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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적(詩畵的) 멋과 호국의 흔적이 남아있는 몰운대(沒雲臺) 트레킹 후기
2015. 2. 24 몰운대 위치도
육계도(陸繫島: landtied island)의 흔적이 있는 몰운도(몰운대)
오전 일정의 부산어린이대공원 성지곡수원지 수변공원 트레킹을 마치고 사하구 다대포구(多大浦口)에 위치한 <버드나무횟집>에서 회덧밥의 진수를 푸짐하게 먹었다. 곧 <다대포해수욕장>으로 이동하여 본격적인 몰운대(沒雲臺)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다대포구(多大浦口)에서 스냅핑
아릿따운 3총사 미녀
다대포구에서 몰운대를 바라본 모습 - 임부의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몰운대(沒雲臺) 의 이름은 해류의 영향으로 낙동강 하구에 짙은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이면 그 시야가 자주 가려지기 때문에 섬이 보이지 않고 구름 속에 빠진 섬이란 의미에서 몰운도(沒雲島) 즉 몰운대란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몰운대쪽에서 바라본 북쪽의 아파트 단지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27호로 지정된 몰운대는 태종대(太宗臺), 해운대(海運臺)와 더불어 부산의 3대(臺)로 불린다. 몰운대는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奇巖怪石)에 둘러싸인 가운데 해천만리(海天萬里)의 바다 경관(景觀)을 바라볼 수 있는 승경(勝景)의 곳이다. 한 때는 몰운대가 몰운도(沒雲島)였다고 한다. 몰운도는 육계도(陸繫島: landtied island)이다. 육계도는 섬과 육지 사이의 얕은 바다에 모래가 퇴적하여 사주(沙洲)를 만들어 연결된 섬 이다. 낙동강 상류로부터 유입된 토사의 퇴적(堆積)으로 육지와 연결되었으니 섬의 성격이 없어진 것이다. 조선 중종 때는 이미 육지와 이어져 있었을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다대포 해수욕장의 흰모래(사진이 희미하여 미안합니다)
다대포해수욕장의 산책로
그러나 낙동강 하구의 최남단으로 다대포 서남쪽 해발 78m의 이 몰운대는 1763년 일본통신사 조엄(趙曮)이 해사일기(海槎日記)에 해운대와 몰운대의 경치를 비교한 뒤 <몰운대>는 신라 이전에는 조그마한 섬으로 고요하고 조용한 가운데 아름다워 아리따운 여자가 꽃 속에서 치장을 한 것 같다」고 한 것으로 보아 몰운대의 경치가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몰운대 산책로 숲길을 걸으며
낙동강하구(洛東江河口)에 위치한 유난히 하얀 빛을 뽐내는 해수욕장을 뒤로하고 몰운대 숲속 산책길로 발길을 옮겼다. 수고(樹高)를 자랑하는 해송이 산책길을 빼고는 빽빽이 서있어서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걸어 올라오다 보니 자연석에 음각된 몰운대<沒雲臺> 시비(詩碑)가 몰운대의 아름다움을 함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몰운대의 해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해송군락사이를 거닐며...
낙동강 하구가 바다와 만나고 태백산맥(太白山脈)의 마지막 끝자락이 되는 이 몰운대는 경관이 아주 뛰어나 시인 묵객(墨客)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라고 한다. 멀리서 바라보는 그 아름다움을 그대로 노래한 동래부사 이춘원(李春元)의 시(詩)가 동래부지(東萊府誌)에 전하는데 몰운대를 노래한 "몰운대 詩碑"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몰운대의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있으며, 현대적 의미로 해석한 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동래부사 이춘원(李春元) 몰운대(沒雲臺) 시비(詩碑)
沒 雲 臺
東萊府使 李春元 浩蕩風濤千萬里(호탕풍도천만리) 白雲天半沒孤臺(백운천반몰고대) 扶桑曉日車輪赤(부상효일차륜적) 常見仙人賀鶴來(상견선인하학래)
호탕한 바람과 파도 천리요 만리로 이어졌는데 하늘가 몰운대는 흰구름에 묻혔네 새벽바다 돋는 해는 붉은 수레바퀴 언제나 학을 타고 신선이 온다.
몰운대 시비를 뒤로 하고 고개 마루에 올라오니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3호인 다대포객사(多大浦客舍)가 나온다. 이 객사는 조선후기 다대첨절제사영(多大僉節制使營)에 있었던 객사이다. 다대포는 예부터 왜구(倭寇)를 막기 위한 군사적 요충(要衝)으로 중시되었다. 임진왜란 이후에도 경상좌도 7진중의 하나가 되었는데, 부산진과 함께 다른 진보다 더 중시되어 2배의 병선(兵船)을 보유하였으며, 첨사(僉使)는 정3품의 당상관(堂上官) 이었다고 한다.
다대포객사(多大浦客舍) 1
다대포객사(多大浦客舍) 2
다대포객사(多大浦客舍) 안내판
객사는 조선시대 관아(官衙:예전에, 벼슬아치들이 모여 나랏일을 처리하던 곳) 건물의 하나로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임금을 상징하는 ‘殿’ 자를 새겨 각 고을의 객사(客舍)에 세운 나무패)를 보관하고, 고을의 수령이 초하루 보름에 대궐을 향하여 망배(望拜)를 드리던 곳인데, 사신의 숙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 객사는 정당(正堂)만 남아있고 건물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에 팔작(八作)지붕이다. 다대포객사는 언제 창건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1825년(순조 25년)에 중수(重修)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 부산유아교육진흥원(다대1동)내에 있었으나, 1970년 현재의 자리에 원형 그대로 이전 복원 하였다고 한다.
다대포객사(多大浦客舍) 3
임진왜란 때 수군 선봉으로 참전한 정운장군은 이순신 장군을 도와 몰운대 앞바다에서 왜적과 맞서 싸우다 순절(殉節)했다. 중장군(中軍將)의 직책을 맡았다가 해전에서 전사한 정운공(鄭運公)의 공적이 새겨진 전운공순의비(鄭運公殉義碑)가 이 몰운대에 있다. 이 비석은 1972년 부산시가 지방문화재기념물 제20호로 지정했다. 그러나 여기는 통제되어 가볼 수 없어서 발길을 돌렸다.
몰운도 유원지 안내도
언덕길을 따라 내려가니 전망대(展望臺)가 나온다. 오른쪽 해안 단애(斷崖) 밑에는 몽돌이 널려있는 <자갈마당>이 보이고 왼쪽 해안가에는 백사장이 아름다운 해안가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도 부산 갈맷길 <이기대>와 송도 <볼레길> 해안의 초소와 같이 철책으로 무장 공비의 침투를 막기 위해 설치해 놓았다. 우리의 현실을 뒤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역사적 흔적이다.
전망대 오른쪽의 자갈마당(자갈해안)
전망대 왼쪽의 사빈해안(모래해안)
이 전망대 바로 앞에 쥐섬과 동호섬이 보인다. 큰 섬인 쥐섬은 다대반도에서 남쪽의 근해에 위치하고 있는 바위섬으로 무인도이다. 쥐섬의 지명은 이곳에 쥐가 많이 서식한다는 설과 섬의 모습이 쥐를 닮았다고 하여 비롯된 것으로 전한다. 1950년대 지형도에 이 지명이 처음 수록되어 있다. 전망대 바로 앞에 왼쪽부터 쥐섬과 동호섬이 보인다
갯바위에서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
몰운대 최남단 해안가는 1983년 북한의 무장간첩선이 이곳으로 침투하다 괴멸(壞滅)되기도 하였다. 한 때는 몰운대 최남단은 군사보호지역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되었으나 지금 해지되어 출입을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해상사격장 안전수칙 안내문
전망대의 초소
경고문
몰운대는 왜구들이 자주 출몰하여 해상 노략질을 일삼던 곳이었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忠武公)이순신(李舜臣) 장군과 충장공(忠壯公) 정운(鄭運) 장군이 왜군을 크게 무찌르고 격퇴시킨 곳이다. 그리고 1983년 무장간첩선이 침투한 것을 괴멸시킨 곳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몰운대는 우리나라 안보의 최남단을 담당한 보루(堡壘)라고 할 수 있다.
왼쪽부터 동섬, 쥐섬, 동호섬
바다 가운대 서있는 빤간 등대
흰색 펜스같은 것이 있는 곳이 화물선의 물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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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사와 아름다운 풍경...
좋은 공부하고 우아한 몰운대 구경 잘 했습니다.
abnormal.!
내가 梁山에서 수 십년 살아
서 釜山지리는 좀 알고 있네.
사진 解說이 넘 맘에 들고.잠시지만,일행속에 내가있다
는 생각으로 사진을 살피기도 했어...!!
앞의 것에 이어서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김기현 사진전문 기자님! 정성드려 올린글 너무 늦게 본것 같네.
자세한 해설과 더불어 좋은답사기 잘 읽었네. 수고하셨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