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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인기도 대회에 의해 상승하고 하락한다. 한국 바둑이 ‘조치훈 9단의 일본 정상 정복’
‘조훈현 9단의 응씨배 우승’ ‘이창호 9단의 세계 정복’ 등에 의해 세 번 크게 점프했음을 모르는 바둑계 인사는 없다. 하지만 그 긴 시간 동안 바둑은 50여년 전의 도제제도 시절의 바둑대회 시스템에 안주하며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는 데 실패했고 그 결과 바둑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도 이젠 프로세계가 다 인정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이제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선 프로기사들 대부분이 동의하는 시점까지 왔다.
문제는 ‘어떻게 개혁하느냐’인데 여기서 다시 개혁은 큰 벽에 부닥치고 있다. 이때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복지’다. 개혁은 좋지만 복지 없이는 개혁도 없다는 인식이 앞을 가로막는다.
다시 대국료 얘기로 돌아가보자.
프로기사인 명지대학교 남치형 교수가(그는 원론적으로 개혁에 찬성하는 쪽이다) 어느날 상금제·오픈제 개혁에 관한 필자의 기사를 보고 문득 이렇게 물었다. “원칙적으로 옳은 얘기겠죠. 팬들도 동의하더군요. 그렇지만 바둑팬들이 예선 대국료의 실상을 알고서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나는 그 말의 숨은 뜻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 말은 “상금제 개혁이 결국 몇 푼 안 되는 예선 대국료를 없애 윗선, 즉 잘 나가는 기사들에게 얹어주자는 얘기에 다름 아니냐”고 묻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가난한 기사들의 돈을 떼어다가 윗선에 준다’
‘결국 개혁이란 아랫돌 빼서 윗돌 박기’
이같은 인식과 정서는 언제나 서글픔을 안겨준다. 이런 절박한 정서 앞에 다른 스포츠의 얘기를 하면 무엇 하나. 이런 정서를 지닌 프로기사에게 “내 말 좀 들어보소. 축구 리그의 기획자들이 능력이 떨어지는 프로 선수들의 복지 문제로 골몰한다면 축구 리그가 성립되겠소.” 라고 묻는다면 그는 무정한 인간이 될 뿐이다.
허나 괴롭더라도 대국료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혀보자. 예선 대국료는 기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평균 20만원쯤 된다. 년간 전 기사가 참가할 수 있는 예선은 현재 14개. 매 대회마다 첫판에 탈락한다면 연간 대국료 수입은 280만원이 된다. 이게 최저 수입이다. 한판을 이기고 탈락하면 560만원. 역시 법정 최저 수입에 밑돈다. 한데 이 돈을 빼앗아다가 윗선에 준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물론 프로기사들은 대국료 말고 다른 부수입으로 살아간다.)
지난 10년간 예선 대국료는 거의 오르지 않았다. 대회가 시작될 때마다 한국기원은 예선 대국료 인상을 놓고 씨름했지만 결국 스폰서들의 반대에 부닥쳐 전혀 오르지 않았다.(스폰서 들은 기업 홍보를 위해 기전을 후원한다) 이것 역시 비정한 횡포라는 게 만연한 정서의 하나다. 개혁이란 것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비인간적이고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들로 투영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차분히 생각해본다면 기전 개혁과 복지는 애당초 다른 레일 위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선 대국료를 10% 인상하거나 지금 식으로 방치한다고 해서 복지가 해결될 리는 만무하다. 예선 대국료는 오르지 않을 것이고 점점 더 사그라질 것이며 언젠가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로 전락할 것이다. 이런 추세를 막을 수 있느냐 하면 돌아오는 답변은 ‘없다’이다.
다시 정리하면 프로기전은 이미 복지의 기능을 상실했다. 복지와는 무관한 존재가 됐다.
따라서 대회를 통해 복지를 구현하려는 시도 자체가 허망한 노릇이 됐다. 따라서 프로기전은 팬들과 만나는 장소로써, 바둑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스타들의 화려한 플레이의 경합장으로 갈 수 있도록 놔주고 복지는 다른 방향에서 추구해야 옳다. 이게 대 전제가 되어야 한다.
개혁은 가난한 기사들의 대국료를 뺏어다가 윗선에 주자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바둑대회가 복지 실현의 장소가 아님을 분명히 인식해야만 공존의 길이 열린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그렇다면 복지는 어떻게 추구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복지란 다른 스포츠나 예능 분야는 걱정하지 않는 부문이지만 바둑은 그 생장 과정이 특별하기에 이 문제를 걱정해야 한다.
결론을 얘기한다면 복지는 ‘제도적으로’ 그리고 ‘행정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한국기원엔 3개의 조직(단체)가 있다. 하나는 한국기원의 의사 결정을 총괄하는 ‘이사회’고 다른 하나는 프로 기사들의 모임인 ‘프로기사회’다. 나머지 하나는 한국기원 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한국기원 사무국’이다. 복지는 이 세 조직이 머리를 짜내고 힘을 합하여 이룩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복지는 한국기원의 몫, 한국기원은 이제 甲에서 乙이 되어야한다
프로기사의 복지 문제는 그 논의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이미 현안으로 떠올라 있다. 많은 프로기사들이 이 문제를 주시하고 있다. 복지 문제를 바둑대회, 즉 프로기전을 통해 접근해서는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는 현실임은 이미 밝힌 바 있다.
따라서 한국기원의 세 단체는 이 문제를 덮어두지 말고 좀 더 분명하게, 정공법으로, 논의해야 마땅하다. 프로기사의 복지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어떻게 가난한 기사들에게 좀 더 나은 처지를 마련해 줄 수 있는가.
한국기원엔 ‘이사회’ ‘프로기사회’ ‘한국기원 사무국’ 세 조직이 있다. 이사회는 한국기원의 주요 의사결정을 주도하고 한국기원 사무총장을 임명하는 등 실제의 모든 인사권을 쥐고 있다. 이사회 안엔 좀 더 집중적인 ‘상임이사회’가 있어 실제로는 이곳에서 위의 일들이 이루어진다.
한데 상임이사회엔 프로기사들과 한국기원 사무총장(프로기사)이 속해있고, 이들 프로기사 들의 의견은 비중 있게 반영된다.
프로기사회는 명목상 친목단체지만 중요한 압력단체다. 개혁이든 기타 중요한 사안 들은 이곳에서 논의되고 투표를 통해 통과될 때에야 비로소 추진력을 갖는다.
한국기원 사무국은 집행기관이다. 이곳의 수장 역시 프로기사다. 이 모든 정황을 종합해볼 때 한국기원 전체는 프로기사 들의 요구와 입김이 곧바로 작용하는 기관임을 알 수 있다. 동시에 노장 프로기사 들이 간절히 원하는 ‘복지’라고 하는 까다로운 과제도 바로 이곳에서 논의되어야 함을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중요한 점은 기사들의 응집력이고 이해관계다. 프로기사들은 이떤 때는 뭉치고 어떤 때는 이해관계에 따라 갈라짐으로써 이 문제를 제대로 접근하는데 아직까지는 실패하고 있다. 그 바람에 바둑의 인기와 사활이 걸린 프로기전만 애꿎게(?) 붙들고 있는 것이다. 타깃이 잘못되었다는 얘기다.
프로기사 들은 “다 같은 프로기사끼리”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이 표현 속에는 동질성과 함께 말 못할 원망도 조금은 담겨있다. 과거 작고한 임선근 9단(사무총장 역임)은 이창호 9단과 조훈현 9단이 상금을 휩쓸어가는 것을 보며 “좀 나눠주지. 다 가져가서 뭐 할 겁니까.” 라며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눠주려면 고의로 지는 방법 외엔 없다. 그러니까 좀 지라는 얘기다.
물론 프로대회의 본질 상 나눌 수도 없고 일부러 질 수도 없다는 것을 그가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나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선 대국료를 없애고 상금제로 가는 대신 늘어난 상금에서 30-50%씩 듬뿍 떼어 다시 나누면 되는 것이다.
스폰서 입장은 64강 이상에게만 돈을 주니까 우승상금도 커지고 예산 편성도 쉽다. 기업 홍보도 지금보다는 효과를 보게 된다. 바둑계 역시 지금보다 대회가 경쟁이 치열해지고 재미있어져 인기를 높일 수 있다. 프로기사들 역시 수입이 줄어들지 않았으니까 굳이 대국료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 안에는 대부분 부정적이다. 우선 자존심이 상한다는 게 첫 번째 이유, 또 현실적으로 상금을 받은 프로기사들이 대폭 돈을 떼는데 반대하면 그만 아니냐는 게 반대의 주된 이유다.
그러나 프로기사들이 진실로 서로의 복지를 걱정한다면 그야말로 다 같은 프로기사끼리 못할 것도 없다. 프로기사회가 안을 통과시키고 프로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이사회가 이 문제를 제도적으로 못 박고 프로기사가 사무국장인 한국기원 사무국이 세부 시행 지침을 마련한다면 못할 이유도 없다.
어떤 프로기사는 돈 많은 이사장이나 독지가가 복지기금으로 듬뿍 돈을 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 법이다. 프로기사들이 연대감을 갖고 스스로를 구하려는 노력이 우선할 때 주위의 도움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일차적으로 이 안을 제안해본다.
두 번째는, 실은 이게 본론인데, 바로 나라에서도 흔히 얘기하는 일자리 창출이다. 스포츠 쪽에선 소수만이 프로선수로 뛰고 대부분의 선수들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수많은 학교나 도장, 사설기관 등에서 코치로 일한다. 아예 스포츠를 떠나 다른 분야로 전업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프로 무대의 실력에 맞춰 시장적 가치를 얻지 못하면 퇴출되거나 스스로 은퇴하기에 일단 현역 선수들 쪽에서 복지 문제를 거론할 리도 없다. 적당한 일자리들이 여기저기 있기에 각자 자기 역량에 맞춰 알아서 행동하면 된다.
바둑계의 경우 몇몇 은퇴한 케이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프로기사로써 활동할 능력이 없다고 보고 은퇴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개인 사정 때문이었고 일반적으로는 종신토록 은퇴하는 법이 없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복지 대책으로 퇴직금을 올리자는 얘기도 종종 거론되는데 이는 퇴직금을 올리면 자발적 은퇴기사가 많이 나올 것이란 데서 착안한 안이라고 본다. 일리 있는 제안이지만 이 안은 누군가 몫 돈을 내놔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실현성이 거의 없다. 또 프로기사들은 죽을 때까지 바둑판 앞에서 대국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정서가 강하기에 실제 효과도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가장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이 ‘대국’이 아닌 ‘일자리’다. 바둑이 스포츠를 표방하고 체육회 진입에 나선 것도 일자리 창출에 유리하다고 본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일자리는 있다. 그러나 지금의 일자리는 경쟁력에서 밀린 기사들에겐 하늘의 별따기다. 바둑 TV의 해설자든, 인터넷 해설자든, 도장의 사범이든 다들 인기 아니면 실력을 지닌 기사들을 원한다. 이 점에서도 일부 프로기사들은 많은 불만을 토로하는 현실이지만 동시에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현재 노장 프로기사들의 일자리는 프로기전 심판(입회인), 국제대회의 단장, 아마추어 대회 초청 기사, 개인 도장 운영 등으로 거의 한정되어 있다.
이걸 학교 코치나 강사, 기업 등으로 확산시키자는 의견이 끊임없이 제기되었지만 중요한 점은 실제적인 노력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있다 해도 보수가 작다.
벌써 3,4년 전인가.
필자는 개혁의 일환으로 ‘시니어 리그’ 창설을 열심히 주장한 적이 있다. 상금제나 오픈제 시행에 따른 박탈감을 최소화하려는 뜻이었다. 노장들도 바둑적 인생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봤기 때문이었다.
이때 바둑 TV가 중계하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한 이유는 노장들도 얼굴을 알려야만 다른 일자리가 생긴다는 생각에서였다. 노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한국에서 바둑은 노인들에게 매우 유익하고 접근성이 좋은 게임이다. 바둑이 이 부분을 공략해야 한다는 것은 명백하지만 그러나 노인들조차 아는 얼굴, 친근한 얼굴을 원할 것이기에 TV 중계 안을 주장했던 것이다.
또 작은 대회를 10개나 만드는 이유 역시 일자리와 관계있었다. 대회 수가 많으면 그만큼 심판도 많이 필요하고 시니어 대회인 만큼 시니어들이 스스로 TV에 나가 해설도 하고 진행도 할 수 있어 일자리가 그만큼 넓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사실 ‘일자리 창출’은 ‘바둑의 인기’와 밀접하게 묶여 있다. 박세리 선수로 인해 골프가 인기를 끌자 골프 쪽에선 세미프로든 레슨 프로든 나이 많은 프로든 프로 명함만 있으면 대부분 일자리를 얻었다.
이 점을 돌이켜보면 바둑 역시 인기가 높아져야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명백한 답안을 얻게 된다. 인기를 얻으려면 눈부신 스타 탄생이 더 빠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프로기전이 프로답게 개혁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 많은 프로들이 너무 막막하다고 생각한다. 개혁을 통해 설사 바둑계가 좋아진다 하더라도 모두 실력자들 차지이지 언제 내 차례까지 돌아올까 생각한다. 시간은 또 얼마나 걸릴 것이며... 맞는 얘기다 아무리 바둑계가 좋아진다 해도 결국은 실력자들 몫이 대부분인 게 프로사회의 법칙이니까. 그래서 개혁과 별도로 일자리 창출을 위한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 점에 대해선 이사회의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고 기본적인 운영 자금을 얻기 위해 정부와의 협의도 필요하다.
기획을 하고 적극적으로 발로 뛰어야 할 조직은 물론 한국기원 사무국이다. 일자리는 결국 바둑보급에서 찾아야하고 바둑보급은 국내도 있고 해외도 있다.
바둑보급을 위해 동(洞 )이든 구청이든 시(市 )든 정부든 군(軍 )이든 다방면으로 협조 방안을 협의하여 일차 일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프로에게 지급되는 돈은 일부는 수혜자 쪽에서, 일부는 한국기원이 내면 된다. 한국기원 이사회도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지고 그 계획이 바둑 발전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 지갑을 풀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해외 보급이나 학교, 노인들 문제에 대해서는 명분과 계획만 훌륭하면, 제대로 설득하면 정부도 지갑을 열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작업은 우선적으로 한국기원 이사회와 사무국, 프로기사회의 공감대 형성이 요구된다. 공감대가 형성되어 논의가 끝난다 하더라도 실제 추진엔 긴 시간의 끈질긴 노력과 노하우가 요구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지금까지는 ‘갑(甲)’의 위치에만 서있던 한국기원이 ‘을(乙)’의 입장에 서서 고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을’의 입장이란 괴롭고 힘들다. 계속 어딘가 가서 부탁해야 한다. 한데 그 힘든 일을 누가 할 것인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이런 노력들이 입으로만 가끔 언급될 뿐 실제 공식적으로 논의되지 않는 것도 그 추진이 너무 막막하고 힘들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기원은 갑(甲)의 위치를 벗어던지고 이제부터 을(乙)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팬에게는 물론이고 바둑관련 사업자나 기전 스폰서들에게 스스로 머리를 낮춰 을이 되어야 한다.
복지를 위해 프로기전의 뒷다리를 잡아서는 바둑의 미래는 없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것에 비해 프로기전을 붙드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이긴 해도 아무 실효성이 없이 세월만 가는 최악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프로기전은 최고의 실력자 들이 겨루는 화려한 경합장으로 내주고 문이란 문은 되도록 활짝 열어 팬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해줘야만 바둑의 인기를 되살릴 수 있다. 그리고 복지는 프로기사들이 영향력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는 프로기사회, 한국기원 이사회, 한국기원 사무국 등 세 조직을 통해 지금부터라도 당장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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