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4) 이사야는 2장 2절에서 종말에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성전으로 모여들 것을 예언하였고, 2장 3절에서는 수많은 백성들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임을 예언하였다.
이제 2장 4절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그날에 주님의 판결로 인해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질 것을 예언하고 있다.
즉 주님께서 모든 민족을 당신의 말씀으로 통치하시는 메시야 왕국이 도래하면 온 세상에 평화가 깃들 것이라는 희망에 찬 예언이 제시된다.
여기서 평화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으로 말미암아 믿는 이들의 마음 속에서 이루어지는 평화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전에는 원죄와 완고한 불신앙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원수가 되었던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으로 하느님의 옥좌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그 옥좌에 나아갈 수 있는 은총을 얻게 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과거 원수되었던 하느님과 화해하여 그분에게서 내려오는 평화를 나누어 갖게 된 것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둘째 이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이루어질 평화로 볼 수 있다. 전쟁의 무기를 모두 농기구로 바꾸어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 않는다는 예언이 바로 메시야 시대에 이루어질 완전한 평화를 예언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해석을 하더라도 이것은 장차 메시야에 의하여 이루어질 평화시대를 나타내는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육화)으로 이 땅에 시작된 메시야의 통치를 나타내며,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성취될 메시야의 통치로 인한 완전한 평화의 시대를 내다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와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는 같은 뜻의 대구 구조를 이루는 문장이다. 앞의 것은 민족(나라)들 사이의 분쟁 해결의 측면을 강조하고, 뒤의 것은 잘못을 어긴 자들, 각 개인을 바로 잡는 교정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재판관이 되시고'에 해당하는 '웨샤파트'(weshapat)나 '심판관이 되시리라'에 해당하는 '웨호키아흐'(wehokiah)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주권자이신 하느님의 주권과 통치 행위를 받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이 구절에서 주님의 통치로 이루어지는 평화의 나라는 전쟁이 전혀 없는 완벽한 평화를 구가하는 상태에 놓여 있음을 보여 준다.
칼과 창은 전쟁때에 필요한 무기이지만, 보습과 낫은 전쟁이 없는 평화 시기에 필요한 농기구이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참전한 자들이 평화로운 때에는 삶의 터전으로 돌아와 농사일을 하고, 또 농사일을 하다가도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전쟁터로 나가곤 하였다.
따라서 농기구를 잡은 손이 무기를 잡게 되고, 또 무기를 잡은 손이 농기구를 잡게 되는 일이 흔히 있었다.
이사야 예언자 역시 미래의 일이지만, 당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 시대의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미래의 평화 시대를 예언했을 것이다.
'보습'(plowshare)은 쟁기의 술바닥에 맞춰 끼우는 삽처럼 생긴 쇠조각을 말하며, 씨를 뿌리기 위하여 밭을 갈 때 사용하는 농기구이다. 그리고 '낫'(pruninghook)은 곡식을 추수할 때 이삭을 자르는 도구이다.
이사야 예언자는 전쟁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칼과 창을 파종과 추수때 사용하는 농기구로 만들 것임을 지적하여, 더 이상 살상무기가 필요없는 그야말로 완전한 평화 시대가 장차 도래할 것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이 문장 바로 앞에 나오는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와 마찬가지로 본문은 절대적 부정의 의미를 강조할 때 사용하는 부정어 '로'(lo)가 이끄는 문장이다.
이사야 예언자는 같은 뜻의 대구를 이루는 강한 부정문을 반복 사용하여 두 번 다시 전쟁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민족들 사이의 전쟁이 그칠 것이며 완전한 평화가 도래할 것이라는 이 예언은 그리스도 재림의 때가 가까워질수록,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 사이에 전쟁이 자주 발발할 것이라는 그리스도의 예언 (마태24,7)과는 정반대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이런 사실로 볼 때 여기서 말하는 평화는 모든 분쟁과 싸움, 다툼이 종식되는 완전한 평화, 곧 그리스도 재림 후에 이루어질 평화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피앗사랑 rigel 글 참조> |
첫댓글 평화를 빕니다.
평화를 주소서.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