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3일 묵상 본문 : 마가복음 8장 27절 - 9장 1절 - 자기부인의 길로 나아가 죽음을 경험하고 생명의 은혜로 주의 영광을 바라보며 살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육신의 피로감으로 늦은 시간 주의 보좌를 향해 나아갑니다.
지나친 육신의 단련이 하루의 삶을 지장을 주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거쳐 좀 더 건강한 모습을 유지할 때도 있습니다.
지혜를 주사 더욱 강건한 삶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시고 유익함을 얻게 하옵소서.
오늘도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해야 할 일을 감당하게 하시고 모든 관계에서 선한 열매를 맺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여러 가지 상황으로 어려운 지체들을 기억해 주시길 소망합니다.
각 상황에 필요를 따라 은혜를 더해 주시고 어려움을 이기는 삶 되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날마다 은혜와 사랑으로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27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8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30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1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본문 해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이사랴 빌립보의 여러 마을로 지나가실 때 예수님은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누구로 알고 있는지를 물으신다.
이러한 예수님의 질문은 이제 자신이 그리스도 되심을 드러내시고 정해진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야 할 때가 되었음을 보여주고 계신다.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이라고 하고 더러는 엘리아, 더러는 선지자 중 하나로 알고 있다고 대답하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누구로 알고 있는지 질문하신다.
이러한 사람들의 평가는 예수님에 대해 바르게 알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들의 절대적 관심사는 예수님을 통해 자신의 필요(치유나 축귀)를 얻는 것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때 베드로가 “주(원문에는 당신은)는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한다.
이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신다.
이러한 경고는 베드로가 고백한 것이 맞지만 그 고백도 온전한 고백에는 미치지 못했는데 이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보았고 사람들도 그렇게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림을 받아 죽임을 당하지만 3일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써 그들에게 가르치신다.
이는 사람들이 기대한 정치적 메시아의 모습이 아니었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보였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하면서 그 일을 반대한다.
베드로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했지만 그 고백도 역시 정치적 메시아를 기대했기 때문이었으며 그 기대에 못 미치는 죽음의 행보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돌이켜 제자들을 보시면서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하시면서 꾸짖으신다.
예수님의 꾸짖음은 하나님의 길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람의 길로 나아가도록 만드는 사탄의 계략에 대한 책망이었으며 그 일에 조종당한 베드로를 일깨우는 일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서 누구든지 자기를 따라오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따라야 함을 선포하신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어버릴 것이며 누구든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받게 될 것을 선포하신다.
이어서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어버린다면 무엇이 유익하겠냐고 말씀하시고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을 바꾸겠냐가 말씀하신다.
이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생명이며 이는 육적 생명이 아닌 영적 생명을 말하고 이 영생은 세상의 것과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한 것임을 의미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자신과 자신의 말을 부끄러워하면 예수님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 그 사람을 부끄러워 할 것을 선포하신다.
이는 복음에 대한 고백과 복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태도를 의미하며 세상의 시험 때문에 복음을 부인하고 거부해서는 안 됨을 가르치고 계신다.
그리고 제자들 가운데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목격할 자들도 있음을 말씀하셨는데 이는 성령의 강림 이후 역동적으로 확산되는 하나님의 나라, 즉 교회로 볼 수 있다.
나의 묵상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를 져야 하는 시기가 가까이 왔음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물으셨는데 이는 그리스도를 바르게 아는 것이 영생을 얻고 누리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오해는 올바른 믿음으로 이어질 수 없으며 참 믿음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고백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은 오늘날 모든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물어야 하며 이에 대한 선명한 대답이 그 사람의 신앙을 결정하게 된다.
예수님을 그리스도, 즉 구원자로 알지 못하면 사람들은 참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기의 필요를 채워주는 자로 알고 있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 땅의 것을 얻고자 하며 땅에서 누리는 영광을 예수님을 통해 기대하며 살아간다.
그런 자에게 예수님은 본문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세례 요한과 엘리야와 선지자 중에 하나와 같이 받아들이게 되며 결국에는 다른 구원자를 기대하게 된다.
영생의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주어지지 않고 여전히 갈급함을 가지고 다른 대상을 구하는 모습이 될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수많은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닫고 고백하게 될 때 그 사람은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을 구하는 자가 되며 영생을 얻고 누리는 자가 된다.
그런 관점에서 베드로는 비록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지만 그의 고백도 온전한 고백이 아니라 세상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 이유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보았기 때문이며 그 결과로 예수님이 예언된 그리스도, 즉 죽음과 장사됨과 부활로 이어지는 복음에 대해서는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과 그에 따른 고백이 참 믿음을 가지게 만든다.
그런데 예수님의 공생에 사역 속에서 이러한 믿음으로 반응한 사람들은 많지 않다.
마가복음에서는 수로보니게 여인이 참 믿음으로 반응했는데 이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을 통해 참 신앙의 고백이 이루어진 것으로 볼 때 믿음의 고백은 흔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을 참 된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은 땅에서 자기의 유익을 얻게 하는 우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영생을 얻고 누리며 하늘의 소망으로 사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영생을 누림으로써 자신을 우상에게서 지킬 것을 권면한다.
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2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요일5:20,21)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신앙은 예수님이 분명하게 가르치신 것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며 그 결과로 죽음에 이르지만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자기부인은 자신의 의와 노력, 땅의 영광과 자기만족을 버리는 것을 의미하며 그 모든 것을 기꺼이 주를 위해 버리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이것을 버리는 것은 죽음에 이르러야 가능한 것이며 죽음에 이른 자가 비로써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여 주와 함께 하는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될 수 있다.
죽음에 이르는 것도 자신 스스로 할 수 없고 주와 연합될 때 이루어지며 자신의 비참함과 절망을 고백하고 주의 심판으로부터 벗어 날 수 없음을 인정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갈수록 자기부인을 통해 죽음의 자리로 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인간의 의지가 발동할수록 자기의가 드러나고 죽음이 아닌 난동을 부리는 자가 된다.
결국 철저한 절망과 자신에 대한 소망 없음을 깨닫게 될 때 비로써 주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자가 되며 주의 도우심을 통해 죽음과 생명에 이르는 자가 된다.
이 생명의 은혜를 누릴 때 비로써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주님만 드러내며 살게 된다.
바울은 자신이 부활의 영광을 얻고 누리며 살고자 하는 마음으로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한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날마다 자신의 비참함과 절망 앞에 세우고 주의 긍휼과 자비를 맛보며 사는 자가 될 때 비로써 주의 의를 드러내는 자가 되며 주의 영광을 바라보는 자가 된다.
그래서 핍박과 박해로 죽음을 맞이하는 그때도 주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며 주의 의로움을 선포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자가 된다.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7:55~60)
오늘도 나를 부인하는 자리, 죽음의 자리, 절망의 자리로 나아가 주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며 주의 영광을 바라보는 참 믿음의 자리에 서는 자 되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자신을 바라보며 절망하고 처절한 무능에 울부짖는 저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주님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주의 영광을 가리며 사는 인생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런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주를 알게 하시며 주의 영광을 바라보게 만드셨습니다.
그 은혜가 크고 놀라움을 고백하며 주의 의로움과 은혜와 사랑의 크심을 깨닫습니다.
철저히 자기의 의를 죽이고 오직 주의 은혜만을 드러내는 자 되게 하옵소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며 죽음에 합당한 나의 모습을 인정하며 살게 하옵소서.
그때 주의 긍휼을 구하게 하셔서 주님이 저를 이끄시고 생명의 은혜를 누리게 하시며 주의 영광을 바라보는 자로 살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이러한 영생의 삶을 살아가며 주를 증거 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저도 그 길을 가게 하시고 생명의 길을 가도록 독려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함께 하시고 주의 진리로 붙드실 것을 기대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