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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85. 코소보 페치(Pejë) 시내 투어 후 몬테네그로 베라네(Berane)로 (230815)
23.08.15.화요일
여행 85일 차 날이다.
1.
코소보의 국경마을 페치(Prjë)는 조용하고 아담했다. 도시 죄측 으로는 네무나국립공 원(Bjeshkët e Nemuna National Park) 의 산자락 끝에 위치하고 있어 청정해 보였 고 도심 한 편 으로는 맑은물이 흐르고 있어 마치 우이동 북한산자락에 와 있다는 착각 이 들기도 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여기 저기 강 안 조성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 강변 을 따라 유네스 코 문화유산인 수도원까지 걸어서 가기로 했다.
장을 봐 온 냉동생선으로 생선조림을 만들어 색다른 아침식사
산악지대 주변도시여서 인지
날씨가 쾌적했다
아침식사 후 도심관광과 걷기
도심의 천변을 따라 걷는다
코소보에서의 주요 관광지 홍보
이곳에서도 소박한 테레사 수녀상이 보였다
국립공원의 홍보판
2.
도심천을 죄로 두고 도시의 끝 쪽에서 유네스코 세겨문화유산 표지가 있는 수도원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 쪽에 출입관리를 하는 지 관리인이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패스포트를 보여달라기도 했다. 무슨 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외국인 관광 객들도 똑 같이 체크를 한 후 입장하고 있긴했다.
소박한 입구를 지나니 길게 나있는 진입로 가 나왔다. 진입로 좌측으로 수로를 만들어 깨끗한 물이 흐르는데 수로 바닥엔 흰색의 작은 자갈을 깔아 놓아 마치 어항속을 보는 듯 했다. 수도원의 규모도 아담하고 소박해 보였다. 검은제복의 수녀들이라 해야하는지 모르겠지만 수녀복을 입은 여수도사들이 정원 가꾸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소박한 모습의 수도원 정문
진입로가 수채화를 보듯 청아한 분위기였다
깨끗한 모래로 바닥을 깔아놓은 수로
계곡입구에 자리한 수도원
3.
수도원에 입장하기전 위키피디아에서 발췌 한 수도원 소개글을 보도록 하자.
<세르비아 정교회 수도원>
(Patriakana e Pejës/Monastery Serbian Orthodox Church)
코소보 페하시 인근에 위치한 세르비아 정교회 수도원 또는 페치 총대주교 수도원 은 13세기에 지어졌으며 세르비아 대주교 들의 거주지로 사용되었던 수도원이다. 14세기에 확장되었고, 1346년에 세르비아 페치 총대주교청이 설립되면서 세르비아 총대주교청의 소재지가 되었다. 수도원 단지는 여러 교회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세와 근대 초기에는 세르비아 대주교와 총대주교의 묘소로도 사용되었다.
세르비아 정교회의 다른 세 개의 기념물 들과 함께 2006년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 수도원은 라슈카 대주교와 프리즈렌 대주교에 의해 관리되지만, 페치 대주교가 직함을 가진 세르비아 총대주교의 직속이기 때문에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수도원 교회는 세르비아 중세 건축에서 독특하며, 3개의 교회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총 4개의 교회가 있다.
수도원 정문
안으로 들어가 우측에 보이는 탑
수도원 중앙부에는 유적들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수도원의 주 건물이 우측편으로 보인다
수도원 내부도 둘러보는데..
나중에 들어오신 수녀님이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한다
수도원의 안뜰
수도원 구경을 마치고 나오면서
아까지나온 수로길 의 풍경들이 아름다워 꽃길처럼 사진으로 꾸며보기도 했다
4.
코소보 페치(Pejë)에서의 오늘 일정은 오후 1시 30분 버스로 페치를 출발 몬테네그로 국경을 넘어 몬테네그로 수도인 포드고리차 (Podgoricha)로 간다는 계획이다. 오전시간의 수도원까지의 도보 관광을 마치고 11시경 숙소로 들어와 체크아웃 준비를 해 나왔다. 버스터미널이 가깝기는 했지만 무거운 배낭이나 캐리어를 끌고 가기에는 무리가 있어 차가 있는 주인아 저씨에게 부탁을 했다.
흔쾌하게 우릴 터미널까지 태워다 준 주인 아저씨에게 한사코 안받겠다는 돈 10 유로 를 건네주고 1시 반에 출발하기전 각자 점심을 먹도록 했다. 소고기를 직화로 구워낸 걸 빵에 싸주는 햄버거를 주문해 먹었다. 스테이크를 속 패치로 한 햄버거인 셈인데 고기량이 많기도 했고 식감도 좋아 만족스런 점심이 되었다.
I Love Peja 로고
우릴 터미널까지 실어다 준 주인아저씨 차량
주인아저씨와 셀카
페치의 소규모 버스터미널
장기간 함께 여행하고 있는 배낭들
터미널 가까이 있는 직화식 불고기 햄버거집
모양도 맛도 좋았던 불고기 햄버거
5.
버스가 출발하고 곧 코소보 국경통제소에 도착한다. 국경을 통과하는 일은 늘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기대이상으로 지체되는 국경 통과로 인해 결국 오늘의 숙박지를 급하게 변경해야 해야했다. 몬테네그로의 초입에 있는 베라네(Berane)로 급하게 숙소변경을 해야했다.
다행히 버스가 운행중인데도 북킹닷컴에 서의 숙소검색이 되었다. 산악지대를 관통하는 좁은 도로를 가아해 시간이 많이 지체뎐된 듯 했다.
포드고리차행 미니버스
코소보 국경통제소
다시 산길을 한 참 가서야 몬테네그로 국경 통제소가 나온다.
이지역의 고도계가 거의 2천미터급이다
몬테네그로 국경통제소
국경을 통과하는데만 1시간 반 정도가 소요된다
6.
몬테네그로 란 나리를 소개한다.
몬테네그로(Montenegro)
발칸반도의 남서부에 위치한 국가로서 1946년 구유고슬라비아연방을 구성하는 공화국이었다가 1992년 유고해체시 세르비아와 신유고연방을 결성하였고 다시 2006년 6월 5일 신유고연방으로부터 독립하였다.
몬테네그로 국기
발칸반도 남서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지중해 북부인 아드리아해 연안에 위치한 국가이다. 북쪽으로는 보스니아-헤르 체고비나, 동쪽으로는 세르비아와 코소보, 서쪽으로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아드리아해를 면하고 남쪽으로는 알바니아와 국경을 접한다. 수도는 포드고리차(Podgorica)이며, 행정구역은 21개 자치구(opstina)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큰 도시는 수도인 포드고리차이며, 그밖에 닉시치(Niksic), 플레블랴(Pljevlja), 비옐로폴레(Bijelo Polje), 체티네 (Cetinje), 바르(Bar) 등의 큰 도시가 있다.
몬테네그로(Montenegro)의 원어명은 ‘츠르나 고라(Crna gora)’로 ‘검은 산’을 뜻한다. 중세시대 베네치아 왕국의 지배를 받을 때 이를 베네치아어로 표현한 “monte negro”라는 국명을 주위 대부분 의 언어권에서 국가명으로 호칭하였다.
‘검은 산’이라고 불리게 된 데에는 디나르알프스산맥의 경사면에 가려 어두운 산지가 많기 때문이라는 설과 석회암이 노출된 몬테네그로 산맥의 로브첸(Lovcen) 산이 검게 보여 붙여졌다는 설 등이 전해 온다. 또한, 15세기 오토만 제국의 습격을 피해 체티네(Cetinje) 주변 산악지대로 피신해 온 츠르노예비치(Crnojevic) 왕조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1992년부터 몬테네그로와 신유고연방을 결성한 세르비아가 주변국의 내전에 개입 하고 코소보사태를 통해 인종청소 등의 문제를 일으키자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고 경제제재를 받으면서 같은 연방국인 몬테 네그로도 경제적 어려움이 심해졌고 이것이 신유고연방을 해체하고 독립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7.
결국 몬테네그로 수도인 포드고리차 까지 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국경을 넘어 첫 도시인 베라네(Berane)에서 내렸다. 도시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버스터미널에서 약 700m 떨어져 있는 도로변에 차를 세워줘 숙소까지는 한참을 걸어야 했다.
오늘 묵게될 몬테네그로의 첫 도시 베라네 대한 소개글이다.
베라네( Berane)
베라네는 몬테네그로 북동부 림강에 위치한 도시로 1949년부터 1992년까지 이반 밀루티노비치의 이름을 따서 이반그라드로 명명되었다. 인구는 시역 전체로 30,000 명에 육박하며 폴리믈제의 가장 큰 중심지 중 하나이다.
중세 시대에 베란 땅은 세르비아 국가와 그 통치자들에게 정치적,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했다. 1455년 터키인들이 도시를 점령할 때까지 부디믈랴는 중세 세르비아 내 라슈카의 더 넓은 역사적 지역의 일부였다. 제1차 세르비아 봉기 이후 마지막 해방까지 터키인들에 대한 전투는 끊이지 않았다. 1825년부터 1862년까지 가장 중요한 루데스 전투에서 몬테네그로 반군이 승리했다. 베란은 마침내 1912년에 해방되었다. 그 마을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모두 피해를 입은 나라와 운명을 함께 했다. 이방그라드는 유고슬라비아의 산업 중심지 중 하나로 번영과 인구 증가를 맞이하고 있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몬테네그로까지 미치지는 못했지만 산업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하면서 도시는 어려움을 겪었다. 오늘날 베란은 몬테네그로에서 가장 가난한 정착지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인구의 대부분이 어려운 환경에서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마을은 중요한 교육, 의료, 종교, 스포츠의 중심지로 남아 있으며, 이 범주에서 많은 성공적인 사람들을 배출했다.
2차 세계 대전 동안 파르티잔(공산주의자) 과 체트니크(왕당파와 민족주의자) 사이에 내전이 있었다. 1944년과 1945년 공산당의 보복으로 수천 명이 사망했다. 1949년 7월부터 1992년 3월까지 이반 밀루티노비치를 추모하는 의미로 이반그라드(Ivangrad)로 불렸으며 몬테네그로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 중심지 중 하나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 도시는 1980년대 말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경제적 붕괴로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 1992년에 원래의 이름이 복구되었지만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제재로 인해 도시의 경제는 회복되지 않았다.
몬테네그로 베라네 위치(빨간색 하트표시)
우측 별표는 페치 위치
베라네의 폐쇄된 터미널이다
터미널 앞에 있는 예약한 호텔
1박에 100 유로
호텔방
호텔 체크인을 한 후 동네 구경
대형 몰과 슈퍼마켓인데 한가하다
<여행 85일 차 일정 끝.>
첫댓글 수도원 담장이 높기도 하군요 수도원 안의 벽화들과 그림들이 화려함이 놀라워요
85일차 여행
잘 보았습니다
산중 지방같은 곳에도 수도원의
이곳 저곳이 볼만하리 만치 분포를
이루고 내부에 벽화까지 관광지 로서
면모가 화려 하군요.영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