은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하나씩 추가하다보니
이렇게 많아진 겁니다.
그런데 계율을 제정하다보면 어떤 계율은 특수한 상황에서
지키기 어려운 경우도 생겨납니다. 오늘도 날씨가 몹시 덥지요.
원래 부처님은 한달에 목욕을 2번만 하라고 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처럼 무더운 여름날 이렇게 땀이 나는데
그 원칙을 지키기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비나 바람을 맞고, 땀을 많이 흘린 환자들처럼
특별한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계율은 전혀 융통성이 없이 제정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구 250, 비구니 348가지 계율은 비구와 비구니가 부처님 삶을 배워 깨달음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입니다. 스님들에게 계율은 의무이지 자율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구족계를 받는 순간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이 세상을
다할 때 까지 철저하게 계율을 지키겠습니다’라고 맹세하는 겁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계율과 선정과 지혜라고 합니다. 계정혜(戒定慧)는 부처님의 세계, 열반으로 가는 방법입니다. 방법을 배우고 그대로만 하면 틀림없이 부처의 세계,
열반의 세계로 간다는 겁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목마른 이는 물을 마셔야 갈증을 이길 수 있고, 무더움을 느끼는
이는 부채질을 해야 시원합니다. 결론은 실천이 따라야만 한다는 겁니다.
열반이 어떻다 뭐다 백날 떠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계와 율을 배워서 실천할 때라야만 좋은 결과가 있습니다. 아주 쉽게 정리하면 ‘집을 지을 때 터를 닦는 것’과 같습니다. 터를 잘 놓지 못하면 집은 오래 갈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정리=조용수 기자·사진=고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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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진스님은 일우 율사 계맥 이어 1940년 강원도 강릉 출생. 55년 동화사에서 석우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61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와 보살계를 수지했다. 63년 해인사 강원 대교과를 졸업하고 70년 지관 강백스님으로부터 강맥(講脈)을, 85년 일우 율사로부터 계맥(戒脈)을 이었다. 1970년부터 89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해인사강원 강주, 1985~98년 해인총림 율원장, 1999~2004년 파계사 영산율원 율주를 지냈다. 조계종 재심호계위원을 지냈고, 현재는 계단위원, 법계위원, 의제실무연구회 위원, 해인총림 율주를 맡고 있다. --------------------------
논찬 파계자들이 ‘개차법’ 악용해 변명삼아선 안돼 / 지현 스님(송광사 율원장) 지현 스님 : 오늘 법주인 종진 스님은 제가 출가하면서부터 늘 존경하던 스승으로
저를 가르쳐 주신 분입니다. 지금까지 저를 새롭게 하면서 유지시켜준 힘은
삼보님의 힘과 청정계율의 힘이었습니다. 계율의 힘은 욕심 많고 어리적은 제 자신의 중심을 잡아주는 방편입니다. 하지만 출·재가자의 구분이 옅어지고 비구·비구니 수행자들이 법 세우는 힘이 부족한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시점에 계율이 오늘날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지를 생각해봤습니다. 부처님이 인도에서 맨 처음 5비구를 제도한 것을 시작으로 불교가 인도 전역으로 퍼져 나갑니다. 이후 부처님 열반 500년이 지나 용수보살 등이 주창한 대승불교운동이 번성합니다.
그러나 불법이 가장 활발하게 꽃필 무렵 인도에서 불교는 사라집니다. 제 개인적으로, 대승불교운동이 승가와 재가의 구분을 무너뜨리고 인도에서 불교를 사라지게 한 원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대승보살운동의 핵심은 출ㆍ재가자를 가리지 않고 보리심의 발하는 정도에 따라 누구나 비구 비구니 보다 높은 지위의 보살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교단에서 승속의 구분이 약해지고, 계율조차 흐려졌습니다. 저는 이것이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지게 된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출가자은 재가자에게 법을 보시하고, 재가자는 승가에 물질을 공양하는 본질적 역할을 충실해야 합니다. 또한 재가자들이 출가자들의 삶에 너무 깊이 간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령 참여불교재가연대 같은 경우 절의 수입이 늘면서 생기는
부조리를 해결하기 위해 재가자들이 종단운영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건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스님의 부정적인 면을 언론이나 인터넷 등으로 공개적으로 공격하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불성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차별이 없습니다. 하지만 업성(業性), 수행력, 신분은 조금씩 다르고 그에 따라 역할도 다릅니다. 출가와 재가가 서로를 도우고 상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 계율대법회가 출·재가자가 공감할 수 있는 계율문제를
논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모쪼록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는 모임이 되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질문 : 계의 조목마다에 지범개차(持犯開遮)에 대한 정의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계율을 소홀히 하여 배우지 않은 탓에 계율을 어겨놓고서도 이를 변명의 구실로 삼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이에 대한 스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종진 스님 : 지(持)는 계율을 지킨다는 뜻이고, 범(犯)은 못 지킨다는 것인데, 반드시 지킬 수 없는 예외적인 상황에 이를 허용하는 것을 개(開)라 합니다. 그러다 상황이 개선되면 그것을 다시 막는 것을 차(遮)라 합니다. 예를 들면 부처님 당시 걸식하라는 계율이 있었지만 어느 해 극심한 기근이 들어 도저히 걸식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제자들이 손수 끓여 먹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풍년이 들어 형편이 나아지자 다시 제자들에게
걸식을 하도록 했습니다. 상황에 따라 계율을 지킬수 있도록 유연성을 인정한 것이지요. 그러나 오늘날 계를 지키지 못한 이들이 이 개차법을 악용해 변명의 구실로 삼는 경우가 있거든요. 이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부처님 제자라면 계와 율의 근본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율은 시대 변화에 맞게 바꿔야… “不可” / 이자랑(동국대 강사·인도철학) 이자랑 : 계와 율은 방비지악(防非止惡), 즉 잘못된 것을 막고 악을 멈춤으로써 올바른 행을 몸에 익히고 이를 기반으로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계율이란 자기 자신을 얽매기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심신이 더 이상 잘못된 길로 나아가지 않도록 잘 지켜 번뇌에 휘둘리지 않고 항상 두려움
없는 평온한 상태로 이끌어주는 동반자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부끄러움을 알고 자신을 단속하며 다른 생물에 대한 애정을 지니고
살아가게 하는 계율이라는 자발적인 힘은 분명 나라는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환경도 변화 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질문1 : 평소 율사스님들에게 계율을 지키는 것이 어떤 점이 좋은 지를
여쭙고 싶었습니다. 율을 지키는 것이 어떤 공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종진 스님 : 저는 출가한 뒤로 잠잘 때를 빼곤 거의 행건(行巾ㆍ무릎아래 단을 쳐서 묶는 천)을 차고 있습니다. 전혀 불편함을 못 느끼고 살지만 다른 이들은 불편한 모양입니다. 일찍 배워 익히면 나이 들어도 불편함을 못 느낍니다. 이처럼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려한다면 차차 익혀나감으로써 계와 율이 몸에 배여 자연스러워질 것입니다. 질문2 : 부처님은 잘못이 발생할 때 마다 그것을 규제하는 수범수제(隨犯隨制)를
원칙으로 율을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열반직전에 소소계(小小戒ㆍ중요하지 않는 작은 계율)는 버려도 좋다고
하신데서 보아도 율은 시대의 변화에 맞게 조정될 여지가 있다고 보는데요. 종진 스님 : 원칙적으로 수결(隨結ㆍ계율을 제정해 죄를 막는 것)과 수개(隨開ㆍ계율에 예외를 두어 완화하는 것)는 모두 부처님만 했습니다. 시대가 변했으니 여기저기서 율을 고치자는 말들을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경(經)에 대해서는 고치자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도 부처님 친설(親說)이 아닌 경들이 많지만 아무도
문제 삼지 않습니다. 그런데 계율에 대해서만 유독 시대가 바뀌었으니
고치자 하는데 저는 절대 동의하지 못합니다. 계율 때문에 수행에 방해가 된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이리 저리 고쳐서 근본 가르침을 훼손하다보면 원형은 사라지고 원칙도 없이 혼란만 가중될 수 있어요.
계율을 만들고 없애는 것은 부처님만이 할 수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보지요. 우리주변에 걸식하는 이가 있습니까? 부처님은 걸식하라 했지만 한국에서 걸식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걸식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지만 다 형편에 따라 맞춰 살고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계율 때문에 수행에 지장을 받는다는 생각은 맞지 않습니다. 계율을 지키지 못하는 자신을 탓해야지 부처님이 제정한 계율을
탓하는 것은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질문3 : 부처님은 재가불자들의 의견은 물론이고 때로는 외도들의 비판까지
감안해 계율을 제정했습니다. 이는 승단이 교단 내부는 물론 다른 종교와 일반사회로부터도 존경받는
공동체이기를 바라셨기 때문일 겁니다.
화합을 위해 승단이 재가신자들의 제언에 좀더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요? 종진 스님 : 부처님 당시에 비구 비구니에 대해 재가자가 여러 가지 충고를 하거나 조언,
때로는 비판을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부처님 당시 외부 사회의 건의에 따라 정해진 계율도 많아요. 그러나 그 당시 재가의 요구는 승단을 보호하고 불교를 지키려고 하는
의도였습니다. 재가신도가 요즘처럼 종단의 이러저런 사안에까지 간섭을
하겠다는 것은 곤란하다고 봅니다. 스님이 존재하지 않으면 불교도 없습니다. 재가신도들은 스님의 신분의 무엇이고 재가신도의 신분은 무엇인지
공부 해주시길 바랍니다.
첫댓글 _()_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_()_
잠시 머물면서 즐갑하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시고,행복하소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
고맙습니다_()_
나무아미타불 _()_
고맙습니다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성불하세요_()_.
고맙습니다_()_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_()_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