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어제 밤늦게 서울에 잘 도착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올라오는 길에 생명의 말씀과 창세기 주해 묵상 출판 기념회 영상을 들었습니다.
모든 시간 속에서 은혜를 부어주시는 주님께 늘 감사합니다.
마냥 즐거운 예진이랑 반가운 만남을 가졌습니다.
끝도 없는 이야기, 억지로 멈추고 꿀잠을 잡니다.
이른 새벽 주님의 흔들어 깨우심에 몸을 일으켜 주님께로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오늘도 말씀이 주시는 새 은혜에 제 영이 기뻐 춤추게 되길 기도합니다.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4.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21.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22.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23.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본문 주해)
14~21절 :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그 누룩을 떡의 누룩으로 생각하고 떡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서로 수군거리고 걱정하였다.
바리새인들의 누룩이란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자기들 중심의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세리와 죄인들과 이방인들을 정최하고 자기들과 구별하는 것이다.
율법은 죄를 알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주신 것인데 오히려 그 율법으로 자기의라는 옷을 입어 치장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리새인의 누룩이요, 종교적인 누룩이다.
헤롯의 누룩이란 정치적인 힘으로 무엇을 이루어 내려고 하는 것이다. 즉 정치적인 나라를 이스라엘이 기다리는 하나님의 나라로 세우려고 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다윗의 자손으로 올 메시아를 맞이하여 자기들의 메시아 나라를 세우려고 하였다. 그리고 헤롯당은 현재의 헤롯왕국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둘은 애초에 서로 노선은 다르지만 예수가 그들의 공동의 적이 되었기 때문에 두 파당이 함께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고 하신 것이다.
제자들조차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으로 오염이 되어 있기에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제대로 모르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상태인 것이다.
이 단락의 앞뒤에 에바다 이야기와 벳새다의 맹인이 눈을 뜨는 이야기가 들어있는 것은 진짜 눈을 떠야 할 사람이 바로 너희들(제자들)이라고 하시는 의미이다.
22~26절 : 배가 벳새다에 이르자 그곳의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께 나아와 손대시기를 구한다. 예수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신다.
“내가 맹인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이 알지 못하는 지름길로 인도하며 암흑이 그 앞에서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사42:16)
또 예레미야서에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었지만 그들이 말을 듣지 않고 언약을 어겼지만 이제 마음에 새겨지는 새언약을 맺으심으로 그들을 구원하여 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잡고 마을 밖으로 나가신 것은, 맹인을 이끌어 광명의 세계로 인도하시는 주님이심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에 기록된 대로 일하시는 주님이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만으로도 고쳐주실 수 있지만 또 눈에 침을 뱉어 안수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는 것처럼 새로운 창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맹인을 눈 뜨게 하시는데 두 번이나 안수를 하신다. 처음에 눈에 침을 뱉어 안수하심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흐릿하여 분명하게 보이지 않으니 다시 안수하여 분명하게 보도록 해 주신다. 이것은 제자들의 보지 못함을 결국 주님께서 보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이 십자가로 단번에, 영원히 이루어졌지만, 이 역사 속에서는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고침받은 맹인에게 마을로 들어가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이적이 있은 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무리들의 그릇된 메시아 관으로 인하여 복음 전도의 본질적 사역에 방해를 받지 않으려고 특별히 단속하신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또한 고침받은 맹인으로 하여금 사람들과의 떠들썩한 접촉보다 자신이 받은 큰 은혜를 묵상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나의 묵상)
누룩은 조금만 있어도 금새 전체를 부풀리게 하는 것이니,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신다.
나는 교회를 다녔어도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으로 이미 잔뜩 부풀려진 상태로 살아왔던 자였다. 조심해야 할 단계가 아니라 이미 고착화된 존재였다.
행위적인 것으로 다른 이와 구별되기를 원하고 또 그것으로 인정받으려는 마음이 잔뜩 있던 내가 바로 바리새인이요, 세상적인 힘을 의지함으로 양다리를 걸친 자였으니 내가 바로 헤롯당이었던 것이다.
예수님 곁에서 지내왔으나 여전히 유대인의 성향을 지니고 있던 제자들 역시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들 역시 눈과 귀가 어두웠으니 주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율법을 중시하고, 세상의 강한 힘으로 오실 메시아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데 앞선 장면에서 ‘에바다’ 하시며 눈과 귀를 열어주시던 예수님이 오늘도 맹인에게 안수하시며 광명의 세계를 선물로 주신다.
제자들은 이와 같은 예수님의 행보를 보고, 자신들의 눈을 뜨게 하시고 귀를 열어주실 주님을 보아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은 아니었다. 이것은 그들 자신의 힘과 노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주님께서 해 주셔야만 되는 일이다.
그러므로 지금 주님은 결국 주님께서 온전히 다 이루어주실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것이다. (바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심으로 다 이루심을 장차 보여주신다.)
오늘 주님은 단번에 맹인의 눈을 밝혀주시는 것이 아니라, 두 번에 걸쳐 안수하시는 것이다.
주님의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아니다.
이것은 성도의 구원이 십자가로 단번에, 영원히 이루어졌지만, 이 현실 속에서는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인 것이다.
오늘의 본문의 은혜이다.
주님께서 그렇게 내게 은혜를 많이 베풀어 주셨건만 나는 여전히 보는 것이 흐릿하고,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 이라고 불확실하게 머뭇거리며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결국 밝히 보게 하신다. 또 안수해 주셨기 때문이다.
매일의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밝히 보지 못하는 내가 주님께 다시 안수받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이렇게 단번에 되지 못하는 나를 꾸지람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하시는 질문은 질책이 아니라, ‘내가 보게 하고 듣게 하고 깨닫게 해 주겠다.’ 하시는 주님의 의지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새언약의 약속을 생각나게 한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31:31~34)
주님 곁에 딱 붙어살아도 여전히 생뚱맞은 소리를 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매일 주님과 교제하며 살아도 엉뚱한 생소리를 내는 나의 문제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나와 함께 해 주시는 성령님이 계시지 않은가?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살도록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이 계시니, 나의 수준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만을 의지하는 것이다.
(묵상 기도)
주님,
오래 참으시며 결국 저로 밝히 보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할미에게 할 말이 많은 예진이가
묵상의 시간 중간중간에 말을 걸어오니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래도 즐겁고 행복합니다.
오늘 아침에 두 가지 생명에 대해 예진이에게 말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의 참 생명을 말해주었습니다.
이미 참 생명을 가진 저의 눈을 더욱 밝히셔서
제가 보고 누리는 진리를 이 아이에게 지혜롭게 말해 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십자가로 다 이루셔서 제게 영생을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성령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