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시기에 추수를 생각한다. 추수가 끝나면 동면의 시간을 갖는다.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기라도 하면 땅이 먼저 알고 새싹을 토해 낸다.
소멸과 생성의 기나긴 여정은 이렇게 오묘하다. 정과 반이 합을 이루고, 합은 다시 정과 반으로 나뉘어 역사는 무한히 반복되는 듯하다.
기독교의 역사를 들여다봐도 자연의 운행과 헤겔의 변증학적 역사관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질긴 생명은 죽은 듯하나 살아 있고, 왕성하게 살아 있는 듯하나 어느덧 소멸의 과정을 거친다.
현대는 기독교의 겨울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는 확신은 분명하지만 중세의 말기처럼 인기 있는 시대는 분명 아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무종교인은 무신론자들의 시대가 도래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본시 인간은 종교적 존재이지 않던가. 어거스틴의 고백처럼 인간은 '하나님께 돌아가기 전까지는 결코 쉼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지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발견 중의 하나가 종교였다. 무신론적 사고가 지배하는 시기는 곧 가장 종교적인 필요가 요구되는 시대임을 역설적(逆說的)으로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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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 없음> / 제임스 에머리 화이트 지음 / 김일우 옮김 / 베가북스 펴냄 / 356쪽 / 1만 3500원 |
이 책은 현대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종교인의 급격한 성장을 분석하고 대안을 찾아간다. 왜 현대인들은 교회는 떠나는 것일까? 알랭 드 보통은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에서 이렇게 말한다. "현대 사회의 여러 가지 상실들 중에서도 가장 통렬하게 느끼는 것은 바로 공동체 정신의 상실이다."
공동체를 교회로 치환시켜도 무방하다.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교회인 것이다.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이것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며 뉴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하면서 미미하게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 가던 한국교회는 급격하게 '쪼그라들고' 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그것이 궁금하다. 이제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저자인 제임스 에머리 화이트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메클런버그커뮤니티교회(메클런버그교회)를 개척하여 급속한 성장을 일구어 낸 목사이다. 메클런버그교회는 70% 이상 불신자 전도를 통해 성장했다. 순수한 복음과 전도로 미국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이루어 낸 교회로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미국 고든 콘웰 신학교의 4대 총장을 역임했고, 기독교 신학과 문화 및 변증학 교수직을 담당했다. 그는 이론가다. 또한 실천가다. 교회를 개척하고, 불신자 전도를 통해 교회를 성장시킨 이론과 실전에 능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종교 없음'에 체크하는 무신론자들, 또는 교회를 떠나는 '가나안 성도'들을 다시 교회로 돌아오게 하는 방법에 주목할 필요는 충분하다.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이 책의 중심 주제는 표지에 언급한 <타임>지의 기사 내용이다. '그들은 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고 교조적이고 융통성 없는 종교를 거부하는 것'이다. 부록까지 합하여 350쪽 분량이 그다지 두껍지 않은 책인데도 현대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과 장애들을 조목조목 진단하고,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 것인가를 처방한다.
크게 2부로 나누었다.
1부에서는 무종교인의 증가와 이유,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 그들의 특징들을 분석한다. 2부에서는 교회 안으로 눈을 돌린다. 스스로 교회를 개척하여 무종교인이라 자처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전도하며 교회 성장을 일구어 낸 목회자로서의 경험과 노하우를 알려 준다. 한국교회가 새겨들어야 할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들은 왜 '종교 없음'에 체크했을까? 미국은 기독교 국가라고 대부분의 미국인들도 생각했고, 다수의 타국인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2008년 실시된 설문 조사에서 놀라운 통계를 접하게 된다. 1990년 조사 때보다 무려 두 배 가까운 수가 '종교 없음'에 표시했다.
우리는 통념적으로 주일학교에 다닌 아이들은 장년이 되어서 다시 교회로 돌아온다는 종교적 회귀(回歸)를 기대한다. 한때 주일학교에 비전의 일부이기도 했던 이러한 생각은 이제 무용지물이 되었다. '청년 시절의 불신자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불신자'로 존재하고 있다(27쪽). 그렇다고 그들이 종교를 거부하거나 반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무관심(無關心)'할 뿐이다(28쪽). 이 외에도 여러 통계 자료를 근거로 하여 종교 없음에 체크하는 이들이 현저히 늘어나고 있음을 주목한다.
종교 없음에 체크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10가지의 보편적 특징을 집어낸다. '남성', '젊다', '백인', '반드시 무신론자가 아니다', '매우 종교적이지 않다', '민주당원', '낙태와 동성 간의 결혼을 합법화하는 것을 찬성한다', '진보주의자 혹은 온건파', '종교적인 기관들에 대해서 반드시 적대적이지 않다', '대다수가 서부인이다'. 미국인이라면 위의 열 가지 특징들을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그들은 대체로 젊고, 진보적이고, 서부인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것은 다문화적이고, 비앵글로색슨 쪽에 속한다. 그들은 비록 종교적이지는 않지만 '영적'이라는 점이다.
"보통의 무종교인에 대해 이해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들 대부분이 무신론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이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있으며, 대다수가 매일 기도를 하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를 영적이라고 생각하거나 적어도 영성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41쪽)
그들은 하나님을 싫어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기독교인이라고 정의하는 것과 교리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종교에 대한 이러한 거부감은 어디서 생겨나는 것일까?
저자는 3장에서 '변호사, 총, 그리도 돈'이라는 제목으로 그 이유를 진단한다. 그는 현대에 일어나는 세속주의 현상과 과학의 발견 등을 언급하면서 '퍼펙트 스톰'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영화로 제작되기도 한 이 용어는 1991년 10월에 일어났던 폭풍으로 세 개의 폭풍이 하나로 뭉쳐져 거대한 폭풍이 된 것이다. "신앙에 대한 근세의 공격을 말하자면, 대격변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그 하나는 코페르니쿠스와 다윈, 그리고 프로이트 사상들의 결합이었다."(53쪽)
그러나 정말 중요한 폭풍이 남아 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세속적인 붐'(57쪽)이다. 하버드대 로버트 퍼트넘 교수의 말을 빌려 와 정의하면 '사회적인 이슈들에 대해 좌파로 기우는 젊은이들과, 동일한 이슈들에 대해 우파로 기우는 가장 눈에 띄는 종교 지도자들, 이 양자들의 조합 때문'(60쪽)이다.
젊은이들의 눈에 비친 교회는 '법과 정치와 깊이 유착되어 있다는 인식과 더불어 증오에 찬데다 공격적이고 탐욕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61쪽). 결국 이러한 교회의 모순과 병폐는 젊은이들에게 '하나님은 예스, 교회는 노'가 되었다(68쪽).
우리나라도 세월호 사건 이후 보수와 진보의 극명한 대조와 대립 현상이 일어났다. 그 대립은 사회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동일한 양상을 띠었다. 한 교회 안에서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가 갈라졌고, 나이 든 사람들과 젊은 사람들이 등을 돌렸다. 기성세대가 볼 때 젊은이들은 다음 세대가 아닌 '다른 세대'였다. 청년들은 기성세대에 실망했고, 교회 안과 밖이 너무 다른 이중적 삶에 회의를 가졌다. 그들은 결국 교회에 '안 나가'는 '가나안' 성도가 되었고,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를 사탄의 무리로 치부하여 비판과 정죄를 일삼게 되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제 변해야 한다고 저자는 외친다. 단순한 베이비붐 세대처럼 추억을 찾아 교회를 찾는 이들의 시기를 지났다는 것이다. 더 이상 탕자들은 교회로 돌아오지 않는다(124쪽). 이젠 '개종에 의한 성장'을 추구할 때이며, 하나님에 대해 무관심하고 알지 못하는 불신자들에 대한 전도로 궤도를 바꾸어야 한다.
화려한 교회당을 건축하면 오리라고 꿈도 꾸지 마라. 이제 그들은 오지 않을 것이다(144쪽). 교회가 불신자들에게 적당히 잘해 주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면 교회로 발길을 할 것이라는 착각도 버려야 한다(147쪽). 이전 시대는 '부흥회', '가가호호 방문 전도', '주일학교', '교회 버스 운행' 등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시대는 갔다(150쪽). 필자의 교회는 가가호호 전도를 하지만 일 년 내내 결신자는 거의 없다. 저자는 안이한 교회의 전도 방식에 일침을 가하면서 이제 전도의 방법을 바꾸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지금이야말로 복음 전도를 다시 생각해야 할 시점이며, 복음 전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야 할 때다. 이제 복음 전도는 과정과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153쪽)
과정과 사건. 매우 의심장한 말이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교회가 과연 불신자들에게 친절한지를 살펴보라고 촉구한다. 오히려 교회는 '무종교인'들에 대해 적대적이고(155쪽), 심지어 불친절하며, 무종교인의 입장에 무관심하다(157쪽). 저자는 교회의 가장 큰 패러다임의 변화를 '대의명분'으로 정의한다. 교회만의 속 좁은 이기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걸맞은 사회를 세워 가는 것'(175쪽)이다.
한국교회가 위험하다. 골다공증에 걸린 노인처럼 휘청거리고 있다. 어쩌면 이대로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든다. 복음은 철저히 혁명적이다. 속수무책으로 몰락해 가는 현대 교회의 모습은 분명히 잘못되어 있다. 저자는 이러한 교회의 몰락이 교회가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선교적 관점으로 무종교인들을 바라보지 않고, 적대적인 교회 문화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위협으로 보고 있다. 또한 타 교회의 양떼를 탐하는 안이하고 비양심적인 전도 방식에 일갈(一喝)을 가한다.
그럼에도 교회는 존재해야하고, 교회에 대한 소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보수적 성경관을 견지하면서도 진보적 삶을 추구하는 저자의 전도관은 작금의 한국교회가 놓치고 있는 많은 것을 보여 준다.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온전한 복음을 전하고 싶은 목회자들과 신자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정현욱 / 로고스서원 연구원, 반석교회 부목사 |
첫댓글 무녀지고 또다시 세워야지요.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인류역사상 거듭난 크리스천들은 항상 소수였습니다.
요즘 교회와 관련된 제목의 글들이 자주 올려지는데 게시글을 올리시는 회원분들께서는 과연 교회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교회는 곧 그리스도를 말합니다(행 9:4~5). 그렇다면 그리스도(교회)가 사람에 의해 개혁과 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생각해 볼 때 결코 사람은 자신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개혁할 수도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이며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둣이 음부의 권세가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교회와 관련된 글을 올릴 때 우리는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교회도 내적으로는 이미 완전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어서 오십시요~사랑하는 가을애님~가을애님께서는 천하 누구보다 가을을 좋아하시는거라고 보면 맞나요? ‥하하 고맙습니다
지금은 겨울이라 가을이 오려면 한해 꼬박 기둘려야 할것 같습니다 ㅎㅎ
겨울이 깊어 가면 봄도 곧 오겠지요~ ^^
@가을애 저는 닉을 "겨울애"라고
할걸 그랬나?
교회 바로 세우기 위하여 수고들이 많습니다
불가견적 교회는 그리스도 자체시기에 개혁의 대상이 될수 없지만 보이는 교회당은 서로 고민하고 권면을 통하여 더 아름답게 단장될수 있으리라 봅니다
@땅끝으로 땅끝으로님은 교회를 그리스도자체인 불가현적 교회와 교회당으로 구분하시는건지 궁금 합니다.
@가을애 교회당에 모여 예배드리는 교회들을 말했는데 좀 표현이 덜되었으연 탁월한 해서을 적용하셔서 이해해 주시기를^^
주정기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불가견적 교회라함)영적인 교회는 결코 사람들에 의해 좌지 우지 되지 않기에 개혁의 대상도 또 타락되지도 않지요
덜된 사람들이 모이는 보이는 모임들이 문제여서 그렇지요
그래서 교회당 이라 한겁니다
@땅끝으로 에베소서에 있는데로 하나님의 교회는 잘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한번도 착오없이 하나님의 계획대로요
그 하나님의 계획이 보이는 세상에서 실현되는 과정이 우리눈에 보이는 여러 현상들이지요
원래 집짓는 재로들은 대패로 밀고 자르고 하여 완벽한 건축 재료가 되지요
어떤이들은 건축 재료가 아닌 다패밥이나 쓸모없어 잘려나가 버려지는 재료처럼 용도 폐기되는 이들도 있겠지요
그 용도 폐기되는 재료들을 두고 하나님의 집 자체인것처럼 보면 안되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저는 가볍게
"개독이라던가 병신도 먹사등등"
패러디하여
지칭하는건 그리스도인들이 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하나님이 심판대 앞에서 추궁하
@땅끝으로 실것 까지 염두에 두고 하신다면야 그들에게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자기 자유 이지요
@땅끝으로 맞습니다. 교회는 내자신이 교회고 내가가는곳이 교회당이지요
예수님은 나를 바로 세우기를 원한다고 봅니다.
교회 개혁하지만 나를 개혁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예수님같이 나를 만드는것이 교회 개혁이라고 저는 주장합니다
욕먹는 목사님이나 저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것을 매일매일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협력자 예 협력자님 반갑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관계된 일에는말이나 행동에 있어서 극히 신중하게 해야 하지요
우리가 다른 어떤 이들의 과오에 방방 뛸때도 있지만 그 뛰는 이 역시 주님 보시기에나 또 남이 볼때에
"거기서 거기네"
이렇게 보일 확률이 많지요
그렇기에 비록 타인의 문제일지라도 우리의 문제라는 공동체 의식 속에서 분노에 앞서서 아픔을 먼저 가지고 있어야 할것입니다
@땅끝으로 "불가견적 교회와 가견적 교회"
이것은 상식이지요
에베소서에는 교회를 지어져가는 한 채의 집으로 표현하고 있지요
사도시대부터 시작하여
아니 은밀히 따지면 아담때부터 그 집은 지어져오고 있었지요
그 집안에는 모든 시대의 기독교 흐름이 다 포함되어 있지요
그러나 이게 웬 일입니까 시대마다 교회 색깔이나 내용도 다르고 또 교단은 좀 많습니까
그래서 인간 역사에 등장하여 가지 가지 형태를 가진 교회는 가견적 교회라 그러고 그 모든 가견적 교회를 품고 아담때부터 지어져오기 시작하여 주님께서 재림하실때 완성될 교회는 영적인 교회
"즉 불가견적 교회"라 그럽니다
누구든 교회 개혁을 말하려면 그전에 반드시 알아
@땅끝으로 야 할 기본적 상식이지요
인간들의 역사에 등장한 기독교는 출발부터 마칠때까지 모순 덩어리 자체이지요
그러나 그 모순 덩어리를 합하여 지어져가는 하나님의 나라 혹은 진정한 교회는 시행착오도 없고 하나님이 창세전 세우신 계획대로 어김없이 완성되어 가지요
엡2:20~22
@땅끝으로 기본 상식도 없이 감히 교회 개혁을 꺼내는 제가 부끄럽습니다.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
@땅끝으로 어떤 분들은 교회 개혁을 한답시고 초대 교회로 돌아가자 하더군요
저는 이런 주장을
"교회 역주행"이라 합니다
교회는 과거를 향해 달리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하나님이 계획하신 미래의 완성"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이런일은 교회가 달려온 길을 알고 현재의 위치를 알며 미래에 다다을 곳이 어딘지를 아는 이라야 가능하지요
교회는 단지 착한일을 한다거나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것도 아닌 오직
교회만이 묵묵히 가야할 길이 있습니다.
@가을애 아닙니다 가을애님을 두고 한말이 아니고 저쪽 어디에서 교회 개혁을 빌미로 교회를 해체하려던 이들을 향해서 한 말이지요
이런 문제로 한참 불을 지폈으니까요
제 개인적으로 가을애님을 무척 좋아 합니당
너무 찐했나요ㅎㅎ
@땅끝으로 아닙니다~ 모르는것은 죄는 아니지만 부끄러운것이지요 ^^
@땅끝으로 초대교회로 돌아가든 구약시대로 돌아가든 다 좋은 애기지만 하나님의뜻 가운데 배울것은 배우고 버릴것은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욱 중요한것은 예수님이 무엇을 중히 여기고 가르쳤는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내가 먼저 예수님의 계명을 따라 살아간다면 교회 개혁은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덧글이 보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ㅡ
곧 그리스도이지요.
이 몸에 붙어 있으면?
가지(지체)가 줄기(몸)에 ㅡ
줄기가 그리스도의 머리(뿌리)에 ㅡ
붙어 있으면 시절을 좇아 절로 열매를 맺히우니 ㅡ사시사철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같아서 푸르리라. 이 원 뿌리에 있지못한 모든 나무는
버려지고 망하리라. 스스로 옳다하고 자족하나 망하리라. 로마 카돌릭에서 개혁되어 나온 개신교?란 이 제도권 종교들의 종말을 보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들의 아집적 육신적인 연을 본다.
이 회개는 사람의 능으로는 도리가 없고. 뿌린대로 거두게 두는 공의로운 것이다.
진정한 교회는 영원하리라.
증거하지 않아도 증거되리라!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