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산 노래, <저 높은 산>
산의 감상을 말로 엮고 음을 더해 만든 산 노래는 산에 대한 우리의 느낌을 더 강렬하고 정확하게 표현한다. 돈, 명예와 같은 욕망으로부터 자유, 산과 사람 사이의 사랑과 이별, 더 높은 산을 향한 도전의식, 함께 하고자 하는 공동체의 바람이 산 노래에 담겨 있다. 전두성은 산 노래를 “우리의 전통, 관습, 도전, 사랑, 기쁨, 슬픔, 비애, 생활 등이 노래 속에 실려 있어 서로의 연대감을 확인하게 해주는 노래”라고 정의한다.
<설악가>, <즐거운 산행 길>, <설악아 잘 있거라>, <산악인의 노래> 등 수많은 노래들이 산 사람들의 삶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다. 그 중 <저 높은 산>은 산에 대한 마음과 도전정신을 아름다운 시적 언어로 정제한 산 노래의 정수라 할만하다. 이 노래의 곡과 1절은 1969년 2월 설악산 죽음의 계곡에서 영원한 산 사람이 된 에코클럽의 이만수가 지었다. ‘설악10동지 조난사’로 익히 알려진 사고 당시 그의 나이는 21세였다. 이 노래에는 혈기왕성한 산악인의 도전정신과 순수한 감정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
아름다운 저 산이 우리들을 부를 때
우리 모두 모여서 저기 저 산 오르세
바위보다 단단한 우리 마음 달래고
얼음보다 차가운 우리 정열 태우러
모여서 가는 곳 저 높은 산
에델바이스 꽃피는 저기 저 산 오르세
흰 눈 덮인 저 산이 우리들을 부를 때
바위보다 단단한 우리 마음 달래고
얼음보다 차가운 우리 정열 태우러
모여서 가는 곳 저 높은 산
<저 높은 산>은 산의 정서를 압축적으로 끌어올려 간결한 시적 표현으로 완성한 절창이다. 단순하면서도 쉬운 단어 선택과 반복의 운율은 리드미컬하다. <저 높은 산>은 말을 이미지화하여 한국말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바위보다 단단한:과 "얼음보다 차가운"과 같이 노랫말 전반에 흐르는 특유의 대구구조와 잔잔한 어조는 한 편의 시처럼 말을 그림으로 바꿔놓는다.
이만수는 산이 우리를 ‘부른다’고 한다. 누군가를 부른다는 것은 주체적인 행위다. 그에게 산은 인간 중심적 시각에서 지배해야 할 대상이거나 수동적인 객체가 아니라, 인간과 동등한 위치에 있으면서 되레 인간을 부르는 능동적인 주체다. 이로써 사람과 산은 ‘나와 그것’이 아닌, ‘나와 너’의 평등한 관계로 재편한다. 이와 같은 평등한 관계는 양자의 관계에서 지금껏 주도권을 누려왔던 사람이 그 주도권을 산과 나눌 때 형성된다. 이만수 노래의 미덕은 그 주도권을 산과 나누는 데 있다. 아름다운 저 산이 먼저 우리를 부르고 우리는 거기에 응한다. 산이 없었다면 인간은 아름다움 하나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상대를 주체로 인정하고 나아가 산의 주도성을 발견한 이만수의 노래는 우리로 하여금 ‘겸허’와 ‘평등'을 떠올린다.
<저 높은 산>은 산 사람들의 공동체성을 강조한다. 이 노래에 ‘우리’라는 말은 후렴구의 반복을 제하고도 5번 나온다. 물론 '나’ 대신 ‘우리’를 선호하는 한국인의 언어습관과 운율과 박자에 따른 단어선택의 영향이 있겠지만 이처럼‘우리’를 반복하는 산 노래는 찾기 힘들다. 산은 우리를 부르고 우리는 우리 마음과 정열을 달래고 태우러 산에 오른다. 저 높은 산은 나 홀로 가는 곳이 아닌 ‘우리’ 모두 모여 함께 가는 장소다.
한편 이만수의 산은 이상향이다. “아름다운 저 산이”, “저기 저 산”, “저 높은 산"에서 ‘저기, 저’는 ‘여기, 이’와 대응하는 말이다. ‘여기’는 공간적으로 가까운 장소의 의미를 갖지만 지금, 현재라는 시간적 의미를 갖기도 한다. 이렇듯 ‘여기’는 시공간적으로 지금, 현실을 의미한다. 반면 ‘저기’는 다음 미래에 다가올 알 수 없는 시공간을 가리킨다. ‘여기’는 눈에 보이는 현재이고 ‘저기’는 보이지 않는 미래다.
현재와 미래에는 인간의 욕망이 내재한다. 인간에게 욕망은 본능과 같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의 목표를 성취하는 순간 금방 또 다른 미래의 무언가를 욕망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따라서 인간의 현재는 늘 뭔가 모자란 상태다. 그 결핍을 느끼는 정도가 적어질수록 우리는 젊음을 잃어가는, 결국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은 욕망의 끝이자 결핍의 중단이다. 우리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죽어라고 ‘다음’, ‘저기’라는 미래에다 나름의 기대와 희망을 걸고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만수의 노래에는 현실에서 이루기 힘든 욕망을, 그 결핍의 애달픔을 산을 통해 해소하려는 간절함이 담겨있다.
그러나 <저 높은 산>은 미래에 대한 욕망을 해소하는 방어적 측면에 머물지 않고, 산에 오르는 행위를 통해 지금 현재의 상황과 인간의 존재적 욕망을 꿈과 희망으로 승화한다. <저 높은 산>에서 '아름다운 저 산'과‘에델바이스’는 희망을 구체화한 이미지이다. <저 높은 산>은 '저 산'과 '에델바이스'를 인간의 삶에 적절히 투영하면서 자칫 집착으로 오염될 욕망을 희망으로 승화한다. <저 높은 산>은 반복하는 후렴을 통해 바위보다 단단한 아집과 편견을, 희망으로 승화하지 못한 채 집착으로 굳어진 욕망을 돌아보고 산을 향한 열정을 다시 불태우는 도전의식을 고취하며 곡을 마무리한다.
단순한 선율과 리듬으로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저 높은 산>은 산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이상을 향한 정염을 불러일으키는 곱고 아름다운 한국의 산 노래다.
첫댓글 옛날 산악인은 참! 서정적 입니다....
오늘도 창호형님의 우크렐레 반주에 맞춘 산노래가 이어집니다.
원래 노래의 가사는 마지막 대목 '모여서 가는 곳 저 높은 산' 이 아니라
'모이는 그 이름 에코라네~' 였다고 하네요.
그 뒤 많은 사람들에게 애창되고 또 그렇게 되기 위해 가사를 바꿨다고 하네요.
하튼 현섭의 글은 깊고 철학적이어서 좋은데, 나처럼 학창시절 '철학'과목을 끔찍히 싫어했던 사람들에겐 너무 어려워...
김훈의 책은 거의 다 읽었는데, 유일하게 읽다만 책이 '풍경과 상처'
아하, 대충 나도 들었는데...어느 쪽도 확실하지는 않은 것 같아. 그냥 지금 내가 부르는 노래를 바탕으로 좀 해석한 정도?로 이해해주셔.^^ 재밌게 놀고.....
@심현섭(27기) 이해하고 말고가 어디있남.
그냥 그렇다는 일설이 있다더라 하는거지 ^^*
같이 못해 아쉬우이
몸관리 잘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