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허리의 테네시 윌리엄스 원작 유춘식 번역 유준식 각색 연출의 서울 유리동물원
공연명 서울 유리동물원
공연단체 극단 허리
원작 테네시 윌리엄스
번역 유춘식
각색 연출 유준식
공연기간 2019년 12월 11일~19일
공연장소 창동극장
관람일시 12월 19일 오후 8시
창동극장에서 극단 허리의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 원작, 유춘식 번역 자문, 유준식 각색 연출의 <서울 유리동물원(The Glass Menagerie of Seoul)>을 관람했다.
최송림 극작가의 글을 소개하면, 의정부 연극의 터줏대감 극단 허리 유준식(58세) 대표는 외모부터 러시아나 남미의 혁명투사 내지는 게릴라 전사를 연상시키는데, 마치 조국에서 추방당해 혁명정부를 꿈꾸는 망명객처럼 열기가 뜨겁다. “집 팔아서 전세, 월세, 단칸방, 끝내는 극장 무대바닥에서 온 가족이 함께 자고 아침에 애들 학교 보낸 시절도 있었죠. 그런 성장환경에서 자식들이 뭘 배웠겠어요? 모태신앙처럼 모태연극에 지독한 친연극적이랄까요? 경제적으로는 바닥이었지만 그것을 연극적으로 풍요롭게 꽉 채운 부자가 우리 식구들이랍니다. 연극하게 된 게 얼마나 행운인지!” 그야말로 온 식구가 ‘종합예술’이라는 연극으로 똘똘 뭉친 종합예술 가족이다.
극작과 연출 및 배우인 본인은 물론이고 아내 이왕일은 분장과 기획을, 아들 희오는 작곡, 딸 희리는 연기자로서 앙상블을 보탠다. 남의 도움 없이도 멋진 아우라를 뽐내며 웬만한 작품 한편쯤은 언제든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실로 보기 드문 동지적 골수 연극가족이다. 희리의 경우는 2013년 전국연극제 경기도 대회에서 신인연기상으로 뽑힐 만큼 연기력이 빛나는데 연극협회회원이 아니라는 결격사유가 뒤늦게 밝혀져 상이 박탈당한 아픔도 살짝 맛봤다.
한국연극협회 의정부지부장인 아빠로서 딸을 경연대회에 참가시키며 그런 기본적인 자격문제조차 체크하지 못한 진짜 이유가 뭘까? 어쩌면 그의 본질은 제도권이나 규제를 아예 병적으로 무시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지 모른다. 유대표는 1990년 4월 의정부에서도 미군부대 맞은편에 극단 ‘휴서사(휴전선과 서울 사이)’를 창단한다.
그 후 극단 이름을 ‘허리’로 개명하고 전용 소극장까지 마련하여 질곡의 역사를 내달리며 25년이 넘는 사반세기의 연극지킴이로 우뚝 섰다. 그동안 소극장 문을 여닫은 것만 해도 일곱 번, 이제 7전8기의 창동극장에선 성공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임대료 때문에 쫓겨날 염려가 없기 때문이라며 크게 웃는다.
건물소유자인 (주)혜인식품 네네치킨 현철호 회장이 극장을 마련해준 후원자란다. “단원에겐 적은 금액이지만 월급제, 동인제로 극단운영을 하죠. 4대 보험도 들고… 젊은 단원들은 좀 배워서 눈이 트이면 지름길을 찾아 튀어버린다는 걸 잘 알아요. 그래도 걸음마부터 싹수를 살려내 키워서 세상에 내보낸다는 보람이 큽니다.” 필자로선 몇 년 전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의 <콜라병> 공연 때 작가와 연출로 만난 인연으로 감히 미루어 짐작컨대 그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봤다.
한때는 서울 대학로에 진출하여 온갖 연극적 실험도 마다하지 않던 그지만 이제 가족문화 부활의 중심을 외치며 가족극전용 창동극장 개관 기념작 <도깨비와 황소탈>의 오픈 런에 열정을 쏟아 붓는다. “우리 극단 이름 허리는 우리나라의 허리라는 뜻과 우리 삶의 허리라는 의미를 동시에 지닙니다. 지금도 극단의 소재지는 분명 의정부시 특설야외무대 1층입니다. 저는 뼛속까지 의정부 연극인입니다.” 그의 마지막 말의 함의가 의미심장한 것만큼 옛 땅을 수복하듯 고향 의정부에서 소극장 허리의 깃발을 다시 휘날릴 그날도 머지않을 듯싶다.
창단공연 <국물 있사옵니다>에서 최근의 <조통냉면>이나 <거위의 꿈>까지 그가 무대에 올린 그 수많은 작업을 통해 본 유대표의 연극인생은 한마디로 비움과 채움의 수레바퀴가 아닌가 싶은 생각을 못내 뿌리칠 수 없다. (극작가 최송림)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 1911~1983)는 자신이 소속한 MGM사에 <유리동물원(The Glass Menagerie)>을 제출하기 전에 유리동물원의 여러 가지 초안을 썼다. <유리동물원>은 윌리엄스의 단편소설이다. 처음에는 “The Gentleman Caller”라는 이름의 희곡으로 발표되었다.
<유리동물원>은 1944년 시카고에서 초연되었다. 시카고의 연극평론가 Ashton Stevens와 Claudia Cassidy의 호평으로 브로드웨이 무대에서도 공연되었고 1945년에는 New York Drama Critics Circle Award를 수상했다. <유리동물원>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첫 번째의 성공적인 작품이었고, 향후 미국에서 손꼽히는 극작가가 되었다.
<유리동물원>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1948년 단편소설 “Portrait of a Girl in Glass”가 원작이다. 이 소설의 해설자는 <유리동물원>의 해설자인 Tom Wingfield이고, <유리동물원>의 독백들도 이 소설에 있다.
연극평론가들은 <유리동물원(The Glass Menagerie)>을 윌리엄스의 자전적 연극이라고 평한다. 윌리엄스의 가족 역시 연극의 배경인 남부의 세인트루이스에서 살았다. 윌리엄스 자신도 톰처럼 낮에는 구두공장에서 일하고, 밤에 집필에 몰두했다. 윌리엄스의 누나는 정신 분열증을 앓았고, 그녀의 모습이 <유리동물원> 속 로라 역으로 설정되었는데, 누나를 안타깝게 여기고 그리워했던 윌리엄스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라 하겠다.
테네시 윌러엄스의 초기 작품에 속하는 <유리 동물원>은 발표직후, 미국을 떠나 전 세계 연극인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윌리엄스의 출세작인 <유리 동물원>은 그 나름의 독특한 내적 미를 지니고 있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슬픈 이야기다. 우리들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슬픔이 아니라 마치 봄비가 꽃잎을 살포시 적시듯이 가슴에 스며드는 아련한 슬픔의 이야기이다. 사실 환상이란 얇은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허상 같은 것이다. 한 아름의 환상을 잡으려고 허우적대는 운명이 <유리 동물원>의 로라 역이고, 톰이고 아만다 역이다.
로라는 자신이 가진 신체적 장애 때문에 현실을 회피한 채 아름답지만 금방이라도 깨질 듯 한 유리동물에 집착하며 그 안에 살기 바란다. 다른 등장인물인 그녀의 오빠, 톰은 자신을 짓누르는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모험을 떠나고 싶어 한다. 로라와 톰은 현실에서 벗어나 현실 저편의 이상향을 꿈꾼다. 이에 반해 어머니인 아만다는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그 속에서 어떻게 해서든 적응해 나가려고 몸부림친다. 로라를 괜찮은 남자에게 시집보내려고 위해 심신을 쏟고, 매일 밤 영화관을 들락거리는 톰을 붙들기 위해 톰에게 잔소리를 퍼붓는다. 한 가정, 한집안에 살고 있는 세 인물이지만 서로가 너무도 다른 것들을 꿈꾸기에 그들의 욕망은 깨진 유리동물의 파편처럼 되어 서로 충돌한다.
아름답지만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한 장식장 속 유리동물들은 환상 속에 존재하는 그들의 욕망이자 그들 자신의 모습이다.
<유리동물원>은 극의 대부분을 허름한 가정집을 배경으로 로라, 톰, 아만다가 살고 있고 그리고 짐이 이 집을 찾아온다. 하지만 이 극이 주는 주제와 의미는 단순히 어느 한 가정, 한 인물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과 허상을 보여준다.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톰,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고자하는 로라, 현실에서 어떻게 해서든 극복하고, 남들처럼 잘살고 싶은 아만다 역시 결국 우리 안의 내제된 욕망의 표출이며 우리 자신의 모습인 것이다.
무대는 배경 앞에 한자 높이의 단을 무대 좌우로 연결시켜 식탁과 의자를 배치했다. 단 아래 긴 소파를 배치하고 객석 가까이 탁자위에 유리로 만든 인형들을 올려놓았다. 상수 쪽에는 낮은 탁자에 유성기를 올려놓았다. 상수 쪽 천정아래 아버지 사진을 달아놓았다. 소파에는 전화기를 올려놓았다. 무대 주변은 골목길로 설정되고 상수 쪽 객석 가까이에 난간이 있다.
연극의 배경은 서울 성동구의 한 허름한 집이다. 시를 쓰는 중년의 작가가 15년 전에 가족이 살던 성수동의 한 폐가를 찾아오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옛집 앞에 서서 집과 주위를 둘러보며 회상에 잠기듯 해설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청년시절 구두공장에서 일을 하던 작가 자신, 남편과 헤어져 사는 어머니, 늑막염을 앓다가 다리를 절게 된 누나, 누나는 유리로 만든 인형을 모으며 시집을 갈 나이인데도 결혼을 할 생각도 못 하고 살고 있다. 작가는 짬만 나면 영화관에만 들락거리던 자신의 청년시절이 소개가 된다. 지체 장애로 인해 학교도 졸업을 못하고 취직은 물론 연애상대조차 없이 유리동물에게만 매달려 있는 딸을 대하는 어머니의 안타까운 모습이 펼쳐지고, 딸에게 짝을 지워주려는 어머니의 애타는 심정과 지극정성이 극에 절실하게 묘사된다, 그리고 아들에게 누나에게 소개시킬 괜찮은 남자친구를 집으로 데려오도록 당부를 한다. 하도 조르는 어머니의 말에 아들은 훤칠한 키에 노래를 잘 부르는 구두공장의 동료이자 성동고등학교 선배를 데리고 온다. 그런데 원래 누나와 선배는 같은 반 학생이었고, 잘 생긴 모습에 노래까지 잘 하는 동급생에게 누나는 연모의 정을 품을 적이 있었기에 선배의 방문으로 누나는 충격을 받는다. 두 사람을 가까이 하도록 하려고, 어머니와 아들이 자리를 피하자 마침 정전이 되니, 촛불을 켠 누나와 동급생은 상대에게 다가가 학창시절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노래 이야기 그리고 누나가 동급생을 연모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두 사람은 키스까지 하게 된다. 어머니는 두 사람 사이가 진척된 것으로 판단하고 쥬스를 들고 등장한다. 그러나 손님인 청년은 약속시간이 되었다며 6월에 결혼을 할 상대가 지금 기다리고 있다며 떠나간다. 누나의 절망과 어머니의 분노, 그리고 곧 결혼할 남자를 집으로 데려온 아들을 꾸짖기 시작한다. 이 일로 해서 아들은 영영 집을 떠나게 된다. 대단원은 다시 이 집 문밖 골목길 난간에 서서 아들이 해설을 마무리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이경민이 아들로 출연해 성격창출은 물론 호연으로 연극을 이끌어 간다. 곽수정이 어머니로 출연해 원작의 어머니 역을 100% 살리는 호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허윤지가 누나로 출연해 절룩이는 동작을 해가며 호연을 펼친다, 김태웅이 손님 청년으로 출연해 잘생긴 모습에 호연과 노래로 여성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조명디자인 김명남, 작곡 음악 유희오, 분장디자인 김민지, 조연출 유희리, 기획 박정근, 프로듀서 이왕일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극단 허리의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 원작, 유춘식 번역 자문, 유준식 각색 연출의 <서울 유리동물원(The Glass Menagerie of Seoul)>을 원작을 뛰어넘는 걸작 변형연극으로 탄생시켰다.
12월 18일 박정기(朴精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