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안니카 소렌스탐이 LPGA 투어의 파 기준 최저타(27언더파)를 친 문밸리 골프장은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 있다. 김세영이 27언더파를 친 와일드 파이어 골프장도 피닉스에 있다. 15분 거리다. 기록을 세운 날은 소렌스탐이 3월 18일, 김세영은 3월 20일이다. 김세영은 뭔가 있다. 종종 신들린 듯 경기를 한다. 홀인원, 이글 등 깜짝깜짝 놀랄만한 일들이 자주 나온다. 그 것도 매우 중요할 때 드라마틱하게 한다. 운동선수들은 종종 초인적인 퍼포먼스를 발휘하는 몰입경에 접어든다. 이런 무아지경은 평범한 선수에게는 몇 달에 한 번 올까 말까인데 김세영은 JTBC 파운더스컵이라는 한 대회에서 두 번이나 들어갔다. 그는 1라운드에서 당시 코스레코드 타이인 9언더파를 쳤고 이미향이 10언더파로 코스레코드를 갈아치우자 4라운드에서 다시 코스레코드 타이인 10언더파를 쳤다. 이 두 라운드가 안니카 소렌스탐이 기록한 LPGA 투어 파 기준 최저타인 27언더파에 도달할 주춧돌이 됐다. JTBC 파운더스컵에서 김세영의 아이언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린 적중률 68.1%로 60위에 그쳤다. 1위인 스테이시 루이스(91.7%)와 차이가 컸다. 드라이버는 좋았다.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는 290야드로 2위였다. 4라운드에서는 무려 313야드를 쳤다. 장타로 얻어낸 파 5홀에서의 성적(-13)이 우승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러나 기록 달성의 가장 큰 원동력은 퍼트로 봐야 한다. 김세영의 그린 적중시 퍼트 수는 1.53으로 1위였다. 2위 그룹은 1.57이었다. 적지 않은 차이다. 이 대회 장타 1위는 2부 투어에서 올라온 신인 모드-애미 르블랑이었다. 평균 294야드를 쳤다. 르블랑의 그린 적중률(75%)도 김세영 보다 높았다. 그러나 퍼트가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린 적중시 퍼트 수 1.83으로 김세영보다 0.3가 높다. 홀 당 0.3타씩이니까 두 선수 모두 그린 적중률이 100%라면 21.6타 차이다. 실제 두 선수의 퍼트 수 차이는 24였다. 두 선수의 타수 차(김세영 -27, 르블랑 -3)와 일치한다. 김세영은 최저타 타이기록을 썼는데 르블랑은 컷통과 선수 중 뒤에서 3등이었다. 김세영이 상금 22만5000달러를 받았는데 르블랑은 3015달러였다. 소렌스탐이 처음부터 완벽했던 건 아니다. 25세이던 1995년 첫 우승을 했고 이후 5년 동안 카리 웹, 박세리와 힘겨루기를 해야 했다. 소렌스탐은 지치지 않는 의지를 가진 두 경쟁자를 이길 열쇠는 퍼트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2000년 겨울 다른 연습은 하지 않고 그린에서 살았다. 하루에 몇 개의 퍼트를 했는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퍼트를 했다고 했다. 2001년 봄 여제가 됐다. 2001년 27언더파를 친 스탠다드 핑 레지스터 대회가 그 분수령이 된다. 소렌스탐은 2라운드에서 59타를 쳤다. 박세리와 카리 웹이 가지고 있던 LPGA 투어 한 라운드 최저타(61타) 기록을 2타 깼다. 또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60타의 벽을 깬 선수가 됐다. 다른 선수들이 못 가본 곳에 혼자 갔고 경쟁자들이 넘을 수 없는 벽을 쌓았다. 소렌스탐은 최종합계 27언더파로 LPGA 파 기준 최저타 기록도 썼다. 당시 박세리의 활약도 놀라웠다. 무려 25언더파를 쳤다. 그러나 두 타가 모자랐다. 박세리와 3위의 타수 차는 12타 차였다. 그만큼 소렌스탐과 박세리는 뛰어난 경기를 했다. 소렌스탐이 핑 레지스터에서 59타를 칠 때 퍼트가 위력을 발휘했다. 아이언으로 핀에 붙인 샷도 있고 그렇지 않은 샷도 있었지만 그의 파 퍼터는 1m가 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첫 번째 버디 퍼트가 거의 완벽했다. 소렌스탐은 버디 퍼트 18번 중 13번을 넣었다. 나머지 5번은 홀 바로 옆에 붙였다. 마지막 홀에서도 컵을 살짝 스쳤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58타를 칠 뻔했다. 김세영은 LPGA 투어에서 가장 화려한 선수다. 장타를 치는 김세영은 지난해 LPGA 투어에서 가장 많은 이글(14)을 잡았다. 버디와 이글을 합친 수(420)도 가장 많다. JTBC 파운더스컵에서도 이글 4개, 버디 23개를 잡았다.
장타는 커다란 자산이다. 그러나 장타를 활용한 이글은 고수익이지만 고위험 분야이기도 하다. 김세영이 지난 해 이글과 버디를 가장 많이 잡으면서도 평균타수 1위가 되지 못한 건 보기와 더블보기도 많아서다. 김세영은 “아마 내가 지난해 LPGA 투어에서 더블보기를 가장 많이 했을 것”이라고 했다.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퍼트다. 골프가 멀리 치거나(드라이버) 가까이 붙이는(아이언) 게 아니라 홀에 집어넣는(퍼트) 게임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LPGA 투어 빅 3였던 리디아 고-박인비-스테이시 루이스는 퍼트 실력이 1~3위였다. 김세영이 27언더파를 친 이번 대회에서 퍼트의 중요성이 다시 증명됐다. 김세영이 따르려 한다는 전설 소렌스탐이 간 길이기도 하다. 김세영은 최고로 올라가는데 가장 중요한 열쇠는 퍼트라는 것을 다시 실감했을 것이다.-성호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