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철의 프레임] ‘의미 있는 성공’을 넘어 ‘의미의 성공’으로
출처 한국일보 : http://www.hankookilbo.com/v/c7302ae74a9a4855899f8b826cb1ea49
그 대담한 강연은 대공황이 일어나기 2년 전에 이루어졌다. 당시 영국 경제의 핵심 브레인이었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당시의 경제적 상황에 대하여 불안해하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자본주의의 미래에 관한 강연을 했다.
‘우리의 후손들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2년 후 출간된 이 강연에서, 케인스는 100년 후의 세상에 대해 두 개의 대담한 예언을 한다.
첫째, 우리의 경제적 수준은 최소 4배에서 8배 정도 성장할 것이며, 대부분의 경제적 필요가 해결될 것이다. 둘째, 따라서 노동시간은 하루 3시간 정도로 줄어들 것이고, 인간은 여가시간을 즐기는 좋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당대 최고의 경제 전문가답게 경제적 성장에 대한 그의 첫 번째 예측은 들어맞았다. 그의 예측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경제가 더 성장한 나라도 많다. 그러나 케인스가 생각한 100년 후인 2030년이 아직도 13년이나 남아 있지만, 그의 두 번째 예측이 들어맞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의 예측과는 달리, 우리는 여전히 하루의 3분의 1 이상을 일하는 데 쓰고 있으며, 앞으로도 크게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세상은 살기 위해 일하는 곳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 사는 세상으로 변했다. ‘죽고 나면 영원한 휴식이 있는데 지금 굳이 쉴 필요가 있는가’라는 승자의 미소를 주고받으며 사람들은 오늘도 일하기 위해 삶을 살아간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영화 제목을 비틀어본다면, 케인스가 살던 세상에서는 맞았을지 몰라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그의 생각은 완벽하게 틀렸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최후의 힘은 우리의 수고와 노동에서 발견해내는 ‘의미’이다. 우리의 모든 수고가 가족의 행복과 자녀의 성공을 위한 것이라는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노동은 시지프스의 형벌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는 의미에 결사적이다. 모두가 ‘의미 있는 성공’에 집착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이룬 성공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기를 갈망한다. 교육과 장학 사업은 자수성가한 사람들에게 늘 매력적인 법이다.
그러나 의미란 대개 어떤 일의 끝자락에서야 찾아온다. 욕망이 생물학적이라면, 의미는 문화적이다. 욕망이 현재적이라면, 의미는 회고적이다. 욕망이 즉각적이라면, 의미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긴 과정이다. 욕망과 달리 의미는 주로 시간의 마지막에 등장한다. 마치 책의 부록처럼. 죽기 직전에야 죄를 고백하고 예수를 따르기로 한 어느 강도의 경우처럼, 시간의 끝자락에서 발견되는 의미는 그 전까지의 쾌락과 욕망과 이기심을 용서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의미는 일하기 위해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히든카드이자 구원자인 셈이다.
성공의 끝자락에 부여하는 의미가 그간의 허물에 대하여 스스로 부여하는 심리적 면죄부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 의미 있는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 노력한 것인지, 자신이 이룬 성공을 의미 있게 만들려는 것인지 구분해봐야 한다. ‘굿라이프’(좋은 삶)는 의미 있는 성공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의미 있는 성공은 많을수록 좋다. 다만 의미 있는 성공에 앞서 ‘의미의 성공’을 가슴에 품고 살 것을 요구한다. 부의 성장이나 지위의 상승만이 아닌, 의미 자체의 성장, 의미 자체의 상승을 꾀해야 한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개같이 벌지 않는 삶의 가치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자기가 하는 일이 고작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래서 하루의 3분의 1을 보내는 일터에서 그 어떤 즐거움과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가 비록 자신의 직업에서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고 자신의 성공이 의미 있는 성공이었다고 자평하더라도, 그가 거둔 의미의 성공은 미미할지 모른다.
이런 생각에 대해 가진 자의 낭만적인 사치라고 냉소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자신을 단순히 환경미화원이 아니라 병원의 환자와 가족에게 위로와 행복을 주는 힐러(healer)라고 여겼던 어느 미화원의 경우처럼, 이런 생각이 직업의 종류와는 무관한 태도임을 연구는 잘 보여준다. 그 미화원이 비록 의미 있는 직업적 성공을 이루지는 못했다하더라도, 그는 의미의 성공을 크게 거둔 사람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우주와 자연과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라는 소명을 들은 사람, 글자 그대로 신의 음성, 타인의 음성, 우주의 음성을 들은 사람은,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감은 채로 오직 성공만을 위해 달리는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일 수 있다. 그들이 아무리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성공 추구를 의미 있는 성공이었다고 자평할지라도, 삶의 매 순간 의미의 성공을 꾀한 사람을 당할 수 없다.
올 한 해 의미 있는 성공의 잣대로만 우리를 볼 것이 아니다. 의미의 성공이라는 잣대로 우리를 살펴야 할 것이다. 우리 안에서 늘어나야 할 것은 수입과 집의 평수만이 아니라 의미의 크기이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부를 대물림하는 구조를 만들라
한 개인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부의 크기는 한계가 있다. 세계 각 나라들이 점차 긴밀한 관계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수록 개인의 한계는 더욱 커진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세계전체를 불황으로 몰아간다. 중국의 경기 악화가 한국경기에 즉각적인 영향을 준다. 어느 누구 한 사람만, 한 국가만 잘 산다는 식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부의 그릇’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 그릇은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부모와 선조로 부타 물려받은 인자, 보이지 않는 환경으로부터 총체적인 영향을 받아 만들어 진다. 따라서 부는 단지 한 사람에게 국한되어 있기보다는 가족, 사회, 국가 전체가 함께 엮여있는 복합적인 부분이다.
그래서 혼자 부유하기보다는 가족 전체가 부유했으면 좋겠고, 한 가족보다는 사회, 국가, 나아가 세계 전체가 부유한 구조로 바뀌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큰 틀이 풍요롭게 자리 잡으면 그 안에 있는 작은 개개인들도 자연스레 그 흐름을 따라가게 되어 있으니 말이다. 뿌리에 물을 주면 크고 작은 가지나 이파리들도 따라서 싱싱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가끔 해외에 나가면 선조들이 이미 닦아놓은 부의 구조 속에 후손들 또한 부를 누리며 살아가는 나라들을 보게 된다. 특히 유럽의 국가들이 그러하다. 몇 백 년 전의 건축물이나 예술작품들, 그리고 그 안에 녹아든 장인정신이 어떤 자연자원에 비할 수 없는 든든한 자산이 되어 이들 국가의 부를 유지하는 저변을 만들어주고 있다. 이를 물려받은 후손들은 선조들이 일구어놓은 부의 바탕 속에서 그것을 누리며 살아간다.
그 모습을 보며 드는 생각이 있다. 우리 또한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한민족 고유의 독창적인 문화와 아름다운 유산을 물려받은 후손이 아닌가. 그런데 왜 그것이 오늘날 그네들과 같은 부를 대물림하는 구조로 정착되지 못하였을까? 또한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과 정신을 더욱 큰 부를 일구고 후손에게 남기는 과정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을까?
우선 우리의 역사에 한 원인이 있다. 20세기 초, 열강들의 이권다툼 속에서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열강들의 수탈 형태로 강압적인 문물 개방이 이루어졌다. 외세에 의한 개방이기에 우리의 전통과 서구문물의 급격한 차이에 있어 완급을 조절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 또한 부족했다. 이 밖에도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고 전통문화를 탄압하고자 했던 일본의 정책으로 우리 민족 스스로 우리 것을 가벼이 보고, 구태의연한 인습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이다.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시절의 잔재가 보이지 않는 곳에 깊이 남아 있음을 본다. 자신의 뿌리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감사할 줄도 모르니 그러한 후손에게 선조의 유산이 제대로 전달될 리 만무하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뿌리를 바로보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감사를 바탕으로 제대로 된 부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후세에는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욱 크고 풍요로운 부의 그릇을 가진 아이들이 미래를 부유하고 행복하게 열어갈 것이다.
또한 소진되지 않는 부의 구조,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는 탄탄한 부의 그릇을 만들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부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부의 가장 큰 특성은 순환하는 가운데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부는 마치 전기처럼 끊임없이 돌고 도는 과정에서 그 에너지를 발산하다. 나는 그것을 잠시 빌려다 쓰고 있을 뿐이다. 부를 지속적으로 순환시키지 않는다면 그저 소진되고 만다. 일시적으로 왔다가 사라질 뿐이다.
그러니 지금 당신에게 머물러 있는 부를 다만 아주 조금씩이라도 순환하는 연습을 시작하라.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회를 위해, 나아가 사람들의 마음을 밝히는 일에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보라. 이때 가장 중요한 점은 자신의 행동을 남에게 과시하거나 드러내기보다는 묵묵히 소리 없이 부를 순환시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저 그렇게 세상과 나눌 수 있다는 자체에 감사한 마음으로 말이다. 그러면 부가 보이지 않게 순환하는 가운데 더 큰 부의 그릇을 만들 내면의 에너지가 축적된다. 그 에너지는 나에게만 머물러 있지 않고 자식에게, 후손에게 대물림된다. 태어나면서부터 그 부의 그릇을 갖고 태어난 아이는 소진되지 않는 부의 구조 속에서 더욱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 원리를 이해하면 빛viit이 왜 부의 힘인지, 빛viit과 함께하는 가운데 찾아드는 부가 단순한 우연이 아닌 필연적 인과관계에 바탕하고 있음을 알게된다. 또한 몇 차례 빛viit을 받아 일시적으로 에너지를 충전해 작은 결실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식 대가지 물려지는 부, 소진되지 않고 지속되는 부를 쌓을 수 있게 된다.
지금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풍요로운 시기에 있다면 훗날을 위해 묵묵히 부를 순환시켜두어야 한다. 또한 힘들고 어려운 시기라 하더라도 미래를 위해 더 넓은 마음으로 작은 부분부터 부를 순환시켜나가야 한다. 이것이 부를 오래도록 대물림하고 영원히 소진되지 않는 풍요의 구조를 만드는 방법이다.
출처 :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행복순환의 법칙 2017/01.01 초판 35쇄 P.74~77중
행복패턴 2
보통 남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성공과 출세 이룩한 업적에
뭔가 특별한 비결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룩한 삶의 방식은
매우 단순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비결을 찾기 위해 곁눈질을 할 때
성공을 이룬 사람들은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기본에 충실한 삶을
주도적으로 해나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정도 목표를 세우고
나름대로 기본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엇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절실함’입니다.
꼭, 반드시 목표를 이루어야겠다는
‘절실함’은 기본에
계속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추진력을 주고
그런 마음은 생활화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내가 목표한 대로 결국 된다’는
확신입니다.
출처 : 향기와 빛viit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P. 248
첫댓글 "의미 있는성공을넘어 ,의미의 성공으로" 의 논단글과 귀한 빛글 감사드립니다.
삶의 매 순간 의미의 성공을 꾀한 사람, 그 말이 깊이 다가옵니다. 오늘도 빛명상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부를 되물림하는 구조를 만들라, 행복패턴2 !! 를 빛명상세상돋보기에 올려 주시어 마음속에 담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절박하고 꼭 이루고야 하겠다는 굳은 신념이 성공을 앞당겨 줄수있겠군요 감사합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빛명상을 통해 부를 대물림 해줄수 있는 선조가 될수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빛의글 잘 보았습니다. 빛을 알고 관조할 수 있음이 감사합니다.
절실함 , 확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귀한 글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부를 대물림하는 구조를 만들라."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를 대물림하는 구조를 만들라>는 귀한 글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귀한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늘 언제나 잘보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의미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빛명상과 함께 하기에 참으로 감사한 마음입니다.
빛명상과 함께 더욱 행복한 삶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