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해군제독 블라디미르 쿠로예도프가 `스페츠나츠'가 필적할 상대로 미국 해군의 SEAL과 함께 거명한 이스라엘 해군의 특수부대 `13전대'(Shayetet 13)는 88년 4월 AP통신이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군사조직의 2인자인 아부 지하드 암살 사망사건을 보도하면서 그 배후에 몇몇 이스라엘 특수부대가 있다고 밝힘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이스라엘 육군의 특수부대 매트칼(Sayeret MATKAL)과 함께 대표적 특수부대로 인정받는 13전대는 이스라엘 특수부대원 중 유일하게 AK47 소총을 쓰고 있는 등 긴 역사와 함께 부대의 발전과정에서 엿보이는 흥미로운 점도 꽤 많다.
13전대의 출발은 이스라엘의 땅이 영국의 관리체제 하에 놓여 있던 193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스라엘에 있던 유대인들은 이곳에 정착하기 위해 영국과 아랍에 대항할 여러 지하무장단체를 조직했다. 그중 `방어'라는 의미의 `하가나(Hagana)'는 이들 저항조직 가운데 가장 큰 단체였고, 예하에 `강타(smash) 중대'(PALMACH)를 가지고 있었다. 중대는 바다환경에 맞게 특수화된 부대로 수중폭파임무와 함께 유럽에서 이스라엘로 도망쳐 오는 유대인의 배들을 안전하게 호위했다.
1945년 2차대전이 끝난 후 유대인들의 배가 이스라엘 항구에서의 정박을 거절당하면서 많은 희생자를 내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가나는 이를 계기로 영국의 군대와 시민들에 대해 모두 공격할 수중폭파팀(Haoulia)을 조직했는데 이들은 1948년 이스라엘 독립 후 이스라엘 해군의 `13전대'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았다.
전대는 `보안'의 울타리 속에 있는 비밀스러운 존재였으며 프랑스의 특공대 허버트, 영국의 SBS 등과 강한 연합훈련을 하며 전투력을 키웠다. 1960년부터 고유의 휘장을 공식적으로 사용했지만 드러나는 존재는 아니었다.
당시 이들의 훈련코스는 물리적으로 가장 어렵게 구성된 것으로 간주되었고 대원들은 놀라운 체력으로 이를 수료했지만, 그저 물리적으로 힘들 뿐 가장 효율적으로 훈련되지 못했고 전투기술 또한 최고조에 달한 수준은 아니었다.
1967년에 아랍과의 `6일전쟁'이 발발하자 이스라엘 군은 그 능력을 확신하고 있던 13전대를 투입했으나, 13전대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이스라엘 군이 고전적인 전격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반면 13전대는 그해 5월6일 작전에서 실패하고 포로가 되기도 했다.
그들은 외국군과의 연합훈련이 이들 전투력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내심 판단했고, 전형적인 유대인의 거만함 그대로 앞으로 전투훈련은 모두 독자적으로 수행할 것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 역시 훈련 중 희생자만 불렀다. 기본적인 안전규칙을 무시한 무리한 그들의 훈련은 무려 70여 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내고 말았다.
매트칼과 같은 다른 특수부대에서는 13전대가 적을 죽이는 만큼 자신들의 대원을 죽인다고 조롱했다. 하지만 13전대의 이런 형편은 그들이 최고 비밀로 분류된 부대라는 사실로 인해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88년까지 13전대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13전대는 비밀이라는 스크린이 매우 편리하다는 것을 이때 깨닫고, 이를 유지해온 것이다. 이 때문에 매트칼보다 처진다는 이스라엘 군 내부 평가도 묻혀 있었다.
13전대는 1969년 그린 아일랜드 침공작전에서 매트칼과 합동작전을 펼쳤는데, 여기 또다시 3명의 대원이 죽고 10명이 넘는 대원이 부상을 입는 망신을 당했다. 그들은 60년대를 통틀어 적지않게 성공적인 작품을 내놓았으나 독립전쟁 시기부터 쌓아온 화려한 전공의 명성은 퇴색하고 말았다. 1970년에 들어서 13전대의 대원은 겨우 20명뿐이었다. 현존하는 부대로 봐주기 어려울 정도였다.
13전대는 재구성될 처지에 놓였다. 그런데 `더 이상 나쁠 수 없는' 이같은 상황은 반대로 13전대가 재기할 수 있는 최상의 여건이 되었고, 13전대는 스스로 변화를 모색했다. `기습타격'의 임무를 강화해야 한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반면 다른 특수부대들은 13전대의 이같은 변화를 반대했다. 이즈음 매트칼과 13전대의 갈등은 매우 심각했고, 여기에 또하나의 특수부대 `707부대'라는 존재가 전투역량을 향상시키면서 13전대의 위상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707부대는 이스라엘 해군이 1965년에 두 번째로 창설한 특수부대로, 항만 방어와 기뢰로부터의 함정 보호 등의 임무를 수행할 전투다이버 요원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바로 13전대의 훈련코스를 이수하다 탈락한 대원들인데, 아이로니컬하게도 13전대로부터 능력이 떨어지는 `열등한' 대원들로 간주되던 이들이 훗날 13전대에 합류하면서 13전대는 오히려 옛날의 위상을 찾게 된다.
2002/3/21(목)
세계의 특수부대〈13〉-이스라엘 해군 13전대(하)
707부대의 대원들은 `열등생'이란 오명을 벗기 위해 어느 부대보다 더 단결하고 노력했다. 1970년에 고유 휘장을 채택한 707부대는 이듬해부터 공수훈련을 이수하는 등 종래의 방어적이고 지원적인 부대성격에 `기습타격능력'을 추가했다. 이스라엘 해군의 고위층은 707부대가 매우 우수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13전대가 수행해야 할 임무까지 떠맡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독일 뮌헨올림픽 기간 중 이스라엘선수촌에 대한 `검은 구월단'의 학살사건이 발생하자 73년 2월20일, 13전대는 레바논 트리폴리 시의 알바다위와 나하르 알바드 지역에 산재한 팔레스타인 난민촌 기습작전에 나섰다. 여기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별도로 운영되던 과격 팔레스타인인민해방전선(PFLP) 본부를 기습적으로 공격, 치명타를 가했다. 핵심 임무인 이 단체의 수장격인 조르지 하바쉬 박사를 암살하지는 못했지만 이름값은 한 것으로 평가됐다.
13전대는 이어 같은 해 4월9일부터 10일까지 `젊음의 도약작전'을 감행, 다시금 입지를 확보한다. 무대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이스라엘 내에서 테러를 전담하는 알파타 조직에 타격을 가하고 베이루트 항 북쪽에 위치한 그들의 무기고를 파괴하는 임무를 완수하고 복귀한 것이다.
그러나 1973년 10월전쟁이라고 불리는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자 13전대는 또한번 자존심에 약간의 상처를 입는다. 10월16일 밤과 17일 새벽에 대원들은 이집트가 자랑하는 소련제 코마급 미사일정(艇) 모기지인 포트 사이드에 대한 수중폭파작전에 돌입했다.
그들은 탄두에 500㎏의 고성능 폭약을 장착한 스틱스미사일을 가진 이 최신형 함정을 파괴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대원 두 명을 잃은 것이다. 더욱이 그들에게 추가적으로 부여된 지상기습타격 임무는 실패하고 말았다. 6일전쟁에서와 거의 유사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실 동일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를 2개씩 운용하는 일은 경제적으로나 작전적으로 효율적이지 못했다. 이스라엘 해군은 1974년 13전대와 707부대에 단일 지휘관을 임명하고, 이듬해 707부대를 13전대에 통합시켰다.
1979년부터 13전대는 면모를 완전히 일신하게 된다. 전대는 기습타격중대, 전투다이버중대, 보트운용대 등 3개 중대로 구성됐다. 기습중대에는 말 그대로 정예 중 정예의 대원들이 포진했으며 `T4'라는 대테러작전팀도 유지됐다. 또한 `마슬루(Maslul)'로 알려진 훈련코스도 신설, 13전대 대원들을 확실한 전투전문가로 양성해 냈다.
이윽고 1982년 6월7일에 레나본 시돈 항 해안에서 감행된 이스라엘군 상륙작전에서 13전대는 해안정찰팀으로서 크게 활약해 신뢰와 명성을 되찾았다. 그리고 88년 4월16일에는 이스라엘에서 2500㎞ 떨어진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를 근거지로 활약하던 PLO의 핵심 인사 아부 지하드 암살 등에 투입되었다. 80년대에 들어선 이후 많은 작전을 수행하면서 단 12명만이 희생을 당함으로써 초일류 특수작전부대로서 입지를 확실히 다지고 또한 이를 확인시켜 주었다.
최근의 13전대는 다른 특수부대와 마찬가지로 20개월의 훈련을 거치지만, 혹독하기는 여전히 최고 수준이다. 다른 특수부대의 지원자들이 20~25명으로 훈련을 시작, 10~12명의 팀으로 남는 것에 비해 13전대는 80~100명에 이르는 지원자로 시작한다.
최초 4개월은 이스라엘 군의 특수부대 훈련시설에서, 이어 2.5개월은 보병학교에서, 그리고 3주간은 고공강하 훈련을 받는다. 보통 13전대 지원자 가운데 여기서 탈락하는 이는 없다. 그러나 13전대에 와서 M-16소총을 AK47소총으로 바꾼 후 실시하는 3단계 훈련에서는 줄줄이 떨어져 나가고 최종적으로 10여 명만이 `박쥐' 모양의 휘장을 수여받는 정식 대원이 된다.
80년대 하반기에 이르러 이스라엘군 지휘부는 이제 13전대의 전투능력을 의심하지 않는 대신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13전대 대원들의 잠재적 역량이 더이상 발휘될 수 없다는 데 있었다. 대원들은 보통 4년6개월의 복무기간이 끝나면 시민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곧 전투경험의 상실로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군 지휘부는 13전대의 장교 등을 또다른 특수부대로 보내 `노하우'를 전수하는 방안을 강구했으며, 그 결과 대테러부대 `에고즈'(1995년)를 포함, 몇몇 새로운 특수부대를 창설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