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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28일 기자가 만난 박양은 입학을 확정지은 뒤여서 그런지 의젓한 대학생 티가 났다. 먼저 ‘성공’ 비결을 묻자 박양은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며 다소 ‘준비된’ 답변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인터뷰 과정에서 성공 비결이 뛰어난 영어 실력에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박양이 예일대학에 제출한 입학지원서에는 토플성적 630점, SAT1 점수 1440점이었으며 특히 영문 자기 소개 에세이가 대학측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생이 되면 미국에 가서 공부하겠다는 꿈은 중학교 시절부터 품었습니다. 당시로서는 딱히 정해진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넓은 세상에 나가 많은 것을 공부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박양의 ‘당돌한 꿈’을 식구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싼 학비도 부담이지만 여자가 어딜 가느냐는 생각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박양은 포기하지 않고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신의 꿈을 조금씩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고등학교 2학년 때 꿈을 이룰 기회를 잡았다. 여름방학 때 경험삼아 한번 본 토플시험에서 600점을 넘는 뛰어난 점수를 받은 것이다. 박양의 아버지는 그제야 딸의 꿈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유학의 꿈이 영글어간 것은 그때부터다. 박양은 2학년 2학기 때까지 토플에 중점적으로 매달렸다. 학원에서 매일 토플 모의시험을 치렀다. 그는 “좋은 성적을 거둔 비법은 실전문제를 많이 풀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2학년 겨울방학 때부터는 미국의 수능시험이라고 할 수 있는 SAT를 준비했다. 학원을 다니면서 준비를 차분히 했고 개학한 뒤에는 1주일에 두번씩 학원에 다녔다. 고3때인 지난 6월과 11월 두 차례 서울 외국인 학교에서 SAT 시험을 치렀다.
대학 입시 정보는 미국에 있는 사촌들에게서 얻었다. 인터넷을 통해 각 대학교 홈페이지엘 들어가보거나 서점에서 구입한 외국 대학 유학 가이드도 도움이 되었단다. 예일대학을 목표로 삼은 데 대해 박양은 “아이비 리그의 명문 대학들 가운데서도 가장 진보적이면서 소수민족에 열린 태도를 보이는 대학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되어 있었다. 박양은 모든 걸 혼자 준비하다시피 했다. “우리 학교에는 미국 대학 입시 정보를 아는 선생님들이 안 계십니다. 또 대원외고처럼 해외 유학 준비반이 없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대원외고는 지난 98년부터 외국 대학 진학 희망생들로 구성한 해외 유학 준비반을 운영해 졸업생 9명을 졸업 후 곧바로 미국의 명문 대학에 진학시킨 바 있다.
“미국 대학 입학에선 내신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학과 공부와 미국 대학 진학 준비 모두 소홀히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하루 5시간 이상 자본 기억이 없습니다. 내신 스트레스도 큰 압박이었습니다. 혼자서 모든 걸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불안했고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회의가 들 때도 많았습니다.” 박양은 영어와 수학으로 이루어진 SAT1 외에도 아이비 리그에 속한 명문 대학들이 원하는 별도의 SAT2를 준비해야 했다. 세 과목을 선택하여 치르는 SAT2에서 박양은 작문, 수학2, 불어를 택했다.
박양은 25분에 네 단락 이상을 써야 하는 작문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꾸준히 타임지를 읽었다고 했다. 그리고 인상적인 구절은 카드를 만들어 들고 다니며 외웠다는 것이다. “타임지를 읽으면 자연스레 영어 스타일이 몸에 배이고 고급스러운 어휘를 익히는 데도 도움이 될 뿐더러 상식이 풍부해집니다.” 박양은 “에세이 시험에서 타임지에서 읽은 것을 응용해 썼다”며 “타임지 덕을 톡톡히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박양은 지난 10월 31일 예일대 특차 입학 시험에 입학 서류를 보냈다. 추천서 3장, 에세이 2장, 학교 성적표, SAT 성적과 토플성적표였다. 그로부터 두 달이 채 안된 지난 12월 15일 합격 여부를 알기 위해 미국에 전화를 걸었다. 합격이었다. 3일 후 박양의 집으로 합격증이 도착했다.
●발레, 스케이팅, 피아노 등 다양한 취미
영어 공부의 비결에 대해 박양은 “첫째도 어휘, 둘째도 어휘”라고 강조했다. “어휘는 SAT 시험의 80% 비중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매일 단어를 400개씩 외웠습니다. 어휘가 뒷받침 안되면 아예 문제 자체를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입학 심사에서 중요한 잣대가 되는 에세이도 결국은 ‘어휘’ 실력이 바탕이 되어야 잘 쓸 수 있다는 게 박양의 이야기다. 박양은 “합격을 결정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SAT의 에세이 점수와 입학 서류에 첨부한 에세이가 높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양은 에세이 쓰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A4 한 장의 짧은 분량에 자신의 모든 걸 담아야 하니까 더 어려웠습니다. 예일대는 특별한 에세이를 하나 더 원했습니다. 자신을 잘 표현하려고만 하지 말고 숨기고 싶거나 감추고 싶은 얘기를 솔직하게 써달라고 했습니다. 문제를 해석하는 데도 꽤 많은 시간이 걸린 까다로운 글쓰기였습니다.”
“에세이에 한국의 단조로운 고등학교 생활을 쓸 수는 없었다”는 박양은 고 3 여름방학 때 전남 광양에서 ‘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참가한 경험담을 썼다고 했다. “당시 3일 동안은 물도 안 나오는 가운데 ‘노가다’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벽돌을 나르면서 나름대로 무주택 서민을 위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뿌듯했습니다. 이런 체험을 바탕으로 에세이를 썼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내가 다른 이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 그럼으로써 내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주제였습니다.”
두번째 에세이 내용에 대해 박양은 “부끄럽다”며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 캐어 물으니 ‘최신 가요보다는 클래식 음악을 더 좋아한다.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려 가요에 흥미를 가져보려고 했는데 불편했다. 자연스러운 내 자신이 되는 게 더 낫겠다 싶었다. 누구에게는 즐거움이 누구에게는 지루함이 될 수도 있다’는 내용이란다. 자신의 소박한 일상을 솔직하게 썼던 셈이다.
박양은 영화와 문학작품을 통해 영어와 친숙해졌다고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여름방학 동안 원어민 교사들이 가르치는 사설학원의 인텐시브 코스에 다닌 덕을 봤습니다. AFKN을 많이 보고 영화는 되도록 자막 없이 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미국 시를 암송하면서 영어와 자연스레 친해졌습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감명 깊게 본 뒤로 영시의 매력에 빠졌다는 박양은 영시 사이트를 자주 들락거리기도 한다.
인텐시브 코스에 대해 물어보니 “오전 9시에서 오후 2시까지 한달 동안 매일 전과목으로 영어로 수업하는 것”이라며 “미국의 역사와 문학, 영작을 배우고 숙제도 영어로 하면서 영어 실력이 한 단계 높아졌다”고 한다.
박양은 “폭넓은 교양을 쌓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며 입학의 공을 어머니께 돌렸다. 박양은 어릴 때부터 발레, 피겨 스케이팅, 피아노 등을 배웠고 어머니와 공연도 함께 자주 보러다니면서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 것들을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담임 양덕모 교사는 “박양은 목표의식이 매우 뚜렷했으며 실천하려는 의지가 아주 강한 학생이었다. 학교 공부와 유학 준비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잘 해내 대견스럽다”고 말했다.
“앞으로 국제 관계학과 법학을 전공, 변호사가 돼 소수민족의 권익 보호에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는 박양은 2001년 4월에 있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할 기대에 부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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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awesome!
와 단어를 하루에 400개씩 외우셨다고 ㅠ ㅠ 저는 100개도 이렇게 허덕이는데 ㅋㅋ 정말 열심히 하셨겠어요 존경합니다 언니 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