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 그는 조폭의 일원이었고, 보스의 신임을 받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매사에 빈틈없이 일을 처리하는 그를 보스는 가장 내밀한 이야기까지 털어놓는 상대로 여깁니다. 어느 날 두목은 해외로 잠시 나가게 되는데, 이때 그는 자신의 부하인 그를 불러 한 가지 부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이 사랑하게 된 한 젊은 여인을 잘 지켜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까지야 별 문제가 없는 임무인 듯 했습니다. 50대의 조직 보스가 20대의 한 음악도 여학생을 사랑하는 이 과정에서, 보스는 상대가 다른 젊은이와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하게 됩니다. 보스가 맡긴 일은 그래서 상대 여학생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감시하고, 만일의 경우 젊은 애인을 처치해버리는 일이 됩니다.
선우는 이 일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보스의 명령을 거부할 길은 없습니다. 그런 그가 보게 된 여인은 순간에 그를 매혹시키고 맙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일어나게 됩니다. 보스의 명령보다는 자신의 마음에 결정의 권리를 부여해버리게 된 이후의 결과에 대해서 그 자신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선우는 매우 위험한 진로를 선택하게 됩니다.
여인과 그의 젊은 애인이 만나는 장면을 포착한 선우는 이들을 눈감아주게 됩니다. 다시는 만나지 말라는 확약을 전제로 해서 말이지요. 하지만, 어디 그게 강제로 되는 일입니까? 돌아온 보스는 이 일의 전말에 대하여 눈치를 채고, 선우를 다그칩니다. 문제의 핵심은, 선우의 마음속에 있는 진실이 무엇인가에 집중되었습니다.
자신의 부하, 그 가슴에 숨겨진 진실에 날카로운 감각을 뻗은 보스의 영향권에서 선우가 벗어날 길은 없게 됩니다. 오랜 세월, 두목에게 충성해왔다는 사실은 이 사건 하나도 모두 무위가 되어 버립니다. 조폭 조직 내부의 위상도 하루아침에 바뀌면서 선우는 처참한 신세가 되고 몰락의 지경에 몰리게 됩니다. 그의 목숨은 이제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두목과 부하의 의리는 언제 그랬더냐 하고 사라지게 되고 서로 목숨을 겨냥하는 대결구도가 만들어지면서 이 두 사람은 최후의 지점까지 조금의 틈새도 없이 맞서게 됩니다. 물론 그 결과는 비극이었고, 유혈이 낭자한 현실 앞에서 선우는 그의 가슴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 그 순간의 사랑을 그대로 품고 스러져 갑니다.
김지운 감독의 작품 <달콤한 인생>은 이렇게 조폭 조직 내부의 의리와 한 인간으로서의 진심 등이 서로 얽히면서 벌어지는 아픔과 비극, 그리고 몽환적 사랑에 대한 갈구 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병헌의 연기도 일품이었지만, 차갑고 무게 있게 조폭 보스 역할을 소화해낸 김영철, 그리고 오달수, 김뢰하, 황정민, 이기영, 문정혁 등의 조역도 놀라운 연기를 발했습니다. 한 영화에서 이처럼 각기 다양한 조역들의 화려한 움직임을 보는 것은 예외적이기까지 하다는 느낌입니다.
좀 지나치게 잔혹한 장면들은 거두어 들였어야 좋지 않았는가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게 만든 감독의 치열한 눈초리는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됩니다. 살벌한 조직 문화, 그리고 그에 그대로 복종하면서 살벌하기 짝이 없는 행위들을 아무런 감각도 없이 저지르는 자들의 모습, 그건 결코 달콤한 인생이 아니라 잔인하고 허무한 인생으로 결말을 맺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선우의 가슴에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은 그에게 달콤한 생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 본질의 갈망을 고스란히 드러내줍니다. 하지만, 조직은 그런 그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런 그는 제거되어야 하는 대상에 불과하게 됩니다.
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국가 조직의 한 수장이 자신의 보스인 대통령의 눈에 나면서 어느 날 파리에서 의문의 죽음을 겪게 됩니다. 충성을 다해 정권 보위에 나섰고, 이를 위해 온갖 잔혹한 짓을 저지르는 동안 그는 도대체 무엇을 꿈꾸었을까요? 그러다가 그는 결국 조직과의 연을 끊고 도주하게 되고, 미국에서 살면서 자신의 이전 두목을 향한 저격수로 변신하게 됩니다.
그런 그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했는데 결국 비운의 운명으로 그의 생애를 마감하게 됩니다. 최근, 그의 암살과 관련했던 인물이 입을 열었습니다. 조국을 위해 당신은 제거되어야 한다면서 심판자로서 그를 죽인 후 분쇄기에 넣어 흔적을 지웠다는 증언 앞에서 우린 한 시대의 조폭적 권력의 실상을 목격하면서 그 살벌함에 전율하게 됩니다.
한 치의 달콤한 인생에 대한 꿈도 허용하지 않았던 시절의 권력, 그러나 이제 그 권력의 사체(死體)는 남아서 그간 은폐되어 있던 온갖 비밀을 스스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지나간 것으로 끝나지 않고, 여전히 현재적으로 발언한다는 사실, 우리 모두가 깊이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봄날이 완연한 때에, 달콤한 인생 어느 누구에게나 주어졌으면 좋겠네요. 다시는 조폭적 권력의 위협에 시달리지 않는 세상을 꿈꾸면서 말입니다.
첫댓글 음... 달콤한 인생 꼭들 보세요 재미있으면서도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입니다..