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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민족반역자처단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ppodagu
박정희정권 때 의문사한 故 장준하선생 장남 집필선언 | |||||||||||||||||||||||||||||||||||||||||||||||||||||||||||||||||
장준하-박정희, 장호권-박근혜 '또 역사의 라이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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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에 의문사를 당한 사상계 발행인 故 장준하 선생의 장남, 장호권 독립유공자협회 유족회 회장이 '집필선언'을 했다.
故 장준하 선생은 박정희와 필생의 라이벌로 자주 비견되고는 하는데 장선생은 24살에 일본군부대를 탈출 6000리를 걸어 충칭 임시정부에 도달해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해 독립군 제3지대 소속장교로, 박정희(창씨개명 다카키 마사오)는 일제관동군 중위로 해방을 맞았다. 당시 일본의 패망으로 끌려온 청년들을 광복군으로 등록시키려 했을 때, 박정희는 일본군 장교 모자를 끝까지 벗지 않자 이 일로 인해 특히 장준하 선생의 미움을 샀다고 전한다. 해방이후 장선생은 53년 종합교양지 사상계를 창간해 반독재를 외치며 동대문구를 지역기반으로 한 국회의원으로서도 명성을 쌓았으나, 박정희는 그런 장선생을 눈엣가시로 여겨 감옥에 가뒀다. 이때 장 선생은 '옥중당선'되었다.
그러나 결국 장 선생은 의문사를 당하였고, 이에 의혹을 제기한 가족들은 박정희 정권의 가혹한 탄압을 당해 해외로 도피하는 등 뿔뿔이 흩어졌다. 75년 부친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에 의문을 품고 밝히려던 장남 장호권 회장은 보안사 직원에 의해 신변의 위협을 느껴 말레이시아로 탈출하였다가 박정희 죽음이후 국내로 돌아왔으나 다시 전두환 정권에 의해 안기부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천신만고 끝에 싱가포르로 탈출했다. 장 회장은 당시 선친인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를 밝히려다 테러를 당해 턱뼈가 군홧발에 의해 6조각으로 깨어지는 등의 심각한 신체적 손상을 입었으며 현재까지도 고문후유증으로 편안하지 못한 상태이다. 현재 장호권 회장은 서울대아시아연구소 자문위원, (사)독립유공자협회 유족회 회장 등을 역임하고 있다. 박정희-장준하, 장호권-박근혜.. 제2의 라이벌전 되나? 장호권 회장은 본지 서울의 소리와 인터뷰를 통해 "총선과 대선에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충일군인 박정희를 앞세워 정권을 노리고 있어 이를 바로 알리려고 집필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 회장은 자신이 살아온 독재자 박정희 시대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의사와 함께 잘못되어가는 현 정치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활동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는 박정희의 유신선언 40년이 되는 해이고, 그의 딸 박근혜가 대선에 출마하는 시기인데 이 시기 집필선언을 하는 것은 그것을 겨냥하는 것이냐"는 서울의소리의 질문에 장 회장은 "이제는 말할 때가 되었지요"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몇년전 박근혜가 故 장준하 선생의 유족을 찾아갔으나 故 장준하 선생의 아내는 '그런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오느냐'며 돌려보낸 일이 있는 등 현재까지도 장준하-박정희의 악연은 진행형이다. 장 회장은 최근의 시류에 맞는 신선한 문체의 소설형식으로 책을 출판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여 독자층에 어필할 것임을 시사했다 장 회장의 집필로 박정희 정권 때 일어난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와 그 후 가족들이 당했던 숨겨진 비사들이 공개되면 상당한 주목을 끌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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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4/02 [20:51] 최종편집: ⓒ 서울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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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동감!
나라가 독립했음 독립운동가들이 나라를 이끌어야 하는데 저런 친일파 매국노들이 온갖 권력을 차지 부국영화를 누린걸 보면 독립국가는 아니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